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1
본래 목경이 카페에서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부류는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나 만나곤 한다. 누가 듣거나 말거나 목청껏 말하는 무신경함을 넘어 카페의 모든 사람이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는 듯 심하게 거들먹대는 사람을.
목경의 옆 테이블 두 여자가 그랬다. 둘의 목소리에는 자아도취의 기색이 있었다. 자기들 대화에 서로뿐 아니라 카페의 모든 사람, 모든 식물, 심지어 물 단지까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식이었다. 아니면 당신들 손해라는 듯이. 그래서 목경은 부끄럼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둘은 작가인 모양으로, 소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동생은 비판을 선수 치는 중이었다. 언니가 뭐라고 할세라 자기 소설의 결함을 알아서 붙었고 자백의 몫만큼 언니의 위로를 받아내려 했다. 그러나 언니는 동생에게 맞장구칠 뿐 아니라 빠뜨린 걸 챙겨주기까지 했고―“얘, 그뿐이니?”―그러니 동생으로서는 자기비판에서 자기 옹호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물론 ‘물론’이겠지, 목경은 생각했다.
목경은 자신이 못됐다는 걸 알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어쨌든 목경은 상중喪中이었다.
“핑계라고 하겠지만요, 일부러 그러는 것도 있어요.”
동생이 오만한 투로 말했다. 보기에 따라 오만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침몰중인 자존심을 건져보려는 가여운 시도일 수도 있었다. 그러니 목경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제 소설에는 ‘한 방’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단편소설 특유의 좁은 지면 탓에 문장을 아껴 쓰며 굽이굽이 나아가다 순간 탁, 터뜨리는 에피파니라고 해야 할까요, 와우 포인트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부족하다고 하잖아요. 모든 문장을 쭉 빨아올리며 꼭대기에서 탁 터뜨리는, 푹 꺼뜨리기도 하지만 그건 비위 약한 작가들을 위한 탁 터뜨림이고요. 여하튼 결정적인 한 장면, 사람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한순간, 우리가 책을 덮고 고개를 젖혔을 때 공중에 떠 있는 그 뭐가 제 글에는 없대요. 근데요.”
동생이 숨도 쉬지 않고 열렬히 말했다. 그러나 언니는 딴생각 중이었다. 언니는 앞사람을 보고 있었다. 언니의 맞은편에 앉은, 세 여자 중 세 번째 여자, 그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자기 물건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테이블에 온갖 물건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담으려면 큰 비닐봉지 너덧 개는 필요할 성싶었다.
“근데요.”
동생이 다시 말했다.
“저는 ‘한 방’을 못 치기도 하지만 안 치고 싶기도 해요.”
“어째서?”
언니가 물었다.
“왜긴요. 딴 애들이 불쌍해서죠. 소설에 쓴 모든 문장이 그 ‘한 방’을 위해 쓰이는 것 같잖아요. 그 한순간을 들어올리기 위해 팔을 벌벌 떨며 벌을 서고 있는 것 같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뭐 소설계의 대장장이가 되어 모든 문장을 평평하게 두들겨 신scene들의 평등을 꾀하겠다,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럴 주제도 못 되고요, 그저 모든 자잘함을 지우며 홀로 우뚝 선 한순간을 지지하는 것을 찜찜해한다는 거죠.”
“네가 못해서 그래.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내는 건 소신이 아니라 능력의 문제야. 할 줄 아는데 안 하는 거랑 못해서 못하는 건 깔이 다르단다.”
“언니.”
동생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못해서 못하니까 좋은 거예요. 무능해서 귀한 거예요. 잘하는데 억지로 안 하는 사람은 반드시 흔적을 남겨요. 자기 절제라는 고귀한 희생에는 어쩔 수 없는 인위가 묻어난달까요? 하하하. 세상이 그렇게 공평하답니다!”
“얘들아.”
세 번째 여자가 두 사람을 불렀다.
“또?”
언니가 말했다.
“진짜 싫어.”
동생이 말했다.
“얘들아, 미안한데 나한테 얘네를 올려줘.”
세번째 여자가 테이블 위 물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 사람이 친구가 내민 팔에 물건을 쌓기 시작했다. 맨 아래 책을 깔고 크기 순서대로 쌓아나갔다. 곧 물건이 턱까지 찼고 그러고도 많이 남았다.
