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인화원 도가니
2011.9.30.
어제저녁, 청각장애인 학교인 광주 인화원에서 일어난 아동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를 보고, 그때 기억이 떠올라 밤잠을 설쳤습니다. 부은 얼굴로 출근했더니 광주지검 해명 자료가 게시되어 있네요. 2007년 상반기 광주지검 공판부에서 그 사건을 담당하며, 제가 피해자들을 증인신문하고 현장 검증을 했었지요. 그걸 아는 친구들이 “로펌 제의를 받았는데 왜 아직 검찰에 있느냐?”고 농을 하길래, “2007년 하반기 공판검사가 그런 제안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피해자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재판 결과에 경찰, 검찰, 변호사, 법원이 유착했다고 오해하는 건 당연하다 싶습니다. 오해로 인한 비난에 속상하지만,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을 반성하는 기폭제가 되어 또 다른 도가니를 막을 수 있다면 감수해야겠지요.
피해자들을 증인신문하고, 영화 원작 소설인 《도가니》를 읽으며 느꼈던 소감을 싸이월드에 일기로 그때그때 적어 놓았습니다. 이 일기를 광주 인화원 성폭력 사건을 담당했던 공판검사의 해명 자료로 대신합니다.
2007년 3월 12일
오늘 내가 특히 예민해하는 성폭력 사건 재판이 있었다. 6시간에 걸친 증인신문, 이례적으로 법정은 고요하다. 법정을 가득 채운 농아자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그 분노에, 그 절망에 터럭 하나하나가 올올이 곤두선 느낌. 어렸을 적부터 지속되어온 짓밟힘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도 있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를 떠는 아이들도 있고.
눈물을 말리며 그 손짓을, 그 몸짓을, 그 아우성을 본다. 변호사들이 증인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데 내가 막을 수가 없다. 그들은 그들의 본분을 다하는 것일 텐데, 어찌 막을 수가 있을까. 피해자들 대신 세상을 향해 울부짖어 주는 것. 이들 대신 싸워주는 것. 그리하여 이들에게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 변호사들이 피고인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해야겠지.
해야만 할 일이다.
2009년 9월 20일
《도가니》. 베스트셀러란 말을 익히 들었지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잘 아는 아이들의 이야기인 걸 알기에. 어제 친구들을 기다리며 영풍문고에 들렀다가 결국 구입하고, 빨려들 듯 읽어버렸다. 가명이라 해서 어찌 모를까. 아, 그 아이구나, 그 아이라면…… 신음하며 책장을 넘긴다.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면 한발 물러서서 사건을 바로보아야 하지만, 더러는 피해자에게 감정 이입이 돼버려 눈물을 말려야 할 때가 있다. 그 사건 역시 그러했고.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었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로 피고인들이 풀려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2심에서 어떠한 양형 요소가 추가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성폭력에 관대한 선고 형량을 잘 아는 나로서는 분노하는 피해자들처럼 황당해하지 않지만, 치가 떨린다. 나 역시.
법정이 터져나갈 듯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던 그 열기가, 소리 없는 비명이 기억 저편을 박차고 나온다.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대신 싸워주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의 절박한 아우성이 밀려든다. 그날 법정에서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말려가며 한 다짐을 다시 내 가슴에 생긴다. 정의를 바로잡는 것. 저들을 대신해서 세상에 소리쳐 주는 것. 난 대한민국 검사다.
뒷이야기
2011년 9월 22일, 영화 〈도가니〉가 개봉했습니다. 제가 그 사건을 담당했던 걸 아는 친구들이 개봉 직후부터 같이 보자는 연락을 많이 했었지요. 며칠 미적거렸습니다. 저로서도 고통스럽고 마음의 빚이 큰 사건이라, 기억에서 꺼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숙제하듯 보았습니다.
“탁탁탁, 탁탁탁.” 한 아이가 수화로 ‘지금 내가 거짓말한다는 말이냐?’라며 부르르 떨던 모습이 다시 떠올라 그날처럼 숨이 턱 막혔습니다. 격렬하게 손날이 부딪치는 소리로 고요한 법정이 폭발할 듯 부풀어 올랐지요. 피고인을 위해 증인에게 따져 묻는 것은 변호사의 당연한 역할입니다. 그러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너무도 버거운 피해자로서는 거짓말쟁이로 몰리는 듯해 분통이 터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 분노를 곁에서 지켜보며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참느라 용을 썼습니다. 어른으로서, 검사로서 증인석에서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증언해야 할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으니까요.
