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혼자 있는 시간을 생각한 사람들
시간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1791년, 400년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의 ‘혼자 있기’를 고찰한 전례 없는 책이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고독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스위스 철학자 요한 게오르그 치머만Johann Georg Zimmermann, 1728~1795, 철학자이자 조지 3세와 프리드리히 대왕의 개인 주치의 ― 옮긴이이 집필한 네 권짜리 책이었다. 당시 〈젠틀맨스 매거진〉은 “고독에 대한 380쪽짜리 에세이를 읽으려면 독방에 감금되어야 할 것 같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책에 도전할 준비가 된 독자들은 의외로 많았다. 책은 출간 즉시 큰 성공을 거두어, 매년 많은 판본과 우수한 번역본들이 나오면서 1830년대까지 증쇄를 거듭했다.
요한 치머만의 《고독에 관하여》는 이후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책 자체로 문화적인 주제가 될 정도였다. 19세기에 이 책은 사람들에게 비판 없이 줄곧 지지받았다. 진지하고 사색적으로 보이고 싶은 젊은이들은 이 책을 들고 시골길을 걷거나, 집의 조용한 공간에서 이 책을 읽고자 했다. 또한 다른 인기 도서들처럼 다양한 분야에 인용되고 거론됐는데, 1845년 3월에 한 경마장에서는 ‘치머만의 고독’이라는 세 살 된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의 서장에서는 ‘고독에 관한 세기의 고전’이 다룬 18세기와 이전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치머만은 책 전반에 걸쳐 ‘혼자의 장점들’과 ‘집단의 편리성과 축복’ 사이 균형을 잡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혼자나 집단생활 각각 따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한쪽이 다른 쪽 때문에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과연 적정한 상태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제부터 살피려고 한다. 지난 세기 동안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대했는지 파악해볼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겪는 ‘외로움이라는 병’과 대인관계에 대한 불안은 사실 2,000년 넘게 시와 산문에서 나타난 딜레마의 변주이기 때문이다.
‘혼자 vs 집단’ 논쟁
치머만보다 앞선 연구자들은 주로 혼자와 집단, 어느 한쪽의 입장만을 택했다. 페트라르카Petrarca, 1304~1374, 이탈리아 시인이자 인문주의자로, 교회의 부패와 흑사병이라는 혼돈의 사회에서 수도원에 은둔하며 옛 로마시대 문헌을 읽는 일을 낙으로 여겼다 ― 옮긴이는 혼자를 선택한 쪽이었다. 부패하고 혼란스러운 도시 활동에서 달아난 후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문제를 딱 잘라 정리하면, 모든 바쁜 사람은 불행하다.” 16세기 후반 몽테뉴Montaigne, 1533~1592, 프랑스 철학자로 법관을 지낸 뒤 《수상록》을 지었다 ― 옮긴이 역시 공적인 임무의 압박을 벗어난 은둔을 옹호했다. 그는 혼자 사는 즐거움을 위한 처방전을 제시한다.
이제 우리는 동반자 없이 혼자 살기로 작정하였으니, 우리의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한테 묶어놓은 속박에서 느슨히 풀어놓으세요. 진정으로 혼자 살 수 있는 힘을 얻도록 합시다. 아주 만족스럽게!
