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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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즉 되살린다는 것은 생명을 모든 행동과 결정의 중심에 둔다는 뜻이다. 이는 모든 창조물, 초원, 농지, 사람, 숲, 어류, 습지, 해안지대, 해양에 적용되며 가족, 공동체, 도시, 학교, 종교, 문화, 상업, 정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자연과 인류는 정교하고도 복잡한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런 관계망이 없으면 숲과 땅, 바다, 사람, 국가, 문화는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과 젊음은 우리에게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인간과 자연 사이, 자연 내부 그리고 사람, 종교, 정부와 경제활동 사이에 필수적인 연결관계가 끊어져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절이 기후위기의 시작점이자 근원이다. 그리고 소득이나 인종, 성별, 신념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참여 가능한 해결책과 조치들을 찾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죽어가는 행성에 살고 있다. 이 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장되거나 도를 넘은 표현으로 들렸을 수 있다. 지구의 생물학적 쇠퇴는 인간이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지구의 적응 방식이다. 자연은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 인간은 실수한다. 지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되살아날 것이다. 국가, 사람, 문화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생물의 미래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 두는 것을 우리의 목적과 운명의 중추로 삼지 않는다면 이곳 지구에 우리 인간들이 왜 있겠는가?
기후위기의 근접 원인으로는 특히 차량, 건물, 전쟁, 벌채, 빈곤, 석유, 오염, 석탄, 산업형 농업, 과소비, 수압파쇄 공법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동일한 원인과 영향력을 갖는다. 인간의 안녕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경제구조들이 지구에서의 삶을 퇴보시켜 손실과 고통을 일으키고 우리가 사는 행성의 온도를 높이고 있다. 금융 시스템은 지구의 현금화를 부추기고 투자하는데, 이는 단기적으로는 금전적 부를 제공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생물학적 고갈과 빈곤, 불평등의 요인이 된다.
지구온난화를 되돌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지난 40년 동안 대부분 간과되어왔다. 화석연료의 연소는 온난화의 주된 원인이기 때문에 신속히 중단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다. 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땅과 바다로 돌려보내야 한다. 기후위기를 역전시킬 효과적이고 시의적절한 유일한 방법은 인간과 생물학적인 모든 존재의 삶을 되살리는 것이다. 이는 또한 가장 설득력 있고 성공적이며 포괄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생물학적 퇴화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위기 직전까지 우리를 몰고 왔다. 지구온난화를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지구의 전체적인 퇴화를 역전시켜야 한다.
경제 시스템, 투자, 정책들은 세상을 퇴보시킬 수도 되살릴 수도 있다. 우리는 미래를 도둑질하고 있거나 혹은 미래를 치유하고 있다. 현재의 경제 시스템을 묘사하는 한 가지 표현은 ‘착취적extractive’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빼앗고, 억누르고, 예속시키고, 착취하고, 파쇄하여 채굴하고, 구멍을 뚫고, 오염시키고, 태우고, 자르고, 죽인다. 경제는 사람과 환경을 착취한다. 퇴화의 지속적인 요인은 부주의, 무관심, 탐욕, 무지다. 기후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구 구하기’와 자기 자신의 행복, 안녕, 번영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할 것처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되살리기가 세상만 다시 살리는 건 아니다. 우리 각자도 다시 살린다. 되살리기에는 의미와 기회가 있다. 되살리기는 믿음과 호의의 표현이며 상상력과 창의성이 뒤따른다. 또한 포괄적이고 매력적이며 관대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 되살리기는 숲과 땅, 농지와 해양을 회복시킨다. 도시를 변화시키고, 적절한 가격의 녹색 주택을 짓고, 토양 침식을 되돌리고, 척박해진 땅의 지력을 회복시키고, 농촌에 활력을 준다. 지구 되살리기는 생계수단, 즉 사람들에게 활기를 주고 소생시키는 직업들, 우리를 서로의 안녕과 연결시키는 일들을 창출한다. 또한 빈곤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여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공동체에 가치 있는 참여를 하도록 하며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임금과 품위 있고 존중받는 미래를 부여한다.
