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엄마들의 도시
― 도시는 어떻게 엄마들을 외면했는가
임신을 하면 〈안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은 순식간에 낯설게 변한다. 당신의 몸은 갑자기 타인아기을 위한 환경이 되고 당신이 세상에서 움직이는 방식도, 사람들이 당신의 몸을 인식하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딸 매디를 임신한 동안 런던에서 늘 그렇듯 음울했던 겨울과 이상하게 따듯했던 봄여름을 났다. 그때는 켄티시타운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는데 지하철로 겨우 다섯 정거장 거리인데도 영원히 닿지 못할 것처럼 멀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오전 근무를 하는 날은 출근 도중에 속이 울렁거려서 아치웨이 역에서 내려서 쉬었다가 조심조심 다시 지하철에 올라타곤 했다. 겉으로 임신한 티가 나지 않을 때는 내 안색이 아무리 창백한들 자리를 양보받을 가능성은 없었다. 하지만 배가 나오고 나서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나는 임신한 후에도 전과 다름없이 생활하기로 결심한 터였다. 세리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가 임신한 상태에서 그랜드슬램 우승을 하기 한참 전이었는데도 그랬다.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은 지 얼마 안 된 데다 『우리의 몸, 우리 자신Our Bodies, Ourselves』까지 갖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페미니스트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라면 여성 혐오적인 의사와 싸움도 불사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영국에서는 요즘도 조산사가 산전후 관리의 대부분을 맡고 있어서 내가 엉뚱한 대상을 향해 분노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오히려 문제는 도시에서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 내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때는 아직 〈페미니스트 지리학〉을 알기 전이었지만 나는 확실히 페미니스트였으므로 나의 페미니스트 자아는 매번 발끈했다. 내 몸이 갑자기 아무나 만지거나 품평해도 되는 공공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 몸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불편을 끼쳤고 그들은 그 사실을 내게 알리길 주저하지 않았다. 내 몸의 새로운 형태는 내가 도시에서 누렸던 익명성과 비가시성을 빼앗아 갔다. 나는 더 이상 군중 속에 녹아들 수도, 사람 구경을 할 수도 없었다. 도리어 내가 구경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렇게 혜택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출산하고 난 뒤에도 그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임신과 육아는 도시가 얼마나 성 편향적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그 전까지는 내 몸이 어떤 형태로 구현되었는지를 그렇게까지 뚜렷하게 인식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내 성별은 내 외모에 명백하게 나타나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랬기에 의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임신으로 인해 새로운 외모를 갖게 되자 도시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되었다. 나의 외모와 도시 경험 사이의 관계는 전보다 더 원초적인 것이 되었다. 예전에도 길거리에서 성희롱을 당하거나 공포를 느껴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뿌리 깊고, 사회 체제와 관련되고, 지리적인지는 몰랐었다.
소요객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개인이 도시에서 갖는 익명성이나 비가시성을 온전히 누려 본 적이 없다. 언제 어디서든 성희롱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군중의 일부로 인식될 수 있는 시간이 늘 제한적임을 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이자 비장애인이라는 특권을 가진 덕에 나는 상당한 비가시성을 누렸다. 완벽하게 도시 군중 속에 녹아드는 것, 자유롭게 길을 건너는 것,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사람 구경을 하는 것은 산업 도시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래 진정한 도시적 이상理想으로 간주되어 왔다. 특히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의 글을 통해 각광 받기 시작한 소요객flâneur이라는 인물은 도시의 〈열정적인 구경꾼〉이자 소동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눈에 띄지 않고 〈군중과 한 몸이 되고자〉 하는 신사다. 철학자 겸 도시 생활 저술가인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요객을 현대 도시에 필수적인 도시인상像이라고 정의했으며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 같은 도시 사회학자들은 〈심드렁한 태도blasé attitude〉나 익명성 유지 능력을 이 새로운 도시인의 고유성으로 규정했다. 이 저술가들의 관점에 따르면 소요객은 당연히 늘 남자였으며 당연히 백인이자 비장애인이었다.
