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을 짓다
창문을 열어놓으니 빗소리가 다정하다. 처마 밑 자리를 놓고 다투던 박새와 곤줄박이 부부들. 마침내 박새 부부가 이겨서 집을 차지했다. 곤줄박이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자연은 멀리서 볼 때 평화롭고 아름답다. 이 안에도 생존을 위한 무지막지한 싸움들이 존재한다. 집 앞 연못의 개구리알을 먹는 향어들처럼 탐욕스러운 애들도 없다. 해 질 무렵이면, 꽃 진 자리에 어느새 두꺼운 초록 옷을 입은 목련이 박새 부부를 품어준다. 박새들은 목련 가지를 살짝 튕기며 처마 밑 제 집으로 든다. 어제는 바람이 많이 불었고, 300년 된 느티나무는 바람을 통째로 안고 흔들리는 거대한 풍선 같았다. 그 아래 오두막 ‘인피니튜드The Infinitude’가 거의 완성되어간다. 집을 짓는 K가 어제 데크 기둥을 세운 후 기분이 좋은지 그 위에 서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느티나무가 무수한 초록 이파리를 흔들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가 집을 짓는 동안 나는 계간 《시와경계》에 보낼 ‘시인이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원고를 썼다. 박완호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다. 제목은 〈고통의 코뮌과 빛나는 언어 ― 박완호 시인에게〉. 저녁 무렵 난생처음 호박전을 부쳐 K와 함께 막걸리를 조금 마셨다. 스마트폰으로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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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공간의 특징 중 하나는 어둠을 그냥 어둠으로 놓아둔다는 것이다. 투명성에 발가벗겨졌던 세계가 밤이 되면 완벽한 비밀, 무지의 세계로 변한다. 빛나는 것은 오직 하늘의 별들, 그리고 달빛뿐이다. 오늘 밤처럼 비가 우는 날이면 그것들마저 없다. 밤이 되면 자연은 비밀의 성채城砦로 변하여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밤바람 소리, 짐승이 지나가는 소리, 심지어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그것들의 의미망은 무한대로 확대된다. 때로 신비고 공포다. 데크를 지나가는 들고양이의 발소리는 낮의 투명성을 상실했으므로 상상 가능한 온갖 소리가 된다. 그리하여 밤의 모든 것들은 상징이고 은유다. 먹실골 뒤, 봉화산 속에는 지금쯤 촉각을 곤두세운 동물들이 ‘알 수 없는 것’의 신비 속을 배회할 것이다. 낙엽송 밑을 지나는 들쥐는 부엉이를 보지 못할 것이며, 작은 나뭇가지가 바람에 부러지는 소리에도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빛의 창검에 노출되지 않은 것들은 모두 의미의 보배들이다. 나는 이 산속에 들어와 매일 밤 무지의 베일을 느낀다. 거기에 무한성이 숨어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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