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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관한,
있는 그대로의 시선들
자, 늘어진 뱃살이나 이중턱, 올챙이배를 두드리며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못 보는 어떤 물질을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지방을 이런 식글자 그대로 피부 깊은 곳에 존재하는 물질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방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확장하는 첫걸음이다.
다른 포유류의 지방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방은 대체로 실온에서 고체다. 이런 특성은 지방을 구성하는 긴 지방산 분자 때문이다. 모든 지방 분자는 글리세롤 분자에 달라붙은 하나의 지방산을 갖고 있다. 지방의 종류가 매우 다양한 것은 바로 이 지방산들 때문이다. 지방산은 분자의 쌓임Stack 방식 및 분자가 얼마나 단단히 쌓이는지에 영향을 준다. 어떤 것은 초콜릿의 코코아버터처럼 입속이나 피부 위에서 녹고, 어떤 것은 상당한 양의 열이 가해져야 분자의 쌓임이 서서히 분해돼 액체로 변한다. 예를 들어 라드돼지비계로 정제한 반고체의 기름는 정확히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유기조직에서 순수한 지방을 얻기 위해서는 돼지의 신장 주변에 형성된 겹겹의 흰색지방을 가열한다. 열에 의해 지방은 액체로 바뀐다. 액체를 준비해둔 접시에 따른다. 접시를 실온섭씨 20도 또는 화씨 68도로 규정화된에 놓아두면 라드는 굳어질 것이다. 이처럼 실온에서 굳어지는 지방을 ‘포화지방’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불포화지방 분자는 액체로 남아있다. 이뿐만 아니라 중간포화semi-saturated 지방, 수소화 지방, 트랜스 지방 등 여러 종류의 지방들이 있다. 그들 중 어떤 것은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어떤 것은 지방 분자의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이 책은 체지방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할 예정이니 말이다. 인체의 지방은 실온에서 굳어지는 라드와 아주 비슷한 포화지방이다. 라드와 마찬가지로 체지방의 많은 부분은 흰색이거나 적어도 ‘흰색 지방’으로 불리는 것이다. 인체 지방의 경우 실제로는 흰색이 아니라 당근이나 붉은 고추, 겨울 호박 같은 식품을 통해 섭취할 수 있는 선명한 베타카로틴 색깔이 섞인 노란색인 경우가 흔하다.
색상에 따라 달라지는
지방의 여러 효능
지방은 인간의 몸 안팎에서 여러 가지 색깔로 존재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쇠기름의 크림색, 올리브오일의 초록과 노란색, 밀랍의 짙은 노란색, 팜오일의 붉은색 등이다. 인간의 경우에는 흰색노란색, 갈색, 베이지색이 추가된다. 심지어 색의 농도에 있어서도 우리 몸속 지방은 한 가지 색이 아니다. 우리가 다량의 것들을 포함하고 있듯이 지방도 그렇다. 우리 몸속의 흰색, 갈색, 베이지색 지방은 저마다 독특한 성질과 기능을 갖고 있다.
모든 형태의 지방은 인체의 생존에 필수요소다.
흰색 지방의 중요한 역할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것이다. 어릴 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지방을 끔찍하게 혐오했던 어머니는 내게 지방은 추악하고 무익하며 불필요한 것이라고만 가르쳤다. 어느 날 소아과 의사가 크고 차가운 캘리퍼스물체의 외경이나 내경, 두께 등을 측정하는 기구로 내 토실토실한 옆구리를 꼬집어 측정하고는 지방이 어떻게 여분의 에너지로 저장되어 사람이 굶어 죽지 않게 해주는지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그러고는 안경 너머로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나는 틀림없이 굶어 죽을 염려는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겨울이 오기 전에 다람쥐들이 살이 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클리블랜드에 있는 우리 집 뒷마당 참나무 밑에서 다람쥐들이 미어터지도록 먹이를 먹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게다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긴 동면에 들어가기 전 곰들이 살을 잔뜩 찌우는 장면도 보았다. 어쨌든 그런 뻔한 사실을 추론할 줄 몰랐던 나는 그제야 지방이 사람에게도 똑같은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방 세포의 글리코겐은 간에서 우리 몸이 연료로 사용하기 좋은 글루코스로 쉽게 전환된다. 글루코스가 없으면 세포는 말 그대로 기능을 멈춘다. 세포에 글루코스가 공급되지 않는 것은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것만큼 불행한 일이다. 그 두 가지 중 어느 하나, 혹은 두 가지 모두 공급되지 않으면 세포는 죽는다. 세포 수준에서 그것은 굶어 죽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람쥐나 곰, 그 밖의 생명체에게 겨울이 종종 그렇듯이 실제 기근 상태일 때는 물론이거니와 몸이 너무 아파서 먹지 못할 때, 너무 바쁘거나 스트레스로 인해 점심 식사를 거를 때, 너무 가난해서 충분히 먹지 못할 때, 인체의 지방은 글루코스의 공급이 유지되도록 도와준다. 흰색 지방의 역할이 우리가 굶어 죽지 않게 보호해주는 것만은 아니다. 흰색 지방은 호르몬을 방출해 신진대사 조절을 도와주고 단백질 생산 과정에 관여하며 골격과 내장 기관을 격리, 보호한다.
