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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1월 7일, 일본 제국 천황 메이지明治는 도쿄의 황궁에서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李垠을 접견했다. 이은은 열두 살이었다. 한국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한국 황태자의 보육을 책임지는 태자태사太子太師의 자격으로 작년 말 이은을 서울에서 도쿄로 데려왔고 이날 메이지의 어전으로 인도했다.
메이지는 일본 제국 대원수의 군복에 군도를 차고 있었고, 이은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이토는 신년 하례용 연미복 차림이었다.
메이지가 군복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으나, 아침의 일정을 시작할 때 군복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도쿄에 주재하는 서양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이 이날 접견의 분위기를 주시하고 있으므로 지엄한 법도와 위엄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신하들의 중론이었을 것으로 메이지는 생각했다. 메이지는 의전의 세부 사항은 신하들의 뜻에 따르는 편이었다. 군복 단추를 끼우면서 메이지는 조선의 어린 황태자에게 주는 인상이 지나치게 위압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서양 외교관들에게도 일본이 조선을 문명적으로 대하고 있으며, 일본 천황이 조선의 어린 황태자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애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조선 황태자는 인질이 아니라 문명한 교육을 받게 하려는 조선 황제의 요청에 따라 일본 천황의 무육撫育에 맡겨진 것임을 세계에 알리려면 군복 차림은 어색했지만, 신년의 첫 접견이므로 범하지 못할 만큼의 위엄은 필요할 것이었다. 메이지는 군복을 입으라는 신하들의 마음을 그렇게 헤아렸다. 두려움은 못 느끼듯이 느끼게 해야만 흠뻑 젖게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메이지는 1862년 임자생으로 만 열네 살에 황위에 올라서 재위 사십 년을 넘기고 있었다.
성인이 남면해서 천하의 소리를 듣고 聖人南面而聽天下
밝음을 향해 나아가며 다스린다 嚮明而治
라는 중국의 『역경易經』에서 명明, 치治 두 글자를 따서 치세의 연호로 삼았는데 사람들은 ‘밝음을 향해 나아간다明治’는 뜻으로 천황을 호칭했다. 메이지의 치세는 힘을 향해 나아갔다. 그의 시대에 밝음은 힘을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고, 시대는 그 힘을 믿었다. 천황의 군대는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이겼다. 천황의 무위는 세계에 떨쳤고, 아시아의 산과 바다에 시체가 쌓였다. 천황은 신사에 나아가서 여러 전선의 승리를 열조에게 고했고, 꽃잎처럼 떨어진 충혼들을 진무賑撫했다. 천황은 사해四海가 평온하고 백성들의 삶이 아늑하기를 기원했다. 천황이 신사에 참배할 때 삼엄하고 슬픈 기운이 당내에 가득찼다고 사관은 기록했다.
이토는 대한제국 황제 고종을 위협해서 퇴위시키고 차남 이척李拓을 그 자리에 세웠다. 이척은 순종이고 황태자 이은은 순종의 이복동생이나 태황제로 밀려난 고종이 살아 있으므로 이은은 황태제皇太弟가 아닌 황태자皇太子의 자리로 나아갔다.
순종은 황위에 오른 뒤 국내 정치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받기로 협약했다.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협약에 도장을 찍었다. 순종은 황태자 이은을 일본 유학을 명분으로 인질로 삼으려는 이토의 강요에 저항하지 못했다. 이은을 보내면서 순종은 조서를 내렸다.
황제는 말한다. 우리 황태자는 영특하고 슬기로워서 실로 군왕다운 덕이 있으므로 일찌감치 유학을 보내야 하고 깊숙한 궁중에만 있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태자태사인 통감 공작 이토 히로부미로 하여금 일본에 데리고 가서 도와주고 깨우쳐주게 하며 모든 것을 대일본 제국 대황제에게 의지해서 성취하려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처음 있는 일이며, 우리나라가 끝없이 경사롭게 되는 시초이다.
순종은 이가 여러 개 빠져서 말할 때 목소리가 흩어졌고, 캄캄한 입속이 들여다보였다.
황태자 이은은 인천에서 기선을 타고 바다를 건넜다. 이토와 한국의 동궁대부가 이은을 수행했다.
이은은 선실 안에서 동그란 선창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녁의 바다는 고요하고 막막했다. 어스름이 내려앉아서 물과 하늘을 구분할 수 없었다.
이토가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 전하, 저것이 바다입니다. 바다를 본 적이 있으신지요?
이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은은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도 또 그 아버지인 왕들도 바다를 본 적은 없을 것이었다.
이토는 또 말했다.
― 물이 다하는 곳에 큰 땅이 있고 그 너머에 또 물이 있습니다. 큰 배를 타면 이 물을 건너갈 수 있습니다. 지금 가고 있습니다.
이런 큰 물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는가. 이은은 바다를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바다는 눈앞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바다는 이은의 마음에 자리잡지 못했다. 바다는 너무 커서 실물감이 없었는데, 그 너머에 또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은이 도쿄에 도착했을 때 신바시 정거장에 메이지의 황태자 요시히토嘉仁가 시종들을 거느리고 마중나와 있었다. 요시히토는 이십대의 청년이었다. 요시히토는 이은과 같은 마차에 타고 별궁까지 동행했다.
옆자리에서 요시히토가 뭐라고 말했으나 이은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은의 귀에 일본말은 음이 높았고,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들렸다. 마차는 도쿄 중심가를 지났다. 말들이 짐수레를 끌었고 사람이 탄 수레를 사람이 끌었다. 여자들이 유아차를 밀고 지나갔다. 칼 찬 군인들이 통행인을 밀어붙이고 이은이 탄 마차에 길을 터주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마차를 향해 절하고 만세를 불렀다.
