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영의 사랑
삶은 소설이 아니니 쓰기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인물, 사건, 배경, 아무것도 고칠 수 없다. 단어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문장은 끝없이 이어졌다. 문단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망각이 단락을 구분 지었다. 오래전에 첫 문장을 잃어버린 소설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이 플롯이었다. 발단에서 전개로, 전개에서 위기로, 위기에서 다시 발단으로 되돌아오는 삶이었다. 이미 정해진 마지막 문장은 내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지울 수 없다. 돌아가서 다시 고쳐나갈 수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이상. 오래전 겨울에 음영이 내 옷소매를 붙들고 떨면서 말했을 때 나는 시간을 끄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말도 안 된다고 여기면서도 계속 곱씹게 되는 기억이었다. 나는, 원하는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 센서 등이 꺼지자 현관 타일 바닥에 맨발로 서 있던 음영이 어둠에 잠겼다.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되돌려보라고 말했다. 설마 시간을 되돌린 게 겨우 이거냐고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마디가 굵고 차가운 음영의 손가락을 떼어낸 뒤 벽돌집 측면을 둘러싼 층계를 내려가는 동안 머리 위로 차례차례 불이 들어왔다. 낮은 담 너머 골목길 끝에 선 가로등 하나가 명멸하고 있었다. 살인을 묘사하기 편리한 장소와 구도라고 생각했던 걸로 기억한다. 불이 꺼지는 순간 흉기가 사람을 헤집고, 불이 켜지는 순간 피가 골목 담벼락에 튀고…… 제한된 정보와 제한된 시선으로 완성되는 효과를 생각했다. 죽음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리라. 죽음, 하면 총을 관자놀이에 겨누는 순간을 그려보게 되던 시기였다. 총알에 뚫리는 내가 아니라 피와 뇌수를 헤집는 총알이 느낄 찰나를 반복해서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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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나는 죽지 않았다. 대학교의 작은 세미나실에서 기다란 미색 테이블 앞에 놓인 고동색 의자 중 하나에 앉아 미색 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실내는 아침이면 햇빛을 정면으로 받고, 정오를 지나면서는 미색 벽에 그늘이 지기 시작하여 해가 지기 두어 시간 전이면 형광등을 켜지 않고서는 활자를 읽기 힘들 정도로 침침해졌다.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 옆에는 상아색 책장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버려두고 간 책들, 대학 교재, 다 푼 토익 문제집, 철 지난 문예지들, 그리고 매해 쌓인 신춘문예당선 소설집과 이 대학교의 문예창작학과 출신 작가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모두 내가 읽지 않을 책들이었다. 나는 화장실에 갈 때와 끼니를 살 때를 제외하고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테이블에 턱을 괸 채 미색 벽을 바라보다가 주기적으로 쪽창이 달린 갈색 문을 돌아보았다. 테이블을 빙 돌아 반복해서 걷고, 졸리면 엎드려서 자고, 밤이 되면 빛이 새어 나가지 못하게 블라인드를 내리고, 딱딱하고 편평한 테이블에 누워 자고…… 내가 무엇 하러 버려진 대학교에 숨어 들어갔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듯이 망설임 없었다. 나는 P시의 구시가지에 있는 부모님 댁에서 지내고 있었다. 근방의 신도시가 발전하고 구시가지가 쇠락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월세로 지내던 낡은 빌라를 싼 가격에 매입했다. 어머니는 전에 없이 산책하러 나가 벚꽃 잎이 뭉개진 가로수 길을 걷고는 했다. 그해 어머니의 핸드폰 메신저 프로필은 꽃잎이 반쯤 떨어지고 새순이 종기처럼 돋아나고 있는 벚나무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내가 사진을 찍는 동안 어머니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벚나무 가지를 손끝으로 붙든 채 쑥스럽게 서 있었다. 어머니 역시 삶이 달라지리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생전 해본 적 없던 집 단장을 하고, 축 절인 시체 같은 아버지를 다시 거실 소파에 앉혀놓았던 것일 테다. 나 역시 삶이 달라지리라고 믿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를 H시의 대학교 세미나실 의자에 앉혔다. 지금에서야 그것이 보잘것없지만 희망이었음을 나는 안다. 어머니 같은 사람에게 주어진 희망은 관용을 베풀도록 한다. 가장 가까운 자신에게, 그리고 배척하는 먼 타인에게도. 나 같은 사람에게 희망은 스스로를 유폐하는 필요조건이다. 나는 기대 끝에 나 자신을 유폐했다. 그럼으로써 선택지를 만들고자 했다. 유폐에서 풀려나거나, 영원히 유폐되거나. 스스로 풀려나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누가 나를 꺼내줘야만 했다. 이를 상기할 때마다 오래전의 음영이 내 옷소매를 붙들었다. 나는, 원하는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 나는 믿지 않았다. 믿지 않았기에 그 말에 매달렸다. 썩은 동아줄이 나를 배신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음영이 나타나 나를 구해주지 않을 거라고 알려주지 않는 이상 기다림의 끝을 눈치챌 방법은 없으므로, 유일하게 스스로 가능한 유폐를 지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H시로 향한 것은 H병원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H병원 근방의 대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진 날 나는 H시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탔다. 몇 없는 승객들은 흰 의료용 마스크 속에 재갈이 물려 있는 것처럼 말없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두리번대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가 시한폭탄의 전선처럼 이어져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어떻게든 서로를 끊고 싶어 했다. 그들은 마스크로 입을 가리지 않은 외지인인 나와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대학교 앞에서 홀로 내렸다. 미처 잠그지 못한 창을 통해 학교 건물로 들어온 나는 옥상에 올라가 그해만큼은 악명 높았던 H병원이 어스름을 등지고 어둠에 잠겨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가지 너머 만灣에 자리한 화력발전소의 연기가 불 꺼진 녹십자 위로 피어올랐다. 그 순간 내게 화력발전소에서 태우는 연기는 H병원에서 죽은 환자들의 은유가 되었고, 병원은 화장터가 되었다. 사람들은 H병원으로 실려 간다. 나는 H시로 이끌려 온 이방인이다. 이방인은 자신을 유폐하고는 자기를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스스로를 구할 수는 없다. 나는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숨을 쉬는 것, 누군가를 구하는 것뿐이다. 오로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줘야 빠져나올 수 있는 구렁텅이가 있는 법이다. 구렁텅이가 점점 깊어지는 동안, 이방인은 오로지 한 사람을 기억해낸다. 음영.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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