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의 고래
태백산맥이 해안을 바싹 압박하면서 가파른 경사로 물에 잠겼다. 해안단애가 끊어지는 자리마다 포구마을이 들어섰고 무덤들은 경작지나 야산 어디에나 돋아났다. 마을들의 이름은 포浦, 진津, 항港 자 돌림으로 제가끔이었지만 어느 마을이나 앞에는 바다, 뒤에는 산이었고 생선 쓰레기가 썩는 냄새와 어업용 면세 디젤이 타는 냄새도 해안의 여러 마을들이 다 똑같았다.
오호츠크해의 한류는 9월 하순부터 함경도 해안을 따라 남하했다. 차가운 물속에서 명태, 가자미, 도루묵, 양미리가 우글거렸는데, 명태, 가자미……는 그것들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본래 이름이 없었고 지금도 이름이 없다. 수억 년의 새벽마다 수평선 너머에서 해가 떠올라 빛과 어둠이 스미면서 갈라졌지만 바다에는 시간의 자취가 남아 있지 않았다. 바다의 시간은 상륙하지 않았다. 바다는 늘 처음이었고, 신생新生의 파도들이 다가오는 시간 속으로 출렁거렸다. 아침에, 고래의 대열은 빛이 퍼지는 수평선 쪽으로 나아갔다. 고래들이 물위로 치솟을 때 대가리에서 아침햇살이 튕겼고, 곤두박질쳐서 잠길 때 꼬리지느러미에서 빛의 가루들이 흩어졌다. 고래의 대열이 번쩍거리면서 원양을 건너갈 때 포구로 돌아오는 배들은 고래를 피해서 우회했다. 선원들은 아침의 빛 속으로 나아가는 고래의 대열을 오래 바라보았다. 선원들은 고래들의 행선지를 알지 못했다.
겨울에는 북빙양에서 이는 바람이 파도를 몰아왔다. 포구들은 방파제를 기역자로 꼬부려서 북쪽을 막고 남쪽을 열었다. 방파제 남쪽 끝에 무인 등대 한 쌍이 밤새 끼얹었다. 새벽에 돌아오는 연안 안강망, 연안 유자망, 채낚이 어선 들이 무인 등대 사이를 지나서 위판장 부두에 옆구리를 들이대면 거뭇거뭇한 사내들이 어둠 속에서 생선 궤짝을 내렸다. 해풍에 삭아서 반토막만 남은 태극기가 마스트에서 펄럭였고, 집어등 위에 씌운 양재기가 덜그럭거렸다. 어느 포구의 배들이나 모양이나 냄새가 다 마찬가지여서 배들이 선적지가 아닌 다른 포구로 들어가도 낯설지 않았다. 여자들은 구멍 뚫린 드럼통에 장작불을 피워서 선짓국을 끓였다. 뜨거운 국물을 삼키는 사내들의 목울대가 흔들렸고 장작불길이 얼굴에서 어른거렸다. 갈매기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끼룩거렸다. 사내들이 소주병을 던져서 갈매기를 쫓았다. 포구로 돌아올 때 정치망 어장을 건드린 선장이 그물 주인과 악다구니를 하면서 싸웠다. 그물 주인은 변상을 요구했고 선장은 너울이 몰려와서 불가항력으로 진행 방향이 어긋났다고 맞섰다. 그물 주인은 같은 시간에 들어온 다른 배의 선원들을 시비에 끌어들였으나 사람마다 말이 달랐다. 어둠 속에서 사내들의 악다구니 소리는 점점 높아갔고 사내들의 아내들이 싸움에 가세했다. 새벽에 돌아온 사내들이 위판장으로 생선을 옮길 때, 새벽에 나가는 사내들은 배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일출의 기별은 없었고, 물위에 뜬 달무리 속에서 고래들은 치솟고 잠겼다.
태백산맥에서 동해로 나아가는 하천들은 빠르고 맑았다. 깊은 골짜기를 돌아 나온 물줄기들은 하구에 닿아서도 소금기에 물들지 않고 봄 산의 풋내를 실어왔다. 수평선을 여는 아침햇살이 하구에 닿으면 빛들은 물줄기를 거슬러 퍼덕이며 상류 쪽 계곡으로 번져갔다. 물을 따라서 산냄새가 내려오고 빛이 골짜기로 올라갔는데, 보는 사람은 없었다.
칠백여 년 전에 이 포구마을 사람들이 산곡수山谷水와 바닷물이 만나는 유역에 향나무 이천 그루를 파묻었다. 부처가 입적한 후 오십육억 칠천만 년이 지난 뒤에 도솔천의 미륵이 이 세상으로 내려와서 살육과 약탈의 지옥에서 중생을 건져줄 것을 기약했는데, 사람들은 기어이 그날을 기다리면서 그 약속의 날에 미륵을 맞이하여 새 세상에 피울 향을 미리 준비하려는 것이라고 옛글에 적혀 있었다. 그때 미륵은 여전히 젊어서 멀리 보는 눈빛은 맑고 고요하며 몸냄새가 향기로울 것이었다. 말 탄 이민족의 군대가 강토를 짓밟고 백성들을 잡아서 육즙을 짜내고 껍질을 벗기는데, 임금은 먼 섬으로 들어가서 내다보지 않았다. 물가에서는 더 이상 쫓겨갈 곳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향을 묻으면서 그 소망을 돌에 새겨서 비석을 세웠다고 칠백 년 전에 난세의 사가史家는 적었다. 같은 땅 위에서 왕조가 바뀌었고 비석은 삼백 년 전의 홍수에 쓸려 매몰되었다. 대학 박물관의 조사단이 초음파 장비로 땅 밑을 뒤졌지만 향을 묻었다는 자리는 찾지 못했고, 시야가 기진하는 그 너머까지 해안단애는 뻗어 있었다. 칠백 년 전 사람들이 물가에 향을 묻을 때나 칠백 년 후 사람들이 향 묻은 자리를 찾지 못하고 돌아갈 때도 고래들은 바다에서 날뛰었다. 물고랑 밑에서 치솟은 고래들은 달려드는 파도의 대가리를 대가리로 들이받아 깨뜨리면서 원양으로 나아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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