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선생님께
오늘은 선생님이 머물던 집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세어보니 제가 사는 집과 선생님이 살던 집 사이에는 횡단보도가 딱 하나 있더군요. 그 유일한 횡단보도를 건너면 맛있는 치아바타를 파는 빵집이 있고, 빵집을 오른편에 두고 좁은 길을 걸어 내려가면 나무를 잘라 붙여 만든 대문이 있는 집이 나옵니다. 그 나무 대문은 아귀가 잘 맞지 않아 열기 위해서는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지요. 처음에는 어떻게 여는 줄 몰라 막무가내로 잡아당기다가 문이 뜯겨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나무 대문을 살짝 힘주어 툭 밀어 열면 마당에서 볕을 쬐던 고양이 ‘멜’의 놀란 눈빛과 곧이어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형 오셨습니꺼. 오늘 참 날이 좋습니데이. 얼른 들어오이소”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저를 맞아줄 듯하지만 나무 대문은 굳게 잠겨 있습니다. 작은 일로 사이가 틀어진 친구를 못 본 척 지나칠 때처럼 서운한 마음으로 계속 길을 걷습니다.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왜 자꾸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까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선생님이 서울로 돌아가신지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보낸 시간이 아득한 먼일처럼 느껴지니까요. 아마 아직도 나무 대문 안쪽에는 선생님이 참 애지중지하던 고양이 멜이 적막한 오후를 살고 있을 것입니다. 과연 멜은 선생님과 보낸 1년 남짓한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엊그제 선생님이 메일을 주셨습니다. 그 메일은 “장정일입니다. 잘 있죠? 형이 바쁜 것 같았습니다. 제가 있었으면 한 형의 마감과 저의 마감을 (저도 오늘 아침에 한) 기념하며 술잔을 앞에 놓고 수다를 떨었을 건데……”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문장에서 《캣 바디, 캣 마인드》이다희 옮김, 한국NVC출판사, 2020라는 책을 쓴 마이클 W. 폭스라는 사람의 이름을 처음 보았어요. 그 사람이 (고양이 두 마리를 애지중지 기르는 저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연구를 했는지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쓰셨군요.
“마이클 W. 폭스에 따르면, 오늘날 많은 인간이, 동물에게는 지능/감정, 영성/초자연적 능력이 없다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지만, 인간이 그런 믿음을 가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럴 때 보통 그 전환점으로 데카르트를 얘기하곤 합니다만……) 원시적 인간은 동물과 서로 소통했는데, 이는 동물을 인간과 똑같은 지능/감성, 영성/초자연 능력을 지닌 존재로 여겼기 때문. 그런데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고, 자연을 지배하게 되면서 동물의 그런 능력을 무시하고 부정하게 되었다는 것. (바꾸어 말하면, 동물은 여전히 영성/초자연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만 그 능력을 상실했다고 말할 수도 있군요.) 마이클 W. 폭스의 이 책은 고양이가 제목을 독차지하고 내용 중 절반이 고양이로 채워져 있지만, 실은 고양이의 매력을 앞세워, 동물 일반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재고시키기 위해 쓴 것입니다.”
그렇다면 멜은 우리와 함께 보낸 모든 시간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왜 편지를 교환하기로 했으며 그걸 굳이 모르는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려는 걸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첫 만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편지는 그 만남의 끝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니까요.
