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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인가?
― 채털리 사건
1959년 영국에서 문학의 자유를 위한 법이 제정되었다.
그 책을 읽는 사람을 부패시키거나 타락시킬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 그 책을 출판함으로써 (…) 과학, 문학, 예술, 학문 및 기타 대상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의미에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처벌이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는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 이래로 주장해온 로맨티스트들의 관점이 법으로 공식화된 것이었다. 예술가는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내용이라도 표현할 자유가 있으며 그 자유에는 어떤 제한도 없어야 한다. ‘도덕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독자의 판단을 그르치거나, 독자를 도덕적으로 타락시키고 부패시키거나 (…) 훌륭한 소양의 도덕적 순수성이나 순결성을 파괴하거나 그런 소양을 그르치거나 파괴하거나, 인간을 비하하거나 모독할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 책이 문학이라면 보호한다.
이제 어떤 주제를 어떻게 표현하든 공적인 제약이 가해질 경우 법적 투쟁으로 승리할 발판이 마련되었다. 구약성경이 대량학살이나 유아살해, 근친상간 같은 사회적 금기를 다루지만 신성한 책이기 때문에 제작 및 유통이 가능한 것처럼, 문학 역시 그 비슷한 지위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곧바로1960년 펭귄출판사는 D. H.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 무삭제판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죽기 전인 1928년에 쓰였지만 그 ‘음란성’ 때문에 영국에서는 출판되지 못했다. 출판사는 예술의 자유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리라는 기대도 컸다. 초판을 2만 부씩이나 찍었던 것이다대개의 초판부수는 5천 부였다. 실제로 석 달 만에 3백만 부가 팔렸다!
게다가 로렌스는 이미 영국의 위대한 문학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리잡은 상태였다. 당시 영국의 유명한 평론가였던 F. R. 리비스Frank Raymond F. R. Leavis, 1895~1978가 그를 영국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았을 정도다. 로렌스는 최고의 현대 예술가이자 문학의 성자로 추앙받은 것이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 역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다만 세 가지 버전이 있었다. 첫번째는 피렌체에서에서 (물론 영어판으로) 출간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적나라한 섹스 장면이나 외설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이후 버전에서 추가되었는데 예술적 가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서였다는 의심이 든다. 실제로 로렌스는 플로렌스에서 고가의 증보판을 발행했고, 꽤 많은 수입을 올렸다.’
영국에서는 1932년에 출간되었지만 심하게 검열당해서 삭제된 구절이 많았다. 당시 리뷰 기사를 보면 그래서 오해받고 평가절하되었다고 한다. 그랬으니 당시 영국 사람들은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무삭제판으로 읽고 싶은 열망이 아주 강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젊고 아름다운 채털리 부인의 ‘혼외 정사 이야기’가 아닌가.
이 소설에는 산업화된 영국 북부의 대저택과 그 저택의 경제적인 기반이 되는 탄광을 배경으로, 허리 아래가 마비된 남편과 애인을 바꿔가며 애정행각을 벌이는 아내 채털리 부인이 등장한다. 채털리 부인은 마침내 사냥터지기인 멜러즈의 품 안에서 ‘자궁과 내장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쾌락을 찾는다. 이 작품이 큰 문제가 된 것은 상류층 부인과 하층 노동자의 혼외정사라는 설정 때문이었다. 게다가 로렌스는 하층민의 성적 언어를 적나라하게 사용하여 정사 장면을 묘사했다. 한국어 번역판에도 ‘씹’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등장한다. 그 장면들은 분명 포르노에 버금간다. 조금 인용하면 이런 식이다.
흔들거리는 그녀의 양 젖가슴이 꿈틀거리며 꼿꼿이 선 남근의 귀두에 닿으면서, 귀두로부터 축축한 물방울 같은 것이 묻어 나왔다.
그녀는 사내를 꼭 껴안았다.
“누워요.” 그가 말했다. “어서! 들어가야겠소!”
― D. H. 로렌스, 이인규, 『채털리 부인의 연인 2』, 민음사, 2013
이런 장면이 여러 번 되풀이된다. 오죽하면 재판 과정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겠는가?
이 책에는 씹fuck, 또는 씹할fucking이라는 단어가 적어도 서른 번은 나옵니다. 이런 단어가 이 작품의 문학적 가치와 어떤 관계라고 보십니까?
대학교수와 비평가들의 평가에 달려 있다?
