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 진정한 나를 만나다
탄생은 미스터리입니다. 우리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태어나졌지요. 때와 장소, 성별, 인종, 부모, 생김새 등 어느 것 하나 선택할 수 없었어요. 생일날 부르는 노래에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살아가는 내내 뼈저리게 알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수많은 철학자와 인문학자가 고민했던 ‘빅 퀘스천’, 궁극의 질문입니다.
근대 이후에 등장한 천부인권론은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했어요.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이렇게 표방합니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를 자명하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서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는다”고 말이죠. 1776년에 작성된 미국 독립선언문은 존 로크의 《통치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존 로크는 절대왕정에 대항해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뜻에 따라 국가를 세우는 인민주권론은 주장했어요. 먼저 그는 신이 왕의 권리를 부여했다는 왕권신수설을 비판합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통치권을 주고 아담의 상속자인 국왕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말이죠. 하나님은 아담에게 절대권력을 준 적이 없고, 누가 아담의 직계 상속자인지 알 수 없다고 항변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것이 ‘자연상태’라는 자연법사상을 제창합니다. 자연법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객관적인 규칙이나 척도라고 명시해요. 이에 따라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창조주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법적 지위와 권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로크가 말하는 ‘모든 인간’은 문자 그대로 모든 인간이 아닙니다. 인종, 성별, 계급, 종교의 차이를 아우르는 인간 전체가 아니죠. 그의 자연법사상에서 인간은 재산이 있는 부르주아에 한정됩니다. 로크의 정치사상은 17세기 영국에서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신흥부르주아와 지주계급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지요. 이때 인간은 생명과 자유, 그리고 경제적 재화를 만들어내는 존재입니다. 재산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통치론》을 다시 읽어보면 시대적 한계가 보이지요.
오늘날 과학적 관점에서 미국 독립선언문의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틀린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창조되지 않았고, ‘진화’했습니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밝힌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지구에 우연히 출현했어요. 인간에게 어떤 권리를 부여한 신이나 창조주는 없습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탄생한 존재가 아니죠. 우리는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 탄생했습니다.
가만히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조금씩 다르게 생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눈이나 머리카락, 키 등의 생김새는 물론 성격이나 취향도 다릅니다. 이것이 다윈이 말하는 개체들 사이의 변이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자연선택’은 개체들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비롯합니다. 환경에 적응한 개체는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한 개체는 멸종하는 과정에서 진화가 일어났어요. 우리가 진화해서 지구에 출현한 것은 생물학적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똑같이 태어나면 자연선택이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요. 지구에 사는 78억 명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등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르게, 생물학적으로 불평등하게 태어났습니다.
만약에 미국 독립선언문이 과학 논문이라면 이미 오래전에 폐기되었을 거예요. 과학을 ‘검증 가능한 지식’이라고 말하죠. 관찰이나 실험, 수학을 통해 증명할 수 없으면 과학적 사실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틀린 이론은 과학사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됩니다. 《통치론》이 나온 17세기에 뉴턴의 근대과학이 이러한 연구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그 후 중력의 법칙, 에너지보존법칙, 진화의 법칙, 광속 불변의 법칙 등이 발견되고 살아남았죠. 인간은 이러한 자연과학의 법칙을 초월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과학은 인간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쏟아내고, 인간을 보는 관점을 바꾸고 있습니다.
유전학과 전염병을 연구하는 생물학자 빌 설리번이 쓴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은 처음부터 직격탄을 날립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린 시절에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노력하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어요. 빌 설리번은 이러한 어른들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폭로합니다. 운동선수, 피아니스트,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모두가 그 꿈을 이룰 수 없다고 동심을 파괴하죠. 이 책은 최근 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밝힙니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현실은 아프지만 진정한 나를 만나는 일이니까요.
과학은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될 수 있다는 개념을 떨쳐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과 후천적인 환경에서 큰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유전자가 다르고, 몸속 미생물이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다릅니다. 우주에 우리 자신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은 힘이 작용합니다. 과학자들은 한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는 여러 지표를 찾아냈어요. 우리의 행동과 성격은 유전자, 미생물총, 호르몬 신경전달물질,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생긴 것입니다. 빌 설리번은 “우리 행동을 뒷받침하는 숨은 힘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우리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거의 모두 틀렸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고백해요.
