1장
맬서스주의와
신맬서스주의
지속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인구문제에 대한 새로운 견해에 관해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구문제에 대한 이와 같은 미래 견해에 관한 연구는 기술 발전의 결과로 부상할 새로운 사회정책과 새로운 경제적, 도덕적, 심리적 전망에 대한 방향을 제공하기에 더욱더 흥미롭다.
그러나 우선은 완전히 과거지사가 된 이데올로기의 발전에 대해 간략하게 먼저 복습해보고자 한다. 견해가 완전히 전환되는 국면에서는 과거의 견해들을 살펴보는 것도 현명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현재 무엇을 논하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지난 수십 년간 화석처럼 보존된 사고와 이념으로부터 새로운 생각이 발현되는데 우리가 이를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죽은 이념은 우리의 상상이나 견해의 밑바닥에서 흘러 다니는 끈적한 진흙처럼 존재한다.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여기에 바로 역사적 사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고는 우리가 죽은 자들의 삶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전통은 우리의 상상과 의견을 비합리적으로 묶어놓는데, 이에 대해 지적으로 설명하고 비판하고 수정하면서 극복할 수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이데올로기의 역사 노선을 광범위하게 설명하려는 노력은 지면상의 제약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인구문제 논의의 시작이 된 사상의 전체 내용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은 1930년 스톡홀름에서 발행된 《거시경제 내의 과학과 정치Vetenskap och politik i nationalekonomien》와 1932년 코펜하겐에서 발행된 《소시얼트 티드스크리프트Socialt tidsskrift》에 수록된 〈사회정책의 딜레마Socialpolitikens dilemma〉, 1932년의 《스펙트럼Spektrum》 제3호 및 제4호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논문들에서는 인구문제를 특별히 다루고 있지는 않다.
맬서스주의
이데올로기 역사의 관점에서 인구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정책의 투쟁은 1700년대에 이루어졌던 사유재산에 관한 보수주의와 급진주의 간의 오래된 충돌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가의 독점적인 교육 시스템에 근간을 두고 있는 중상주의 경제는 빈곤에 대한 저속한 견해, 가령 ‘가난한 사람들은 끈질겨서 노동력이 저렴하고 곡물이 귀해도 살아남는다’ 또는 ‘어려운 시기는 축복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이 부지런해지기 때문이다’라는 의견을 견지하면서 빈곤 문제를 완전히 냉소적으로, 또 이해할 수 없는 무관심으로 대했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회피해왔다.
그러나 18세기에 분명했던 계몽주의 사상이 오늘날 갈등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회적 고찰은 두 가지 주요 흐름으로 귀결된다. 첫 번째는 보수주의다. 이 흐름은 중농주의와 초기 계급 경제학 이론에서 전 체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개인주의적 자유 개념에 중점을 두었고, 사회 및 사유재산 보장의 자유주의를 구축했다. 또 다른 하나는 급진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이상주의로서 루소주의적 무정부주의 또는 사회주의다. 이 흐름은 자유주의 개념에는 동의했으나 이 개념을 사회적 평등과 연관 지으려고 하면서 경제적 혁명으로 이어졌다.
급진적인 사회 이론가들은 보수주의자들이 사유재산의 상속 및 소유가 당연한 권리라고 말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효과적으로 이들을 비판할 수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부자만의 자유인 것이다. 급진주의 이론가들은 이 점에 대해서 반드시 비판해야 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유토피아의 핵심은 사유재산 제도를 변화시킴으로써 이 모진 세상을 에덴동산으로 바꿔놓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급진적인 유토피아적 이상주의는 사회적으로 혁명적이다.
이 급진적인 사회 이론은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에서 보수주의자들에게 확실히 비판받았다.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가 바로 그랬다. 그가 자신의 저서에서 인구의 증가가 계속해서 식량 공급에 압박을 가한다고 쓴 것도 사회제도 한두 개를 바꾼다고 해서 천년의 왕국을 세울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맬서스의 이해에 따르면 비극에는 더 심오한 원인이 존재했다. 그는 ‘인간 본성’ 그 자체가 원인이라고 믿었다.
이것이 시대를 막론하고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깊은 차이다. 모든 차이는 얼마나 많이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얼마나 많이 사회에게 책임을 돌리는가에 달려 있다. 루돌프 셸렌Rudolf Kjellén은 이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진보주의자는 기회가 도둑을 만든다고 생각하기를 원하는 반면, 보수주의자는 도둑이 기회를 만든다는 생각에 치우쳐 세상을 바라본다고 말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인 접근은 모두 보수주의적 정치 논리에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지배계급의 경제적인 이해 보호에 이기적으로 또 솔직하게 동기를 부여하고 있으나 이는 조만간 구태가 될 것이다. 맬서스의 인구 이론도 예외가 아니다. 맬서스의 ‘인간 본성’에서 출발한 주장은 이제까지 나온 것들 중 가장 영리하게 사용된 반동적 논리였다.
맬서스가 사회의 투쟁에서 더 나은 논리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껴 익명으로 인구문제에 관한 논문을 출간했을 당시, 세상의 반응은 대단했다. 1800년대로 들어가 살펴보면 당시 이데올로기 정치 상황은 다소 독특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진보주의자들이 좋은 패를 다 가진 듯했다.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이론적으로는 진보적이었으나 현실적으로는 보수적이었다. 1700년대에 인류는 모든 인간이 평등함을 문서로 만들어 천명했다. 이 원칙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선언문들에 명시되어 있고, 미합중국과 프랑스에서는 사회의 기본권으로 여겨지고 있다. 1776년의 〈독립선언문〉이 그러하고 1789년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그러하다. 이런 평등에 관한 원칙은 또한 향후 100년 이상 경제적, 정치적 사상을 지배하는 공리주의의 원칙에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반영되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원칙에 따르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기본적으로 평등을 전제로 해야만 정치적으로 정당하기에 이를 근거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의 행복을 계산할 때 사회적 행복은 각 개인의 행복을 개인 차원에서만 계산해야 하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 된다. 이런 방식의 평등 원칙은 공리주의를 주장하는 철학자와 경제학자들이 강조했으며 특히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과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이 결과에 분명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평등 원칙은 보수, 진보를 모두 막론하고 그 시대의 사회경제적 사고의 주요 근거였는데 벤담이 주창하고 이후 고전주의 학파가 물려받은 ‘한계효용의 법칙’으로 더욱더 견고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1크로나가 잉여로 남아 미약하게나마 생활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면 소득이 클수록 만족도가 낮아짐을 의미하므로 1크로나는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에게 더 “가치”가 있다. 그렇게 가정하면 당연히 사회 전체의 만족도는 더 증대될 것이기에 부자에게서 가난한 자로 분배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 소득과 자산의 평준화를 위한 정치적 행위는 이러한 관점에서 경제적으로 완전히 평등한 것이라고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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