재판 초기에는 이 작품이 음란물인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이내 쟁점은 이 작품이 문학인가 아닌가로 바뀌었다. 문학이라면 법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물음에 답할 사람들은 당시 문학 전문가인 대학교수들이었다. 그들이 ‘문학’을 설득력 있게 정의할 수 있다면 위대한 문학작품이 편협한 규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그런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내로라하는 작가, 교수, 비평가 들뿐 아니라 ‘교양 있는’ 성직자와 정치가들까지 증인으로 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선 변호사는 이 소설이 문학임을 증명하기 위해 ‘문학적 지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때 로렌스가 다닌 적이 있는 노팅엄대학의 원로 교수인 비비앙 드 솔라 핀토Vivian de Sola Pinto, 1895~1969에게 이 작품이 문학 제도권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물었던 것이다.
도서전시회에서 문학 분야의 작품 목록에 포함되는지, 대학도서관의 문학 분야의 장서에 포함되는지, 학생들에게 권하는 문학작품인지, 학위 시험에서 문학으로 언급되는 작품인지, 더 나아가 이 작품이 유럽 대부분의 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어로 번역되었는데, 그것도 문학적 가치의 지표가 되는 것인지 물었다.
당연히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더불어 핀토는 문학성이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학교수와 비평가의 능력으로 알 수 있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말하자면 문학은 문학을 판단하고 해설하고 가르치며 비평하는 전문가에 의해 판별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작품이란 비평가들의 이론에 잘 들어맞는 작품이다. 그러나 핀토는 그 이론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현대의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 이건 지나치게 권위적인데다 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하는, 전문가의 권리옹호일 뿐이다. 그런 평가가 당시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은 작가 레베카 웨스트Rebecca West, 1892~1983는 증언에서 질문에 대한 대답 방향을 묘하게 비틀었고 논의를 다시 ‘문학이란 무엇인가?’로 돌렸다.
소설의 문학적 가치는 독자가 읽고 비평가가 평가하면서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학적 가치를 정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법정은 다시 문학의 본질적 속성을 탐구하는 토론의 장이 되었다. ‘문화연구’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리처드 호가트Herbert Richard Hoggart, 1918~2014는 이렇게 증언했다.
제가 받은 감명은 한 인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땅히 지녀야 할 엄청난 경외감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문학이론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F. R. 리비스의 영향을 받았다. 예술을 비평적인 안목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문화평론가의 증언 치고는 매우 감상적이었다. 문학 혹은 예술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감동을 통한 공감의 확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화자의 취향을 드러낼 뿐이었다.
문학은 독자가 만드는 것
문학의 본질에 조금 더 접근한 대답은 헬렌 가드너Helen Gardener, 1908~1986의 증언이었다. 그는 옥스퍼드대학의 학장이었고 훗날 기사 작위까지 받았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비평가였다.
문학적 가치를 논할 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었는가? 작가의 의도가 언제나 성공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독자는 감동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사소하게 여겼던 부분에서 독자 나름대로 매우 중요한 문학적 가치를 찾아낼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보기 드물게 그 어려운 작업에 성공했다고 봅니다. 다른 작가들 어느 누구도 이런 정도의 용기와 열성으로 이만큼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언어화하기 정말 너무 어려운 경험을 글로 글로 써낸 것입니다.
여기에는 부분적이지만 매우 현대적인 사고방식이 스며 있다. 문학의 의미는 ‘독자’가 만든다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이 되면 독일의 볼프강 이제르Wolfgang Iser, 1926~2007가 ‘독자수용이론reader-response theory’을 주창한다. 비슷한 시기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는 「저자의 죽음La mort de l’auteur」1967에 대해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문학 텍스트의 의미는 작가가 아니라 창조적으로 해석한 독자의 몫이다.
1960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는 ‘아직’ 잘 정리된 문학이론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었다. 헬렌 가드너는 아마 고심 끝에 ‘언어화하기 정말 너무 어려운 경험을’ ‘용기와 열성으로 이만큼 성공적으로 해낸 작가’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 말은 곧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합리성으로 미쳐버린 세계에서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방법은 ‘씹’이었고, 그 육체적 쾌락과 성적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 비속어를 사용한 것이 문학적 성공이다. 헬렌은 아직도 천재적인 작가가 창작하고 뛰어난 안목을 가진 비평가가 인증한 것이 ‘문학’이라는 로맨티스트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답답하기 이를 데 없던 영국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비평가가 포르노에 가까운 ‘표현’에 문학적 성공이라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마 1950년대 이후의 사회 변화가 그럴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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