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벽이 벽에 갇혀 있다
벽은 벽을 타고 벽을 오른다
벽이 혼자 밥을 먹는다
벽은 고독하고 고독은 벽을 만든다
벽이 벽에게 말한다
벽은 말을 만들고 말은 벽이 된다
안의 벽은 밖의 벽을 그리워하고
밖의 벽은 안의 벽을 지향한다
벽 안의 나는 찬란하고
너는 쓸쓸하다
나는 자유롭고
사랑은 갇혀 있다
문門
몸을 뚫어야 문을 만들 수 있다 몸의 이곳저곳을 뚫어 여기저기 문을 만들었다 사는 동안 닫힌 문도 있고 열린 문도 있다 반듯한 문도 있고 고장 난 문도 있다 바람에 덜컹거리기도 하고 바람이 거침없이 지나가기도 한다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이 있고 몸에서 떨어져 나간 문도 생겼다 그래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문을 만들어야 한다 문을 만들기 위해 몸을 계속 뚫어야 한다 더 뚫을 몸이 없어 몸은 사라지고 문만 남을 때 비로소 문은 완성된다
하얀 방
24시간, 365일 불이 켜진 방 무덤으로 갈 수 없어 무덤인 방 동굴로 들어갈 수 없어 동굴이 되는 방 숨소리를 엿보는 방 눈빛을 엿듣는 방 잠을 들여다보는 방 심장의 박동이 말을 삼키는 방 질문이 없는 방 웅크리고 앉아 외로움의 간격을 재는 방 두려움을 세는 방 안으로만, 안으로만, 몸 안으로 하얗게 들어오는 방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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