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장난감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그리고 다른 영장류의 놀이 방식
침팬지와
장난감
어느 날 아침, 나는 암버르Amber가 기묘하게 구부정한 자세를 한 채 한 팔과 두 다리로 절뚝거리면서 섬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쌍안경으로 관찰했다. 부드러운 빗자루 머리를 품에 꼭 안고 한 손으로 그것을 받치고 있었다. 마치 어미 유인원이 너무 작고 약해서 혼자 힘만으로 어미 품에 들러붙을 수 없는 어린 새끼를 안듯이. 암버르‘호박색琥珀色’이란 뜻으로, 눈 색깔에서 딴 이름이다는 뷔르허르스동물원의 침팬지 무리에서 청소년기의 암컷이다. 한 사육사가 우연히 그 빗자루를 남겨두었던 것 같은데, 암버르는 거기서 자루 부분을 뽑아냈다. 암버르는 가끔 그 빗자루를 가지고 털고르기를 했고, 마치 어미가 새끼를 업고 다니듯이 등 아래쪽에 빗자루를 얹고 돌아다녔다. 밤에는 자신의 밀짚 둥지에 그것을 갖고 가 보듬고 함께 잤다. 암버르는 그렇게 몇 주일 동안 빗자루를 가까이에 두었다. 이제 암버르는 다른 암컷의 새끼 대신에 자신의 새끼를 돌보았다. 다만, 실제 새끼가 아니긴 했지만.
유인원에게 갖고 놀라고 인형을 주면,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일어난다. 만약 어린 수컷의 손에 들어가면, 수컷은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대개는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려고 호기심 때문에 그러지만, 때로는 경쟁 때문에 그러기도 한다. 두 어린 수컷이 인형을 잡고 서로 끌어당기다가 인형이 둘로 쪼개지기도 한다. 수컷의 손에서 장난감이 오래 버티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에 암컷에게 인형을 주면, 암컷은 곧 인형을 새끼인 양 입양해 다정하게 대한다. 암컷은 인형을 극진히 돌본다.
한번은 헤오르히아Georgia라는 어린 암컷 침팬지가 테디베어를 갖고 실내 구역으로 들어왔는데, 며칠 동안 계속 갖고 다니던 것이었다. 나는 헤오르히아와 잘 아는 사이여서 헤오르히아가 내게 테디베어를 안도록 허락하려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간청하듯이 손을 펴서 죽 내밀었는데, 그것은 침팬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제스처였다. 우리 사이에는 철창이 있었고, 헤오르히아는 갈등했다. 헤오르히아는 테디베어를 내게 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주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헤오르히아는 테디베어를 내 쪽으로 내밀었지만, 한 다리는 꼭 붙잡고 있었다. 헤오르히아는 내가 테디베어를 살펴보고 말을 하도록 허용했는데, 그러면서 곁에서 나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내가 테디베어를 돌려줄 무렵에는 우리는 이 신뢰 행동을 통해 유대가 맺어졌고, 헤오르히아는 내 곁에 머물면서 테디베어를 꼭 끌어안았다.
영장류에 관한 문헌에는 사육 상태의 유인원거의 다 암컷이 인형을 보살피는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그들은 인형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등에 업고 다니고, 마치 젖을 먹이듯이 인형의 입을 젖꼭지에 갖다 댄다. 혹은 수화를 할 줄 아는 고릴라인 코코Koko처럼 각각의 인형에게 차례로 잘 자라고 키스를 하는데, 그러고 나서 자기들끼리 모두 돌아가면서 한바탕 키스를 주고받는다.
언어 훈련을 받은 침팬지 워쇼Washoe는 자신의 인형을 실험용 기니피그로 사용한 적이 있다. 자신의 트레일러에 새로운 도어 매트가 깔린 걸 알아챈 워쇼는 겁에 질려 펄쩍 뛰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인형을 붙잡더니 안전한 거리에서 그것을 매트 위로 던졌다. 그리고 인형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몇 분 동안 상황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고 나서 매트에서 인형을 홱 낚아챈 뒤 그것을 자세히 조사했다. 아무 해를 입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 워쇼는 그제야 안심하고서 매트 위로 지나갔다.
사람들은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장난감 선택을 통해 사회화한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장난감을 통해 우리의 편견을 아이들에게 강요함으로써 그들의 젠더 역할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바탕에는 아이는 빈 서판이고, 환경이 그것을 채워나간다는 개념이 깔려 있다. 젠더의 많은 측면이 문화적으로 정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장난감이 이 논쟁에서 중심이기 때문에, 장난감은 우리의 논의를 위해 좋은 출발점이 된다. 장난감 산업은 우리의 아들과 딸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말해주지만, 설령 우리가 장난감 가게를 통째로 사준다 하더라도, 어떤 장난감을 선택할지는 순전히 우리 아이들에게 달려 있다. 놀이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선택은 놀이를 하는 당사자에게 달려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재연과 상상력으로 스스로 즐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아이들을 빚어내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일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두는 게 최선이다.
