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을 갈망하기까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공정’이라는 시대정신
2021년 10월, 미국 국무부로 외교문서a diplomatic cable 한통이 전달되었다. 각국에 파견된 외교 관료들은 본국의 대외정책 구상을 돕기 위해 정기적으로 분석 문건을 발송하곤 한다. 해당 국가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회적 사건, 최근의 정치적 상황, 경제 동향 등 외교문제 수립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의견을 담은 문서들이다. 과거에는 비밀스럽게 암호화되어 전보로 발송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케이블’cable 혹은 ‘텔레그램’telegram이라고 불린다.
물론 모든 외교문서가 일급 기밀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기관 사이에서만 주고받을 목적으로 작성된 문서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외비이기는 하다. 예컨대 오래전 위키리크스WikiLeaks를 통해 유출되었던 문서 중에는 미국 정부가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심지어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미국 정부가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Kofi Anna을 도청했다는 사실이 유출되어 전세계적으로 큰 파장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2021년, 대한민국에 주재하는 미국 관료들이 본국에 보고하기로 채택한 소재는 바로 넷플릭스로 공개된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었다.
해당 문건은 「오징어 게임」을 소재로, 특히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초점을 맞춰 한국 사회를 분석해나간다. 「오징어 게임」의 암울한 줄거리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느끼는 절망감, 그중에서도 취직, 결혼, 계층 이동이 좌절된 청년 세대의 절망감을 반영한다고 설명하면서, 거대 양당의 유력 대선후보 두명이 모두 ‘공정’fair하고 ‘정의로운’just 사회를 만들겠다고 똑같이 외치는 것이 청년 세대의 냉소만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이 익명의 미국 외교관은 선거 유세 때마다 두 후보가 공정과 정의를 약속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이 대규모 부정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상황을 ‘대한민국의 정치적 시대상’이라고 표현하며, 이런 시대정신이 「오징어 게임」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좌절감을 언급하면서 제시된 가슴 아픈 통계는 OECD 국가 중 한국이 2003년 이후로 지금까지 자살률 1위라는 것, 그리고 2020년에는 청년층만 19~29세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는 집계 결과였다. 실제로 OECD는 한국에서 자살률과 정신질환 환자가 유독 증가하는 것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적이 있기도 하다.
비단 미국 외교관들만 요즘의 한국 사회를 이렇게 독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 듯하다. 이제 더 이상 신조어가 아니라 클리셰가 되어버린 ‘헬조선’ ‘흙수저’ ‘영끌’ 같은 단어를 다시 되새겨본다. 우리 앞에 놓인 삶에 대한 좌절과 무력감, 특권층에 대한 분노와 불신,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 그래서 어떻게든 생존하거나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대박을 치고 싶은 심정. 마치 「오징어 게임」처럼, 세상에 주어진 파이가 단 하나뿐이라는 생각에 ‘일단은 가해자’가 되더라도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이겨야 하는 삶. 어쩌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경쟁자’라도 되는 것처럼 날카롭고 예민해지는 마음.
그동안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국 사회에서는 왜 유독 ‘공정’과 ‘경쟁’이라는 단어가 함께 붙어 다니며, ‘공정 경쟁’이 바람직한 사회적 가치로 부상했을까? 한 젊은 정치인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을 때, 대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을까? 공정을 향한 젊은 세대들의 전폭적 지지는 무엇을 뜻할까? 나는 분명 열심히 노력했는데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기본적인 원칙이 왜 지켜지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어떤 ‘강남 엄마’는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1등부터 100등까지 정확하게 줄 세우는” 입시가 가장 공정하고 정당한 보상을 제공해준다며, 그렇지 않은 입시 전형은 모든 불공정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많은 직장인들은 내가 힘들게 고생해서 입사한 만큼 다른 사람도 똑같이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특권과 편법이 판치는 한국 사회에서 역시 공정한 평가 방식은 시험뿐이라며, 사법고시를 포함해 각종 시험 제도를 부활시키자는 주장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런 주장에 어느 정도 타당한 면이 있다고, 만약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 실현되기만 한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그리고 이런 믿음은 “한국 사회의 뛰어난 공정성 감각”을 보여주는 것일까?
불안정한 사회,
불안한 청년
공정성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초기에는 오히려 공정성의 긍정적 측면이 강조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긍정적 평가는 주로 세대론과 결부된 형태로 나타나면서, 마치 공정성이 우리가 미래 세대로부터 배워야 할 가치인 것처럼 논의되는 경우가 많았다. “밀레니얼 세대의 공정성 감각을 이해해야 한다”든가, “청년 세대는 특히 공정성에 대한 높은 기대와 민감도를 갖고 있다”와 같은 흔한 언설이 그런 반응을 잘 보여준다. 기업인들은 “요즘 세대가 공정에 예민한데 젊은 직원들과 잘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공정을 논하는 자리에 가면 90년대생, MZ세대, 혹은 ‘이대남’을 소환하는 질문이 항상 등장하고, 이어서 젊은 세대가 불공정에 그토록 분노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답해야 한다.
젊은 세대의 공정성에 대한 열망은 이제 단순히 기대와 바람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지배 담론이 되었다. 청년들은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비판하면서 공정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한편 정치인들은 허튼 공약을 내세우면서 공정을 갈망하는 청년들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한 것이라는 핑계를 댄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공정은 최우선 가치로 앞세워지고 있고, 동시에 그 의미가 왜곡되어 있기도 하다. 이 책의 1부 전체에 걸쳐 더욱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손쉽게 내세워지는 공정이라는 가치는 전사회에 걸쳐 적용되어야 할 보편적 가치로서의 공정, 또는 사회정의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원리로서의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공정하지 않다”는 외침은 많은 경우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 억울함, 박탈감 등의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청년 세대가 공정 경쟁과 능력주의 신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사회경제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청년 세대, 특히 20대 남성들이 공정을 맹신하는 것처럼 이야기될 때가 많지만 세대, 젠더, 계급 등의 정체성 하나만으로 지금의 ‘공정성 열풍’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21년 7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중 이른바 ‘취준생’, 즉 취업 시험 준비자는 85만 9,000명으로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미 2020년에도 80만명을 넘어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2021년에 그 수치를 다시 경신한 것이다. 또한 최종 학력을 기준으로 했을 때 청년 졸업자는 470만 6,000명이었는데, 그중 3분의 1이 넘는 154만 8,000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충격적인 결과도 함께 발표되었다. 심지어 27만 8,000명은 무려 3년이 넘도록 취직을 하지 못했다. 청년들이 첫 직장을 얻기까지는 평균 10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그렇게 얻은 첫 번째 일자리의 약 3분의 1은 1년 이하의 단기계약직이었다. 만약 계약이 연장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1년 뒤 다시 구직자가 되거나, 아니면 실직자가 될 것이다. 1년마다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주기 속에서 청년들이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년들이 처한 현실은 숫자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기존의 집계 방식으로는 불안정한 노동 환경, 그리고 이런 노동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불안한 청년들의 삶이 제대로 포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국제노동기구의 기준을 따라 주 1시간 이상만 일하면 취업자로 정의한다. 또한 수입이 없더라도 가족의 사업을 돕고 있거나 일시적인 이유로 휴직 중이라면 모든 취업자로 집계된다.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실업률이 체감 실업률보다 훨씬 낮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회사에서 이른바 무급휴직을 권고한 경우, 사실상 퇴사 권유에 가깝지만 통계에서는 취업자로 분류된다. 일시휴직자는 통계상 취업자이기 때문이다. 잠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구직 활동을 하는 경우도 1시간 이상 일했으므로 모두 취업자로 집계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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