몽테뉴에게 은둔이란 공적인 생활에서 잠시 물러나는 게 아니라 영원히 떠나는 것을 뜻했다. 이와 반대로 집단에서의 삶을 옹호하는 입장은 17세기 후반, 상인 계층의 부와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조명받기 시작했다. 영국 문인 존 이블린John Evelyn은 〈활동적인 일과 삶이 고독보다 나은 이유〉라는 글에서 세상에서 숨어버리는 극단적인 은둔에 반대했다. “자기 자신이나 일의 가치를 아는 이들은 야생 속에 은둔하거나 공적 임무를 저버리지 않고도 유용한 재미거리를 찾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적 교류의 장점을 강조한다. “장담컨대 가장 현명한 이들은 서가가 잔뜩 있는 골방과 벽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활발한 대화에서 나온다.” 혼자 있는 시간은 공적인 삶의 보조제일 뿐 대체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과 정치로 꽉 짜인 사회에서 몸을 피하는 건 당시에도 상당히 매혹적으로 여겨졌다. 이블린은 더욱 세차게 글을 마무리한다. “모든 은둔의 결과는, 우리를 무지하게 만들고 복수와 질투를 퍼뜨리고 마녀를 양산하며 세상을 황폐화하여 곧 소멸시킬 것이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동시대인 중 드물게 치머만은 18세기 가정과 사회에서 개인이 혼자 있고 싶어하는 다양한 상황을 탐구했다. 폭넓은 독서를 한 데다 몸과 마음의 병을 다루는 의사라는 직업 덕분인지 그는 인간의 은둔 욕구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가 정의한 가장 건강한 고독은 ‘자기 회복과 자유롭고자 하는 경향’이었다.
물론 그전부터 사람들은 사색하거나 창의적인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은둔을 택하곤 했다. 작가 로버트 버튼Robert Burton은 1621년 《우울증의 해부》에서 이렇게 인정한다. “유익한 명상, 사색, 신부들이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고립의 존재를 부인하지 못할 것이며 (…) [그것을] 페트라르카 등이 저서에서 크게 다루었다.” 18세기에는 이런 혼자 있기의 매력이 점점 뚜렷하게 드러났다. 도심의 소란하고 치열한 삶에 지친 사람들은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평온과 고요를 찾아다녔다. 글을 쓰거나 새 사업을 구상하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치머만 역시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정신은, 집단의 재미 없는 산만함에서 물러나 고독 속에서 자기 구상을 소화하고 성숙시킬 장소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18세기 말로 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주는 ‘자기 회복’이 한층 의미를 띠었고, 치머만이 논문을 준비하던 시기에 출판된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가로서, 말년에 외딴 곳들을 산책하면서 했던 명상 기록을 남겼다 ― 옮긴이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특히 그 양상이 뚜렷했다. 혼자의 내면 분석으로 ‘나’를 발견하는 방식은 자서전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열었다.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 프로젝트를 이렇게 설명했다. “고통스럽고 진실된 자기 탐구를 재개했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의 이야기를 발표할 준비에 남은 인생을 쏟고 있다.”
다만 치머만은 루소가 자신을 알기 위해 집단을 거부한 사실에 대해서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철학자 루소를 은둔으로 몰아넣은 혹독한 비평과 정치 탄압, 가난 등의 개인적인 고통에 대해서는 동정했지만, 집단을 벗어나야만 나의 참모습이 발견된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는 루소가 말년에 ‘은둔 프로젝트’에 몰두했기에 더욱 쇠약해졌다고 확신했다. “상처 입은 영혼은 경쟁이 주는 충격, 그릇된 친구관계, 악의적인 적대감의 공격을 피해 혼자 쉴 수 있는 피난처를 찾는다.”
루소처럼 자기 잘못이 아닌 이유로 은둔하게 된 이들 외에도, 18세기의 윤리 기준이나 처신에 어긋난 행위로 은둔해야 하는 사람도 많았다. 정상적으로 가정을 이루거나 상업적·정치적 조직에 참여하려면 어느 정도의 자기확신이 필요한데, 불운한 실패나 잘못 때문에 자신감을 잃게 되면 누구라도 숨고 싶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치심이나 후회, 좌절된 희망에 대한 유감, 질병의 피로감으로 영혼이 너무도 상처 입고 무력해지면, 동년배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고독이라는 은밀함 속에 웅크리게 된다. 이런 경우 은둔하려는 성향은 자기 회복을 향한 적극적 충돈이 아니라, 사회가 주는 충격과 마찰에 대한 두렵고 조심스러운 혐오다.
시간을 최고로 활용하기 위해 일시적인 은둔을 선택한 엘리트들과 달리, 이들은 자신의 결함 때문에 집단에서 밀려나간 망명자들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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