검사가 핵심 증거인 CCTV 영상을 빼돌리는 영화의 클라이맥스, 저는 법정 공판검사석에서 황급히 일어났습니다. 영화에 몰입하다가 어느새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 그 법정에 앉아 있었나 봅니다. “난 안 그랬어!”를 외치며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요. 영화가 끝난 후 엘리베이터에서 관객들이 판사와 검사를 어찌나 욕하던지. 눈물 자국이 흥건한 채 저는 얼음이 되었고, 친구들은 제 눈치를 살피며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 표정이 구겨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광주 인화원 성폭력 사건 재판 당시 제 직속 부장이었던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마침 그 선배도 영화를 보았나 봅니다. “로펌 제안을 받았다는데, 왜 아직 검찰에 남아있느냐?”고 농담을 던지더군요. 저와 그 선배처럼 속상한 검사들이 많겠다 싶어, 동료들에게 해명하고 위로를 전하려고 부랴부랴 글을 올렸습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기자들의 전화가 쏟아졌습니다. 검사게시판 글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가 기자들을 불러 제 글을 검찰 해명 자료로 뿌렸다고 했습니다. 법무부 대변인실은 도가니 기사 톤에 어울리는 프로필 사진을 보내달라고 독촉했습니다. 공판검사로 6개월간 피해자들을 비롯해 대책위원회 사람들을 몇 번 만난 게 다일 뿐이라, 느닷없는 환호와 격려에 민망했지요. 그렇게 도가니 검사가 되었고, 이 과분한 별칭은 이후 징계와 검사 적격 심사로 검사직에서 쫓겨날 뻔할 때마다 방탄복이 되어 저를 지켜주었습니다.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에게 제가 오히려 크게 빚을 졌습니다.
2011년 법무부 국정감사 때 이은재 한나라당 의원에게서 “정의로운 일을 했다”는 격려를 받았고, 민주당 의원들이 대검 국정감사장에서 부실 수사를 질타할 때 한상대 검찰총장은 제 이름을 방패로 삼았습니다. 그 후 검찰총장의 격려 말씀과 선물이 법무부 법무심의관실로 날아들었지요. 저를 한나라당 차기 국회의원감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생겼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이 되면 잘 부탁한다는 진심 섞인 농담도 더러 들었습니다. 법무부 검사는 업무상 국회에 갈 일이 많은데, 그 후 국회의원실 문턱이 낮아져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글 한 편 올린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1년 뒤 검사게시판에 〈징계 청원〉을 올리자, ‘2012년 12월 28일 9시 53분경 마치 검찰이 부당한 구형을 하고 과거사에 대한 입장도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는 〈징계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예약 게시하여 11시경 검사게시판에 공개되고 외부로 전파되도록 했다. 이로써, 징계 혐의자는 검찰 조직 내부의 혼란을 초래하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게 하는 등 검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했다’는 징계 의결서가 날아들었습니다.
검찰 수뇌부의 마음에 드는 글이면 고위 간부가 검사게시판 글을 홍보용으로 기자들에게 뿌리더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가 뿌린 것이 아닌데도 외부 전파 책임까지 저에게 물었습니다. 도가니 일기로 대검에서 날아든 검찰총장 격려 말씀과 에스프레소 커피잔 세트가 떠올라 씁쓸했지요. 그리고 문득, ‘도가니 검사’라 불릴 자격을 이제야 갖추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7년 외압이나 내압이 없었던 광주 인화원 성폭력 사건 재판에서 정의를 외치는 것은 수뇌부가 격려하고 장려하는 일이라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외압과 내압,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외치는 것이 검사의 의무지요. ‘도가니 넘사’라는 버거운 별명에 다소 걸맞은 검사가 이제 되었구나 싶어 고통스러운 와중에 뿌듯했습니다. 피해 아이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 갚았습니다. 평생 갚아 나가겠습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