기후변동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가 발표한 6차 보고서의 주 필자인 런던 그랜섬 연구소의 조에리 로겔지 박사는 2020년 12월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탄소 순 배출량이 제로일 때 온난화가 진정되리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이해다. 10~20년 안에 기후는 안정화될 것이다. 추가적인 기온 상승은 거의 혹은 전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최적 추정치는 0이다.” 이것은 과학적 합의의 주목할 만한 변화다. 지난 수십 년간 탄소 배출을 중단할 수 있다 해도 온난화의 가속도가 수세기 동안 지속되리라고 가정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은 잘못된 것이었다. 이제 기후학에 따르면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한 뒤에는 지구온난화가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가열되고 있는 지구는 인류 공통의 문제이며 모두에게 속하는 사안이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되돌리기 위해서는 서로 연결되고 의존해야 한다. 안전지대에서 걸어 나와 자기 안의 큰 용기를 발견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틀리고 나는 옳다는 방식을 뜻하는 게 아니다. 열심히, 정중하게 귀 기울이고 우리를 서로 갈라놓으며 생물들과 분리시킴으로써 그동안 끊어져 있었던 가닥들을 이어 붙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절망도, 희망도 아니다. 용감하고 두려움 없는 행동이다. 우리는 놀라운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냈다. 기후위기는 과학적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문제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궁극적 힘은 기술에 있지 않다. 그 힘은 우리 자신, 모든 사람 그리고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와 존중, 연민에 달려 있다. 이것이 되살리기다.
선택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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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지구온난화와 동의어가 아니다. 과학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온난화가 지구 생물에 미칠 영향이다. 기온 변화, 해류, 녹고 있는 극빙은 빠른 속도로 티핑포인트에 다가가고 있는 많은 부문에서 돌이키기 불가능한 파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열대 지방에 가뭄이 더 잦아져 세계의 우림들이 화재에 취약한 사바나로 바뀌는 것도 이런 손실에 포함될 수 있다. 해수의 순환에 생긴 변화는 전 세계의 날씨와 농업을 극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화재와 해충의 급속한 증가는 북부의 삼림을 파괴할 수 있다. 대양의 온도 상승과 산성화는 세계의 산호초를 모두 죽일 수 있다. 남극대륙의 트웨이츠 빙하가 녹는 속도는 가속화되어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할 것이다. 북극의 영구 동토층이 녹아 고대에 저장된 어마어마한 양의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방출될 것이다. 이런 사건들이 더 온화한 기후대에 살고 있는 한 가족에게, 나아가 그들의 도시와 경제, 기업, 식량, 정치, 아이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이해는 한다 해도 상상이 잘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길게는 1만 년 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이누이트족, 추크치족, 알류트족, 사미족, 네네트족, 애서배스카족, 그위친족, 칼라알리트족 등 녹고 있는 북극의 영향을 빠르게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북극의 20개 이상 문화들에 대해서는 이런 상상이 어렵지 않다.
기후 예측이 정확하다 해도 또 다른 일련의 티핑포인트들, 수많은 작은 변화, 결정적으로 중요한 결과들을 가릴 수 있는 그러한 불명확성 때문에 사람들은 수동적인 태도와 두려움에 빠지기보다 개입과 참여를 하게 된다. 이런 행동들이 기후위기를 늦추고 방지하며 변화시킨다. 기후위기를 끝낸다는 것은 2050년이 되기 전 탄소 순 배출량 제로를 달성해나가는 로드맵에 따라 2030년까지 적절한 속도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회를 만든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2030년까지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인 뒤 2040년까지 다시 그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수만 개의 조직, 교사, 기업, 건축가, 농부, 토착 문화 및 선주민 지도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 이미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현재 기후운동은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의 작은 부분에 머물러 있다. 수억 명의 사람이 자신에게 선택 의지가 있고 행동을 취할 수 있으며 걷잡을 수 없는 지구온난화를 힘을 합쳐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바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주체다. 논리적으로는 터무니없는 생각처럼 들릴 수 있다. 분명 개인들은 지구온난화의 전세계적 동인과 가속도를 저지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생긴 기관들이 우리를 위해 그 일을 해야 하거나 하리라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즉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열쇠가 개인의 행위에 있는지, 정부의 정책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일고 있다. 이제 그런 논쟁은 없어져야 한다. 우리에겐 사회의 맨 위에서 바닥까지, 그 사이의 모든 부분의 참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탄소발자국을 계산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 책은 더 광범위한 다른 방식을 택한다. 세상에 개인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개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아 정체감이다. 개인이 된다는 것은 인류 및 생물계와 계속해서 기능적이고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네트워크를 살펴보면 우리 각자가 대중이다. 우리는 공유하기, 선택하기, 입증하기, 가르치기, 보존하기 그리고 지도자, 도시, 기업, 이웃, 동료, 정부가 눈뜨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방법을 포함해 서로 다른 기술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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