“나머지는 우리가 챙길게.”
“아니야. 내가 다 옮겨야 해. 기다려줘. 다시 올게.”
언니가 떨어진 물건을 주우며 말했다.
“돌겠네.”
동생의 머리가 뚝 떨어졌다.
세 번째 여자가 짐을 잔뜩 안은 채 갈지자로 걸었다. 카페 문을 나서자마자 스카프가 무겁게 떨어졌다. 스카프는 여자의 발뒤꿈치에 의해 다시 카페 안으로 밀어넣어졌다. 카페 직원이 스카프를 들어올리자 생고기가 떨어졌다. 두 사람이 달려가 카페 직원에게 사과하고 생고기를 받아왔다. 두 사람은 생고기를 머그잔에 담았다―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은 친구를 배신하는 일이었다.
세 번째 여자에게 정신의 문제는 없었다. 정신과 몸 사이 교신의 문제라면 모를까. 어느 날 세 번째 여자는 선언했다. 영원히 일회용 비닐봉지와 용기를 쓰지 않겠다고. ‘되도록’은 안 된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일절 쓰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녀가 가게 계산대에서 주로 깨닫는 것은 어깨에 천 가방이 걸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비닐봉지를 절대 쓰지 않기로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스티로폼 포장재를 대신할 유리 용기는커녕 천 가방도 챙기지 않기 일쑤였다. 그녀는 완고한 덜렁이였다.
틈 없는 정신과 틈뿐인 몸의 간극을 메운 것은 무수한 규칙이었다. 천 가방을 챙기지 않았다면 맨손으로 모든 물건을 옮겨야 한다. 유리 용기가 없다면 생고기는 굴이든 가지고 있는 것으로 싸야 한다―올드 셀린, 언니가 갈색 핏물이 밴 스카프를 펼치며 말했다. 그래야 버릇을 고칠 수 있다. 그리하여 세번째 여자는 종종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자기 때문에 계산 줄이 밀려 머리끝까지 화난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도와주세요. 물건을 저에게 올려주세요.”
사람들은 골칫덩이를 치우기 위해 그녀의 팔에 물건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만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애들의 생떼에서 시작해 어른들의 쾌락으로 끝나는 젠가 놀이처럼.
온갖 잡동사니를 위태롭게 품은 여자가 몸을 뒤로 젖힌 채 씩씩하게 걸었다. 사람들이 여자를 계속 쳐다보았다. 희한한 광경이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삐걱대고, 펠릭스 곤살레스 토레스의 사탕처럼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짐 무더기 사람. “백 마디 말보다 이런 뇌리에 박힌 한순간이 결국 인간을 바꾸는 거 아닐까? 나만 해도 소나 돼지를 도축하는 영상을 보지 않고 있어. 보면 바뀌니까. 고기를 못 먹게 될 거야.” 언젠가 세번째 여자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목경은 세 사람의 소동을 지켜보다 머리가 아파 눈을 감았다. 장례식장에서 목경은 맹활약했다. 굵직한 일부터 사소한 일까지 도맡아 했다. 피곤했다. 게다가 장례식장은 공기가 나빴고 카페에 앉아 있는 지금까지 조문객의 검은 양말에 딸려온 먼지가 눈에 달라붙은 듯했다. 눈을 감자 물기가 돌면서 눈이 편해졌다. 그러자 어둠의 양끝을 긁으며 진자운동하던 시선도 어둠 속 한 점을 가만히 응시하게 되었다.
귀퉁이가 말리면서 불에 타 오그라지는 사진처럼 중심에서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목경은 세번째 여자가 어둠을 가르며 다가오는 환상을 보았다. 그 구제할 길 없는 답답이가 산더미 같은 짐을 안고 뒤뚱대며 오고 있었다. 얼굴에 피 묻은 스카프를 성냥팔이 소녀처럼 두르고 림보 게임 하듯 허리를 한껏 젖힌 채.
‘그러니까 이런 거란 말이지.’ 목경이 눈을 뜨며 생각했다. 먼훗날, 숨넘어가기 직전, 누군가 자신에게 오늘에 대해 묻는다면 목경은 이 이미지만을 기억할 것이다. 처음에 들었던 두 사람의 대화는 잊고.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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