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의 엔진이 꺼졌다.
아니, 심장이다. 인간은 엔진을 심장이라 부른다. 두꺼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고작 사람 주먹만 한데 발끝까지 피를 보낼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기관이다. 주기적으로 연료를 교체해야 되는 나와 달리 랑은 외부에서 피를 교체해야 할 필요도, 심장에 기름칠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태어나는 것과 만들어지는 건 그렇게 다르다. 태어난다는 건 목적 없이 세상으로 배출되어 왜 태어났는지를 계속 찾아야 하는 것이기에, 오로지 그것뿐이기에 그 해답을 찾는 시간만큼 심장의 시계태엽은 딱 한 번 감겼지만 만들어진다는 건 분명한 목적으로 세상에 존재한다. 이유를 찾아야 할 필요도 없이 존재하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것. 그렇기에 목적을 다할 때까지 망가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은 계속 엔진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랑이 말했다. 그 말은 목적을 다하면 꺼버린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랑은 거짓말을 했다.
랑의 장례는 지카가 맡아주었다. 지카는 평소처럼 하루치 물통을 들고 랑의 집을 찾아왔다가 침대에 고이 누워 있는 랑을 발견하고는 차분하게 이불로 얼굴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랑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으라고 말하고 떠났다. 그 말은 내게 여러 의미로 어려웠지만 지카의 붉게 물든 눈을 보고 나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인사로 어떤 것이 적절한지 몰라, 랑에게 다른 이야기를 했다.
“네 말을 들었다. 지카의 눈이 붉어서 입을 다물었다.”
인간의 눈이 붉게 변할 땐 입을 다물어야 한다. 랑의 명령 중 하나였다.
지카는 두어 시간 후 말간 눈으로 돌아왔다. 바퀴 달린 상자를 이륜차에 연결해 끌고 왔다. 바퀴가 지카의 허리까지 오는 저 이륜차는 지카와 랑이 함께 만든 것이다. 나는 옆에서 그들이 다치지 않게 도왔다. 조각조각 나뉘어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했던 고철 덩어리는 그렇게 사막을 달릴 수 있는 기계가 되었다. 그것은 특권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 대부분이 한곳에 평생 머물다 효용을 다하고 멈춘다. 휴대용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대개 가방이나 주머니에 들어 있어 있기만 할 뿐이다. 목적지를 설정하고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몇 없다. 물론 그런 것을 따질 수 있는 것 역시 일부 기계의 특권이겠지만……
지카는 도착하자마자 이륜차에 달고 온 상자를 열어 그 안에 있던 검은색 옷을 던지며 내게 입으라고 말했다. 내가 어렵지 않게 망토같이 긴 옷을 입는 동안 자카는 랑의 곁으로 가 이불을 치우고 손과 발을 천으로 감쌌다. 그리고 챙겨 온 바구니에서 붉은빛의 고운 모래를 꺼내 랑의 고개를 돌려가며 귀에 조금씩 흘려 넣었다.
‘세상은 시끄러우니까. 더 듣지 말고 편하게 잠들라고.’
의식이다. 진실과 상관없는 위로의 행위. 조가 죽었을 때 랑은 그렇게 말하며 지금 지카처럼 조의 귀에 붉은 모래를 흘려 넣었다. 조는 랑을 생물학적으로 낳은 사람이다. 조가 죽었을 때 랑은 울다 과호흡 증상을 보였는데 지카는 숨이 평균보다 가빠지기만 할 뿐 다분히 침착하게 모래에 소량의 물을 섞어 적갈색 액체로 변한 그것을 랑의 이마와 광대에 발랐다. 나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질문을 던지진 않았다.
‘네가 뒤에 있는데도 인간이 1분 이상 너를 돌아보지 않고 있다면 가만히 내버려둬. 인간이 돌아볼 때까지.’
지카가 내게 등을 몇 분째 보이는지 알지 못하지만 1분은 지났으리라 추측한다. 성격이 급한 지카의 손길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감각을 마비시키는 선인장의 꽃향기를 맡은 것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있으므로 적어도 3분, 어쩌면 5분 이상 흘렀을 거라 생각하지만 시간의 상대성을 생각하면 3, 40초 정도일지도 모른다. 지카는 랑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한 가닥씩 떼어내 넘겼다. 효율적이지 못한 손짓이었다. 하지만 지카의 ‘믿을 수 없을 만큼 느린 몸짓’은 랑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행위라는 걸 알고 있다. 감정에는 효율을 따질 수 없다. 따져서는 안 된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조가 떠난 뒤 랑이 방패처럼 말했다. 그 감정은 언제 소거될지 모른다. 예정도 없고 기약도 할 수 없다.
그래, 그랬었지. 슬픔의 전조가 하나도 없었음에도 버럭 슬프다고 단호하게, 슬프다기보다 화난 것에 가까운 표정으로 말하고는 했다. 저장되어 있던 장면이 선명해진다. 랑의 화난 얼굴. 만지고 싶다.
자리에서 일어난 지카는 밖으로 나가 상자에서 삽을 꺼낸다. 두 개 중 하나를 나에게 던지고 따라오라는 말도 없이 자리를 뜬다. 나는 삽을 들고 지카를 따라나선다.
랑의 집 북쪽 지붕은 다른 면들과 달리 차양이 넓다. 랑은 그 차양을 다양하게 사용했다. 정오의 햇빛을 피할 때도 사용했고, 폭풍이 없는 밤, 새벽 늦도록 그곳에 앉아 무언가를 쓰거나 읽기도 했다. 게다 죽은 조를 묻은 곳도 거기다. 조가 늘 앉아 있던 의자 밑. 그나마 무른 흙이었다. 물을 뿌리면 바로 증발하지 않는 유일한 곳. 그래서 랑은 조를 떠나보낸 후, 조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분무기로 땅에 물을 주고는 했다.
가끔은 노래도 불렀다. 랑은 늘 묘하게 엇박자에 음도 틀렸지만 부르는 걸 즐겼고 나는 그런 랑의 엉망진창 노래가 좋았다. 때론 조가 옆에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질문에 답하는 설정을 껐다. 랑의 말이 질문으로 끝나면 대답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신자가 내가 아니기에,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내 대답이 랑을 더 슬프게 할 수 있으므로.
차양 아래에는 언제나처럼 랑이 앉던 의자와 분무기가 있다. 지카는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옆으로 미뤄놓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내가 널브러진 의자를 세워 반으로 접고 옆으로 치우는 동안 지카의 이마에서는 어느새 땀이 삐질a 흐른다. 바닥으로 떨어진 땀방울은 몇 초도 유지되지 못하고 증발하고, 그 위로 또 후드득 떨어지는 땀을 보다가 도로 지카를 본 나는 그 땀 속에 눈물이 섞여 있음을 발견한다. 땀과 눈물이 떨어진 흙을 파내고, 그 위로 또 땀과 눈물이 흐르고, 그걸 또 파내는 지카는 마른 우물을 긷는 것 같다. 마치 랑이 그랬던 것처럼.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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