원숭이에게 아이 장난감을 주면, 바퀴 달린 차량은 대부분 어린 수컷들의 손에, 인형은 대부분 어린 암컷들의 손에 들어간다. 그 차이는 주로 수컷이 인형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데에서 비롯된다. |
독립적 기질이 강한 미국 심리학자 주디스 해리스Judith Harris는 부모의 영향력을 기분 좋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1998년에 출간된 책 《양육 가설: 왜 아이들은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는가The Nurture Assumption: Why Children Turn Out the Way They Do》에서 해리스는 “그렇다, 부모는 아들에게 트럭을, 딸에게 인형을 사주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일지 모른다.”라고 추측했다.
빗자루 새끼와 함께 있는 암버르를 관찰하면서 나는 암버르가 인형을 원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암컷 영장류의 전형적인 행동일까? 과학자들이 원숭이를 장난감으로 시험한 결과, 원숭이의 선택은 전혀 성 중립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0년 전에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실시한 첫 번째 실험에서 제리앤 알렉산더Gerianne Alexander와 멜리사 하인스melissa Hines는 버빗원숭이에게 경찰차와 공, 봉제 인형을 비롯해 여러 가지 장난감을 주었다. 물론 이것은 이 물건들이 원숭이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상정한 것을 바탕으로 한 인위적인 설정이었다. 나는 인간의 문제를 동물에게 던져주는 우리의 인간 중심적 경향 대신에 동물의 실제 행동에 영감을 얻은 실험을 선호한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이 이 실험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원숭이들에게서도 성에 따른 사람 아이의 선호가 그대로 나타났다. 자동차 같은 운송 수단 장난감은 주로 수컷이 땅 위에서 움직이면서 가지고 놀았다. 수컷은 공도 좋아했다. 반면에 인형은 암컷이 더 많이 가지고 다녔는데, 인형을 꼭 껴안거나 생식기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후자의 행동은 새로 태어난 새끼의 생식기에 관심을 보이는 원숭이의 호기심과 일치한다. 새로 새끼를 낳은 어미 주위에 암컷들이 모여들어 꿀꿀거리는 소리와 입맛 다시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꼬물거리는 새끼의 다리를 벌리고, 찌르고, 당기고, 다리 사이에 코를 대고 냄새를 킁킁 맡는 행동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가 ‘태아 성별 공개’ 파티를 발명하기 오래 전부터 영장류는 이런 행동을 해왔다.
UCLA의 연구에서는 모든 장난감을 동시에 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원숭이들은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원숭이들이 각 종류의 장난감을 가지고 얼마나 오래 놀았느냐 하는 것뿐이다. 애틀랜타 부근에 있는 여키스국립영장류연구센터의 야외연구기지에서 붉은털원숭이히말라야원숭이 또는 레서스원숭이라고도 함를 대상으로 실시한 두 번째 연구는 이 단점을 보완했다. 나는 그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매일 이 원숭이들 옆을 지나가며 관찰한다. 붉은털원숭이는 일 년 내내 울타리로 둘러싸인 넓은 야외 우리에서 생활하는데, 이곳에서 서로 시끄럽게 다투거나 털고르기 모임을 갖거나 거친 놀이를 하며 지낸다. 원숭이들은 할 일이 많지만, 새로운 장난감에 큰 관심을 보인다. 에머리대학교에서 내 동료로 일하는 킴 월런Kim Wallen과 그의 대학원생 재니스 하셋Janice Hassett은 원숭이 135마리에게 두 종류의 장난감을 주고서 각자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 지켜보았다. 그들은 이 장난감들을 동시에 주었는데, 인형처럼 부드러운 봉제 장난감과 자동차처럼 바퀴가 달린 장난감이었다.
수컷 원숭이들은 바퀴가 달린 장난감을 선택했다. 수커슨 모든 장난감을 좋아한 암컷에 비해 외골수 성향을 보였다. 수컷이 봉제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탓에 이 장난감들은 대부분 암컷의 차지가 되었다. 어린이들도 이와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데, 남자 아이에게서 특정 장난감 선호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보편적인 설명은 남자 아이는 여성처럼 보일까 봐 두려워하는 반면, 여자 아이는 남성처럼 보일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숭이가 젠더 지각에 신경을 쓴다는 증거가 없다면, 이들이 남자 아이가 느낀다고 추정되는 것과 동일한 불안을 느낄 가능성은 없다. 진실은 더 단순할지도 모른다. 즉, 대다수 남자 아이와 수컷 영장류는 인형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실험들의 설정은 이상한데, 원숭이에게 익숙하지 않은 인위적인 물건들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단점은 특히 트럭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만든 화려한 색상의 차량은 이들의 자연 서식지에서 맞닥뜨리는 물체들과 아주 다르다. 수컷 원숭이는 공과 차처럼 움직이면서 대응 행동을 자극하는 물체에 매력을 느꼈을까? 에너지가 넘치는 수컷은 신체 활동을 수반하는 놀이를 좋아한다. 암컷이 껴안을 수 있는 봉제 장난감을 가지고 논 것은 설명하기가 더 쉽다. 인형은 몸과 머리와 팔다리가 있어 아기나 동물처럼 보인다. 암컷 원숭이는 나머지 생애를 새끼를 돌보면서 보낼 테지만, 수컷은 그렇지 않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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