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퓰리처상을 받은 극작가 오거스트 윌슨은 한 연설에서 회상했다. 어릴 적 자신은 가족 중에서 집에 있는 책을 모두 읽고 싶어한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도서대출증은 나달나달해지고 집에 반납 기한을 넘긴 책을 갖고 있었다고. 윌슨은 열다섯 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했으나 매일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을 피츠버그의 카네기 도서관에서 역사, 전기, 시, 인류학을 읽으며 보냈다. 결국 카네기 도서관은 윌슨에게 명예 고등학교 졸업장을 주었다. 그곳에서 발견한 책들이 “내가 들어가서 떠난 적이 없는 세계를 열어주”고 자신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자각으로 이끌어 큰 변화를 일으켰다고 윌슨은 말했다.
올리버 색스 박사는 어린 시절 자신이 진짜로 교육받은 곳은 런던 윌즈던의 지역 공공도서관이라 여겼고, 레이 브래드버리도 똑같이 본인은 “전적으로 도서관에서 교육받았다”고 말했다. 유명한 독학자인 에이브러햄 링컨과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경우에는, 자라면서 읽은 책이 이들의 영원한 이상과 포부를 형성했으며 언어와 논쟁이라는 도구를 제공해 이들이 자국의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썼다. “책읽기의 즐거움이 너무 커서 그게 없었다면 세상이 지금과는 많이 다르고 지금보다 많이 못했으리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책읽기는 세상을 변화시켰고 계속해서 변화시키고 있다.” 울프는 실제로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가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성장하고 동굴을 떠나 활과 화살을 내려놓고서 불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병든 사람들을 도운 이유는, 다시 말해 황폐한 사막과 혼란한 정글에서 벗어나 집을 짓고 사회를 만든 이유는, 책읽기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알베르토 망겔은 1996년 출간한 『독서의 역사』국내 번역관은 2020년에 출간되었다._옮긴이에서 10세기 페르시아의 한 통치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통치자는 “알파벳순으로 걷도록 훈련시킨 4백 마리 낙타들”의 등에 11만 7천 권의 책을 싣고 여행했다고 전해진다. 망겔은 19세기 쿠바의 담배공장에 고용되어 노동자들에게 큰 소리로 책을 읽어주던 낭독자에 대해서도 썼다. 어린 시절 망겔을 가르쳤던 한 교사의 아버지로, 많은 고전을 암기하고 있었던 학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 학자는 나치의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동료 수용자들을 위한 도서관 역할을 자원했다. 그는 책 전체를 큰 소리로 암송할 수 있었다. 책을 암기해 지식의 명맥을 이어가는 『화씨451』의 애서가들과 아주 비슷하게 말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책을 사랑할까?
종이, 잉크, 접착제, 실, 판지, 천, 또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벽돌 크기의 이 마술 같은 물건은 실로 작은 타임머신이다. 책은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 역사의 교훈을 배우게 할 수 있으며 이상적이거나 반이상적인 미래로 데려갈 수도 있다. 지구상의 먼 곳,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먼 다른 행성과 우주로 데려갈 수도 있다. 우리가 직접 만날 일이 없을 남자와 여자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위대한 인물들이 이룬 발견을 조명하며, 이전 세대의 지혜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천문학, 물리학, 식물학, 화학을 가르쳐주고, 우주 비행의 역학과 기후 변화를 설명해주며, 우리 것과 다른 신념, 사상, 문학을 소개해줄 수 있다. 또 오즈, 중간계, 나니아, 원더랜드 같은 허구의 세계, 그리고 맥스가 괴물들의 왕이 되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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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도서목록 또는 선집과 마찬가지로, 나의 선택은 주관적이고 분명 자의적이다. 책 100권을 골라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몇몇 항목에 실제로는 여러 권의 책이 포함되어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똑같이 영향력 있거나 가슴 뭉클하게 하거나 시의적절한 책을 100권 더 추가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운 좋게도 책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높이도록 영감을 준 선생님들을 만났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의 멘토이자 문화계는 물론 뉴스 속보가 전하는 세계에도 정통한 기자로 《뉴욕타임스》 전 편집장인 아서 겔브 같은 훌륭한 편집자들 덕분에 오랜 세월 동안 책 읽기로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비평가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소개하려 한다. 숨겨진 의미를 설명하거나 전체 문학 속에 위치 지으려 하지는 않으련다. 독자들이 이 책들을 읽거나 다시 읽도록 권유하려 한다. 이 책들은 가능한 한 폭넓은 독자들이 읽을 만하기 때문이다. 이 책들은 감동을 주거나 시의적절하거나 아름답게 쓰였기 때문이다. 세계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 또는 우리의 감정생활에 대해 무언가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또는 이 책들은 그야말로 애당초 우리가 왜 책읽기에 빠져들었는지 그 이유를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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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분열되어 팽팽히 맞서는 오늘날 세계에서 책읽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우선 책은 주의력 결핍증을 보이는 이 산만한 시대에 점점 보기 힘든 깊이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흥미진진한 소설이 제공하는 마법과도 같은 몰입감 또는 분별 있거나 도발적인 논픽션 작품이 촉발하는 깊은 사색의 경험 말이다.
책은 역사를 보는 아주 놀라운 창을 열어줄 수 있다. 오랜 지식과 새로운 지식에 전면 접근할 수 있는 통행증을 제공해줄 수 있다. 전 미국 국방장관 제임스 메티스는 7천 권의 장서를 모았는데 자신의 군 시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은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무방비 상태에 놓인 적이 없었다. 어떤 문제를 예전에 어떻게 다뤘는지 몰라 갈팡질팡한 적이 없었다. 책이 모든 답을 주진 않지만 종종 우리 앞에 놓인 어두운 길을 밝혀준다.”
무엇보다 책은 점점 부족화·양극화되는 세계에서 더욱 소중해지는 공감을 촉진할 수 있다. 영국 소설가 진 리스는 이렇게 썼다. “책읽기는 모두 이민자로 만든다. 우리를 고향으로부터 멀리 데려간다.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 어디서든 우리의 고향을 찾게 해준다.”
최고의 문학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며, 확실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우리의 기본 설정값을 재검토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책은 우리를 오랜 사고방식으로부터 흔들어 깨워, 우리 대 그들이라는 반사적인 생각을 미묘한 차이와 맥락에 대한 인식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문학은 정치 신념, 종교 교리, 관습에 따른 사고에 이의를 제기한다. 권위주의 정권이 책을 금지하고 불태우는 건 물론 이런 이유에서다. 교육과 여행도 문학과 같은 일을 한다. 즉, 우리를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에 노출시킨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지적한 대로, 문학은 “자기 두개골 속에 고립된” 독자가 상상으로 “다른 자아에 접근”하게 해준다.
또는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마지막 주를 보내며 말한 대로, 책은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돼보는 능력”을 제공해줄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다투는 것의 표면 아래에 있는 진실”과 “분열이 아닌 통합, 주변화보다는 포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능력을 일깨울 수 있다.
정치와 사회의 분열로 쪼개진 세계에서, 문학은 시간과 장소를 가로질러, 문화와 종교 그리고 국경과 역사 시대를 가로질러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다. 우리의 것과 아주 다른 삶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인간 경험이 주는 기쁨과 상실감을 함께 나눠 갖는 느낌을 가져다줄 수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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