소요객이 여성이었을 수도 있을까? 페미니스트 도시 저술가들은 여기서 두 부류로 나뉜다. 어떤 사람들은 소요객이라는 개념 자체가 배제적 비유라며 비판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요객이라는 개념에 반발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여성은 남성적 시선male gaze,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이성애자 남성의 시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완전한 비가시성을 획득할 수 없다. 그러나 반대파는 여성 소요객이 늘 존재해 왔다며 버지니아 울프virgina Woolf를 예로 든다. 1930년 수필 「런던 거리 헤매기Street Haunting: A London Adventure」에서 울프는 런던 거리를 걷는 동안 낯선 이들의 마음을 엿보는 상상을 하며 〈일상을 벗어나는 것은 가장 큰 즐거움이다. 겨울 거리를 헤매는 것은 가장 큰 모험이다〉라고 술회한다. 또 일기에도 〈런던에서 홀로 걷는 것은 가장 훌륭한 휴식이다〉라고 적음으로써 그녀가 밀려드는 군중 속에서 어느 정도 평안과 거리감을 발견했음을 암시한다. 지리학자 샐리 먼트Sally Munt는 이성애적 시선이라는 일반적인 공식을 벗어나 다른 여자들을 관찰하는 데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도시적 인물상으로 레즈비언 소요객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로런 엘킨Lauren Elkin은 『도시를 걷는 여자들Flâneuse: Women Walk the City in Paris, New York, Tokyo, Venice, and London』에서 여성 소요객의 보이지 않는 역사를 복원하려고 시도한다. 엘킨은 여자들이 거리에서 대단히 눈에 띄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늘 관찰당하지만 도시 생활이라는 이야기에서는 누락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행위가 소요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기 한참 전인 젊은 시절에 파리 거리를 거닐었던 경험을 묘사한다. 〈나는 파리에서 몇 시간을 걷고도 아무 데도 《도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도시가 세워진 방식을 바라보고, 비공식적인 역사를 이곳저곳에서 발견하면서 (……) 나는 잔재, 결, 사고事故와 우연한 만남과 예상치 못한 입구를 찾아다녔다.〉 보들레르, 베냐민, 지멜 같은 남자들이 여성 소요객이라는 존재를 상상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들의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여자를 발견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엘킨은 주장한다. 당시 공공장소를 걸어가는 여자는 다른 목적으로 외출한 사람보다는 매춘부성 노동자로 인식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그러나 엘킨은 〈만약 우리가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거리에서 보들레르를 스쳐 지나가는 여성 소요객을 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여성 소요객이 임신했거나 유모차를 밀고 있을 수도 있을까? 예술가이자 학자인 캐터리 글래디스Katerie Gladdys의 비디오 작품 「유모차 소요객Stroller Flâneuse」은 제목으로 말장난을 하면서 ― 〈Stroller〉에는 유모차라는 뜻도 있고 소요객이라는 뜻도 있다 ― 글래디스가 자기 동네인 플로리다주 게인즈빌에서 유모차를 미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녀는 엄마 소요객으로서 〈건축물과 지형의 계보에서 패턴과 서사를 찾는 동시에 아들이 흥미를 보일 만한 것을 찾는다〉. 글래디스는 〈유모차를 미는 행위는 실제로 도시의 공공장소를 점유하는 사회적 절차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나는 한편으로는 이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유모차를 미는 엄마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다른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고전적 의미의 소요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들이 되찾은 여성 소요객도 사실은 거리에서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할 수 있는 〈평범한〉 몸의 소유자로 한정된다. 여성 소요객에 대해 이야기한 저술가 중 임신한 몸을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임신을 경험하는 사람이 모두 여자는 아니지만 ― 예를 들면 트랜스젠더 남자도 있지만 ― 임신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그 주체를 여성으로 상정한다. 따라서 여성 소요객을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임신부 소요객이라는 개념은 아예 상상 초월일 가능성이 높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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