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신의 기원
태초에 인간은 만물의 제일원인이자 하늘과 땅의 통치자인 신을 창조했다. 신은 이미지로 표현될 수 없었고 그를 섬기기 위한 신전이나 사제도 없었다. 그는 부족한 인간의 숭배를 받기에는 너무나 존귀했다. 점차 신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신이 너무 멀어졌기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는 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게 되었다. 결국 신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1912년부터 출간된 독일 가톨릭 사제 빌헬름 슈미트1868~1954의 저서 《신 개념의 기원》전 12권에서 하나의 이론으로 대중화되었다. 슈미트는 인간이 많은 신들을 섬기기 전에 원시 유일신교가 있었다고 암시했다. 본래 인간은 이 세계를 창조하고 저 높은 하늘에서 인간사를 다스리는 유일한 ‘최고신’을 인정했다. 그러한 지고신때로는 하늘과 관련이 있기에 천신天神으로도 불렸다 신앙은 아직도 많은 아프리카 부족들의 종교적 삶에서 두드러지는데, 그들은 기도로 신을 간구하고 신이 자신들을 지켜보며 잘못을 벌하리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신은 신기하게도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제외되어 있다. 신에 대한 특별한 제례도 없을뿐더러 신을 조상彫像으로 표현하지도 않는다. 부족원들은 신은 표현할 수 없으며 인간 세상에 의해 오염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신이 ‘멀리 가버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인류학자들은 이런 신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고귀해서 결과적으로 열등한 영들과 더 접근 가능한 신들로 대체되었다고 설명한다. 슈미트의 이론에 따르면 고대에 지고신 역시 이교토속 신앙의 더 매력적인 신들로 대체되었다. 따라서 태초에는 유일신이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이론이 사실이라면 유일신교야말로 삶의 신비와 비극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개발한 가장 최초의 개념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개념은 또한 그러한 신이 직면해야 했을 몇 가지 문제를 나타낸다.
원시 유일신론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제기되어 왔다. 신들을 창조하는 작업은 인간이 항상 해 왔던 일인 듯하다. 어떤 종교적 개념이 더는 효과적이지 않으면 곧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다. 천신의 경우처럼 효과적이지 않은 개념은 큰 야단을 떨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다. 지금 우리 시대의 많은 이들은 수세기 동안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이 섬겨 온 신 역시 천신만큼이나 멀어졌다고 말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사실상 신이 죽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확실히 신은 점점 더 많은 이들의 삶에서, 특히 서유럽인의 삶에서 잊혀 가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그들의 의식 속에 한때 신이 차지했다 사라져 생긴 ‘신의 빈자리God-shaped hole’에 대해 말한다. 비록 어떤 면에서는 무의미해 보일지 몰라도, 신은 우리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위대한 개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잃어 가고 있는지 이해하려면―즉 신이 정말로 사라지고 있다면―사람들이 이 신을 숭배하기 시작했을 때 무엇을 했는지, 신이 무엇을 의미했고 어떻게 상상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신 개념이 점차 생겨나던 약 1만 4천 년 전 고대 중동의 세계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에누마 엘리시〉의
창조 신화
오늘날 종교가 인간사와 무관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대다수 사람들이 더는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것에 둘러싸여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 문명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물리적, 물질적 세계에만 관심을 두라고 가르친다. 세계를 관찰하는 이러한 방법은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 결과 중 하나는 우리가 ‘영적인’ 것 또는 ‘거룩한’ 것에 대한 감각을, 말하자면 편집해버렸다는 것이다. 그 감각은 더 전통적인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에 속속들이 배어 있었고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는 데 본질적인 요소였다. 남태평양 제도에서는 이 신비로운 힘을 ‘마나’라고 부르고, 다른 사람들은 ‘영靈’이나 ‘영기靈氣’로 경험한다. 때로는 방사능이나 전기의 형태를 띤 비인격적인 힘으로 느껴졌다. 부족장 내부에, 식물이나 돌, 동물 속에 머무는 힘이라고 믿기도 했다. 라틴인은 성스러운 숲에서 누멘영을 경험했고, 아랍인은 보이는 풍경 속에 진정령이 있다고 느꼈다. 자연히 사람들은 이 실재와 접촉해 도움을 받고 싶어 했고, 또는 그저 숭배하고 싶어 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힘을 인격화해 바람, 태양, 바다, 별과 연관되면서 동시에 인간의 특성도 지닌 신들을 만들었을 때,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과 주변 세계에 대한 친밀감을 표현한 것이다.
독일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1869~1937는 1917년에 출간한 그의 중요한 저서 《성스러움의 의미》에서 바로 이 ‘누미노제’의 감각이야말로 종교의 근본이라고 주장했다. 이 감각은 세계의 기원을 설명하거나 윤리적 행동의 토대를 찾으려는 어떠한 욕구보다 앞섰다. 인류는 누미노제의 힘을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했다. 그 힘은 때로는 거칠고 광적인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깊은 고요함을 일깨웠다. 때때로 사람들은 삶의 모든 면에 내재해 있는 이 신비스러운 힘 앞에서 공포와 외경과 겸손을 경험하기도 했다. 신화를 만들고 신들을 숭배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자연 현상을 사실에 충실하게 설명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상징적 이야기나 동굴 벽화나 조각품은 그들이 경험한 경이를 표현하고 이 압도적인 신비를 자신들의 삶과 연결하려는 노력이었다. 사실상 오늘날 시인, 미술가, 음악가도 종종 이와 비슷한 욕구에 사로잡힌다. 가령 농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구석기 시대에 지모신地母神 숭배는 인간 생활을 변화시키는 풍요야말로 정말로 성스럽다는 감각을 표현한 것이었다. 고대 예술가들은 지모신을 벌거벗은 임신부로 묘사한 조각상들을 만들었는데, 고고학자들은 이 조각상들을 유럽, 중동, 인도 전역에서 발굴했다. 지모신은 중요한 이미지로 수 세기 동안 남아 있었다. 옛 천신과 마찬가지로 지모신도 이후 신들의 집단에 편입되어 오래된 신들 옆에 자리 잡았다. 일반적으로 지모신은 가장 강력한 신들 중 하나였는데, 다소 모호한 위치인 천신보다 분명 더 위력적이었다. 고대 수메르에서는 이난나, 바빌로니아에서는 이슈타르, 가나안에서는 아나트, 이집트에서는 이시스,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로 불렸고, 이 모든 문화에서 사람들의 영적인 삶에서 지모신의 역할을 나타내기 위해 놀랄 만큼 비슷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그런 신화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너무 복잡하고 파악하기 어려워 다른 방법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실재를 묘사하기 위한 비유적 노력이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사람들은 극적이고 흥미로운 신화들을 통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강력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감각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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