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없는 날
우리의 선인들 가운데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노래한 시인이 있었고
소설을 써서 부끄러움 가르쳐준
작가도 있었다
하루 또 하루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헤아려보면서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스스로 되물어본 적도 많았다
우리의 바탕이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믿어온 지도 오래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모른다
부끄러운 데 가리고 이 세상으로
쫓겨난 그때부터 왜 곳곳에서
“부끄럽지도 않으냐”라는 말
욕설로 쓰이게 되었는지
그렇다면 바로 부끄러움 없는 날
우리는 가장 부끄럽지 않은가
*윤동주, 「서시」, 1941.
모래내 언덕길
무악재 넘어 북쪽으로
통일로 한 구간 내려가다가
홍제동 삼거리에서 좌회전
급경사 비탈길 올라가면
옛날에 화장터 넘어가던 길
후사경 힐끗 바라보면
언제 올라탔나 뒷좌석에
하얀 상복 입은 여자 앉아 있었지
깜짝 놀라 갑자기 브레이크 밟으며
당황하던 비탈길
학교와 도서관 아파트와 쇼핑몰 들어서며
이제는 소란스럽게 행인들 붐비는 곳
모래내 언덕길
태어나지 못한
깊은 땅속 뿌리로부터
수액을 타고 힘겹게 올라와
갑갑해 몸부림치다가 꽃망울 터뜨리고
장맛비 내리기 전에 서둘러 열매 맺었을까
골짜기 흘러내리는 시냇물처럼 먼 길 돌아서
바다에 이르러 태풍이 되었을까
하늘 높이 날아올라가 두루미 되었을까
안타까워라 별별 뉘우침도 쓸모없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귀여운 아이들
아깝게 버려진 슬픈 목숨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