2020년 7월 31일 오후,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소설가 K에게서 장정일 선생과 애월에 있는 식당에 함께 있으니 혹시 시간이 되면 잠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저는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제주에서의 제 생활이라는 게 그렇지요.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납니다.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이따금 생각지도 못한 일이 제게 깃든 무료함의 흔적을 싹 지우려는 듯 끼어들기도 합니다. 마치 그날처럼 말이죠. 그해 여름이 시작될 무렵 서울에서 소설가 K를 만났습니다. 그에게서 장정일이 제가 사는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잠시 내려와 머문다는 얘길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당장 장정일을 소개해달라고 졸랐지만 K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장정일은 낯을 많이 가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걸 그리 반기지 않는다고 했죠. 완곡한 거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K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들떴던 건 그래서였습니다. 곧바로 다락방에서 내려와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었지요. 현관에서 신발을 꿰어 신으려는 순간, 무언가 중요한 걸 빼먹었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라서 다시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고는 책장을 뒤져 제주에 내려오기 전, 아직 대학원에 적을 두고 ‘연구’라는 걸 하며 살고 있던 때 썼던 소논문을 한 부 챙겼습니다. 논문의 제목은 ‘장정일 초기 소설의 문제성’. 선생님이 1990년대 초에 쓴 소설을 읽고 나름 궁리해본 졸고였습니다. 2015년에 그 논문을 집필할 때만 해도 선생님은 제게 박제된 ‘문학사’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살면서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죠. 그날 선생님은 제 논문을 받고 제목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어깨에 메고 온 에코백에 그대로 집어넣으시고는 고맙긴 한데 자기는 이제 자기 소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 글을 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선생님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그 이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셨습니다. 물론 저는 그 이유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러한 차이는 시작에 불과했죠. 알고 보니 우리는 참 많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선생님과의 만남이 늘 즐거웠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가끔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쓴, 이해하기 어려운 두꺼운 책을 읽곤 합니다. 최근에는 헤겔의 책을 읽었는데 이런 문장이 있더군요. “정신은 스스로 절대적인 분열 속에 몸담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자신의 진리를 획득한다. [……] 정신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바로 부정적인 것을 직시하며 그 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저는 철학에 조예가 없어서 여기에 주석을 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진리가 기만적인 봉합이 아닌 절대적인 분열 속에서 탄생하며 그 분열은 합당한 대립자로서의 ‘부정적인 것’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 깊이 동의했습니다. 어쩌면 선생님과 저는 상이한 입장과 관점으로 인해 서로를 부정해야 했고 그 대립 과정에서 저의 정신은 비슷한 입장을 지닌 사람들과의 느슨한 일치에서 맛볼 수 없던 어떤 힘에 종종 사로잡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만남 이후 우리는 자주 만났습니다. 만날 날을 잡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스마트폰은커녕 낡은 2G폰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매번 이메일로 약속을 잡아야 했습니다. 이 낯선 ‘부킹’ 문화를 접하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메일은 문자나 카카오톡과 비슷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카카오톡이 인스턴트 메시지라면 이메일은 편지입니다. 내일 저녁에 술 한잔하자는 간단한 내용도 편지로 쓰려니 간단하지 않은 거죠. 초등학생 때 배운 것처럼 안부를 묻고 근황을 밝힌 뒤 용건을 적고 못다 한 말은 추신으로 달아야 합니다. 그런 편지를 몇 차례 거치다 보면 별것 아닌 약속도 은근히 깊어지게 됩니다.
귀덕리에는 갈 만한 술집이 거의 없기에 주로 선생님 댁에서 만났습니다. 한번은 직접 만든 닭똥집볶음과 과일을 챙겨 선생님 댁으로 향하며 영화 〈일 포스티노〉1994를 떠올렸습니다. 은유metaphor를 배우기 위해 파블로 네루다의 집을 찾던 우편 배달부 마리오처럼 저는 씩씩하게 언덕을 오르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지요. (선생님은 제게 묻곤 하셨죠. “형, 상징이 뭐야?” 이어지는 선생님의 대답. “같은 단어가 두 번 나오면 그게 바로 상징이야!”)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장모님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라니! 그렇지만 그 단어 외에 우리 관계를 표현할 다른 말은 없습니다.
지붕이 낮고 허름했던 연세 170만 원짜리 집. 작은 거실 중앙에 값비싼 오디오가 주인처럼 들어앉아 있던 집. 그곳이 우리의 아지트였습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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