여기가 물 건너 세상이로구나. 여기에도 왕이 있고 사람들이 짐을 끄는구나…… 그러나 여기는 어째서 이렇게 다른가……
요시히토가 몇 번 말을 걸었으나, 이은은 대답하지 않고 가끔씩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지는 이은이 앉을 자리를 어좌 가까이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접견의 자리에 황후가 배석했다. 황후의 얼굴에 웃음의 자취가 엷게 드러났다. 조선의 어린 황태자에게 베푸는 일본 제국의 자애의 미소였다.
메이지는 이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세상을 낯설어하는 아이의 두려움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이는 황태자의 지위를 힘들어하는 기색이었다. 이은이 더듬거리는 일본어로 말했다.
― 한국 황제의 명령으로 유학 왔습니다. 모든 면에서 잘 지도해주십시오.
아이의 목소리는 투명하게 울렸고 눈가와 볼에서 소년의 맑음이 느껴졌다. 메이지는 일본어로 말하는 이은의 입을 바라보면서 사람의 땅 위에서 왕자 노릇 하는 일의 슬픔을 느꼈다. 이은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였다. 가마가 선명했고, 가마 주변의 머리카락이 고왔다.
……영리해 뵈는구나.
라는 말이 너무 무례해서 메이지는 발설하지 않았다. 메이지는 말했다.
― 전하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기쁘다. 사물을 바라볼 때 고국과 다른 점이 많을 것이다. 깊이 생각하라. 학업을 성취하기 바란다.
메이지는 장난감 말 한 개와 황실 문장이 새겨진 탁상시계를 선물로 주었다. 메이지는 말했다.
― 시간을 아껴라. 시간으로 세상을 잴 수 있다. 부디 시간과 더불어 새로워져라. 새롭게 태어나라.
시종장이 시계를 받들어 이은 앞에 내려놓았다.
메이지는 또 말했다.
― 공부할 때, 시계를 책상 앞에 놓아라. 짐이 내리는 시간이다.
이토는 메이지가 이은에게 주는 시계를 보면서 흠칫 놀랐다.
이토는 한국 통감으로 부임한 후 서울의 여러 공공건물에 시계를 설치했다. 건물 정면에 대형 시계를 붙였고, 집무실과 회의실마다 벽시계를 걸었다. 통감부에 모이는 조선의 대신들은 벽시계 아래서 통감의 시정연설을 들었다. 이토는 시간이 제국의 공적 재산이라는 인식을 조선 사대부들에게 심어 넣으려 했으나, 시간의 공공성을 이해시킬 길이 없었다. 이토 자신이 설명의 언어를 갖추지 못하기도 했지만 시간을 계량하고 시간을 사적 내밀성의 영역에서 끌어내 공적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문명개화의 입구라고 설명을 해도 고루한 조선의 고관들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었다.
짐이 내리는 시간이다, 라고 메이지가 이은에게 말할 때, 이토는 그 말의 크기를 어린 이은이 감당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짧게, 간단히 말하는 미카도의 위엄에 숨이 막혔다.
접견은 십오 분 만에 끝났다. 메이지가 말했다.
― 이토 공은 남아 있으라.
황후와 이은과 동궁대부가 접견실에서 나갔다. 이토는 메이지와 독대했다. 메이지의 시종들이 먼 자리에서 시립해 있었다.
메이지가 말했다.
― 짐은 오랫동안 공의 경륜에 의지해왔다. 공의 노고가 컸다.
이토는 머리를 조아렸다. 메이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이토는 짐작할 수 없었다. 메이지의 목소리는 메말라 있었다. 이것은 의례적인 덕담이 아닐 것이라고 이토는 생각했다. 이토는 말했다.
― 신 이토는 두려운 마음뿐입니다.
공의 노고가 컸다……라는 천황의 말은 어디를 겨누고 있는 것인가.
유학이라는 문명한 명분으로 이은을 데려온 정치 공작의 성공을 치하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 이후 조선 반도의 혼란한 정세를 놓고 통감을 꾸짖는 말인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시국이 엄중할 때, 신하를 독대하는 메이지의 말은 때때로 짧고 모호했는데, 여러 의미가 겹치는 그 몇 마디를 신하들은 두려워했다. 메이지는 말과 말 사이에 적막의 공간을 설정했다. 한동안의 침묵 후에 메이지는 말했다.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 반도에 보낸 병력이 충분한지, 짐은 그것을 걱정한다.
메이지가 하려는 말은 이것이었구나……
다 알면서도 말을 멀리 돌리고 있었구나……
메이지는 통감부나 한국 주둔군 사령부가 아닌 다른 계통으로 보고받고 있구나…… 아니면 내 수하에 나를 경유하지 않고 도쿄에 직보하는 자들이 있구나……
이토는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 조선 폭민의 소요사태는 소규모 다발성입니다. 범위가 넓기는 하나 지역별로 차단되어서 일계一系의 대세를 이루지는 못합니다. 군사적 사태라기보다는 군중심리의 상황에 가깝습니다. 병력을 증파하는 문제는 육군대신과 의논하고 있습니다. 주둔군은 성심을 헤아려 분투하고 있습니다.
독대는 거기까지였다. 이 두 토막의 대화를 마치고 메이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메이지는 진강에 나가서 서양 법전과 『중용』의 해설을 들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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