이렇게 과학은 내가 알고 있는 ‘나’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나를 만나는 길은 쉽지 않아요. 과학책을 읽으며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힘이 들지요. 관성적인 생각을 바꾸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은 이런 인간적 한계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설명합니다. 인간 뇌는 ‘선입견이 가득 찬 편견 덩어리’라고 말이죠. 우리는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 출현한 생물종입니다. 우리 뇌는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진화하지 않았어요. 우리 뇌가 완벽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뇌는 심지어 우리가 진리라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진리가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를 들이대도 무시해버릴 때가 있다. 뇌는 왜 그렇게 게으를까? 뇌가 이런 식으로 정신적 지름길을 애용하는 이유는 생각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뇌뿐만 아니라 우리 몸도 게으르기 짝이 없습니다. 왜 생각하기 싫을까? 왜 운동하기 싫을까? 왜 타인을 이해하기 싫을까? 왜 새로운 일을 경험하기 싫을까? 모두가 귀찮아서입니다. 뇌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기 싫어합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바꾸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모두 에너지가 드는 일이니까요. 에너지보존법칙이라는 아주 간단한 과학적 원리가 우리 몸을 지배합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은 이렇게 약점투성이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앞서 뇌와 에너지의 관계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늘 제약이 따라다녀요. 전지전능하게 내 맘대로 살 수는 없지요. 과학적으로 인간의 한계와 생물학적 불평등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을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사실 인종, 성별, 민족, 외모 등의 생물학적 차이는 수많은 사회적 고통을 낳았습니다. 한 개인의 인생을 이해할 때도 생물학적 운명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동아시아에서 한국인으로, 여성으로, 비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이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불평등하다고 하면 거부감을 내비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 생물학적 불평등이 아니라 생물학적 차이로 순화해서 받아들이려고 하죠. 공정과 공평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생물학적 불평등인데, 이를 외면하고 능력주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빌 설리번은 “공평한 세상의 오류”에서 벗어나자고 말합니다. 그는 유전자를 포커판에서 주어진 카드 패로 비유합니다. 인간은 손에 쥔 카드로 최선의 게임을 펼쳐야 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이 게임을 통해 우리는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어갑니다.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지요. 가지고 태어난 유전자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고치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환경과 생활입니다.
생물학적 불평등을 인정하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입니다.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삶에서 성별과 나이, 질병에 따른 사회적 차별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원치 않은 비만, 우울증, 알코올중독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습니다. 후성 유전학은 스트레스, 학대, 가난, 방치와 같은 나쁜 환경이 유전자에 흉터를 남겨서 여러 세대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빈곤층이나 사회적 소외계층은 유전자의 횡포에 휘둘려 자신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지요. 우리는 ‘능력주의’로 사회적 약자를 몰아세울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불행과 불평등을 고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에 소개된 여러 사례는 감동적인 결과를 보여줍니다. 뉴욕에 빈민층 임산부와 아이의 성장을 추적 관찰한 연구가 있습니다. 임신 기간 중 10여 차례, 아이를 낳은 후 2년 동안 20여 차례 가정방문과 의료 지도를 실시했더니 아동학대와 범죄, 마약중독의 횟수가 극적으로 줄었습니다. 또한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지원 시스템은 아이슬란드에서도 큰 효과를 보았지요. 1990년대 아이슬란드 청소년 중 40퍼센트가 음주를 했고, 20퍼센트가 마리화나를 피웠다고 해요. 그런데 최근에 그 비율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지요. 국가에서 후원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이 알코올과 흡연에 빠졌던 아이들을 건져냈어요. 피아노 연주, 탱고 배우기, 무술 훈련 같은 ‘자아발견 프로젝트’는 아이들에게 약물보다 더 황홀한 천연 도파민의 경험을 주었거든요. 비만과 우울증, 중독에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생물학적 원인을 찾아서 생활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빌 설리번은 “증거에 기반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강조합니다. 그는 과학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말해요. 저도 동감합니다. 앞으로 제 이야기를 통해 과학이 알려주는 ‘나’를 만날 것입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을 이해해야 나답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고,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려면 남들과 다른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나의 몸과 마음, 환경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생물학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들을 인정함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별할 수 있어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원점에서 맴돌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해결할 수 없는 일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좋은 삶을 살 수 있지요. 진정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인생의 어려운 고비를 넘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