볼티모어의 대형병원에서 처음 인턴십을 했던 방사선 전문가인 내 친구는 총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 온 사람들에게 X선을 조사照射했을 때의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었다. 그녀는 실제 환자들을 직접 만나는 대신 영상만 주로 봤는데, 여러 발의 총알이나 부러진 칼날 끝, 그 밖에 놀랍고도 위험한 물체가 몸에 박혀있는 환자의 영상 기록을 받아보며 놀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친구와 함께 일하는 외과 의사들은 웃었다. 실제 환자들을 보는 외과 의사들은 생살을 뚫고 들어가 피가 철철 나도록 구멍을 낸 총알에 대해서만 걱정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장기들은 피부 아래 환자의 지방에 의해 지지되고 둘러싸인 채, 제자리에 무사히 남아있으니까 말이다.
물질대사에 있어, 그리고 때로 물질적으로 지방은 훌륭한 보디가드 역할을 한다. 이 흰색 지방에는 흥미롭게도 혈액이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활성화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대부분의 흰색 지방은 피부 아래, 다양한 두께의 피하층으로 존재한다. 피부 자체는 혈관이 매우 발달해 무수한 모세 혈관과 정맥, 동맥이 있다. 내장 근육과 장기도 혈관들로 꽉 들어차 있지만 그 주변 지방만은 그렇지 않다. 몸속 더 깊숙이 자리 잡은 흰색 내장 지방도 마찬가지다.
지방은 혈관 조직에 둘러싸여 있되, 혈관 조직을 갖지 않은 경우가 많다. 흰색 지방 세포는 혈액 순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방 세포가 인체 기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에스트로겐estrogen과 아디포넥틴adiponectin, 염증과 인슐린을 조절하는 단백질 호르몬, 식욕 조절에 도움을 주는 렙틴leptin 호르몬 등을 매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공급하는데도 말이다. 혈액이 흐르지 않아도 아무런 지장 없을 뿐만 아니라, 맡겨진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화학적 신호를 제대로, 적절한 비율로 주고받는다.
더욱 인상적인 게 있다. 흰색 지방 세포는 체내의 에너지원 없이도 이 모든 역할을 척척 해낸다는 사실이다. 살아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세포를 위해 화학적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가 흰색 지방 세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흰색 지방 세포가 자기만의 특별한 색을 갖지 않는 것도 그 이유다.
인체의 또 다른 중요한 지방 형태인 갈색 지방은 미토콘드리아를 함유하며 혈관도 풍부하다. 갈색 지방 세포는 자신만의 에너지를 만들고 열을 발생시키는, 아주 색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생존에 관여한다. 아기들은 백분율 상 누구보다도 많은 갈색 지방을 갖고 있다.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양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어른이 될수록 갈색 지방을 많이 잃어버린다. 성인이 되면 갈색 지방은 소량만 남는다. 비록 여성들이 남성보다 조금 더 많고, 날씬한 사람일수록 조금 더 많은 양을 보유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많이 보유하든, 이 갈색 지방은 견갑골 사이 목 부위, 심장과 신장 주변처럼 몸에서 가장 중요하고 취약한 부분에 존재하면서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이런 발열 기능은 흰색 지방에 함유된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체내 흰색 지방의 양을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대단한 관심거리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인체에는 가끔 이 두 종류가 결합한 지방이 있다. ‘베이지 팻베이지색 지방’은 언제나 나에게는 펑크 밴드에 특히 어울리는 이름처럼 들린다. 체내에서 이 지방은 정확히 이름 그대로이다. 흰색과 갈색 지방이 섞여 베이지색처럼 보이는 것이다. 베이지색 지방은, 갈색 지방처럼 흰색 지방 세포를 이용해 열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흰색 지방처럼 나중에 쓰기 위해 글리코겐을 저장한다. 베이지색 지방은 쇄골과 척추를 따라 분포한 갈색 지방보다 훨씬 적은 양만 존재한다.
몇 온스밖에 안 되는 이 ‘특수 지방’은 소량이지만 강력하다. 인체가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 필요한 신체적 조건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베이지색 지방은 지방이 생존 기제로서 잘 이용되도록 모든 측면을 깔끔하게 조화시킨다. 효율적이고 유용하게 멀티태스킹을 하는 능력이 있어 보인다.
이렇듯 모든 지방은 유용하며 인체에 필요한 각각의 역할, 지방만이 할 수 있는 특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인체가 즉시 이용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음식을 섭취했을 때,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위험을 대비해서 몸에 축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사 과정을 거친, 즉 유용한 글루코스로 전환된 순수 에너지의 양은 9푸드칼로리, 좀 더 정확히 37킬로줄kilojoule, 킬로줄의 미터 단위이다. 이들 지방의 그램당 유용성은 생과 사를 가를 수도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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