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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조가 들어간
저출산 대책,
왜 효과가 없을까?
2006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이후 정부는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제시했다. 그동안 투여된 정부 예산만 200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나 많이 썼다고? 도대체 어디에?’ 하고 깜짝 놀랄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그렇게 많은 정책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피부에 와닿는 효과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태어나서 자라 청소년이 될 때까지 들어간 돈을 쭉 모아놓은 게 200조 원인데, 여기에는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주거, 고용 등의 예산도 모두 포함돼 있다. 이를 뭉뚱그려 ‘인구정책 예산’이라 했지만 정작 돌봄시설이나 보육료 등 아이를 키우는 데 직접 투입되는 예산은 별로 늘지 않아 피부로 체감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수십 년간 정부가 해온 인구정책이 가족계획 말고는 별달리 없어서 과거로부터 물려받고 계승할 만한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보육과 육아 환경이 과거에 비해 좋아진 것은 맞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보육과 육아는 어렵게만 느껴진다. 경제적인 부담도 크다.
그렇다 보니 정부가 매년 초저출산 관련 정책을 내놓아도 그 효과를 기대하는 국민은 별로 없는 듯하다. 2020년 12월, 저출산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2022년부터 임신 시 100만 원, 출산 시 출산축하금을 국가가 200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등의 새로운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는데, 대책이 나오자마자 언론의 따가운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생긴다. 아무리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해도 200조 원이나 예산을 들였는데, 왜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걸까? 이에 대해 많은 이유가 거론되곤 한다. 보육이나 육아 이외에도 청년 일자리가 없어서다, 사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다, 출산과 양육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전가해서 그렇다 등 다양한 원인이 등장했다.
인구학에서는 합계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을 근접 요인proxy factor과 원거리 요인distal factor으로 나누어 보는 방법론이 있다. 근접 요인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계속 낮아지는 첫 번째 이유는 만혼晩婚과 비혼이다. 통계자료를 보면 1995년에 첫 아이를 낳은 아버지의 평균연령은 29.15세였는데, 2016년에는 남성의 초혼연령이 32.8세가 되었다. 2019년에는 초혼연령이 더 높아져서 여성 30.6세, 남성 33.4세가 되었다. 서울 거주자는 더 높아서 2019년 서울 여성은 31.6세, 서울 남성은 33.7세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결혼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기 어려운 사회이므로 초혼연령이 높아지면 아무래도 아이도 늦게 낳게 된다.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연령대는 정해져 있으므로, 만혼 추세가 계속되면 자녀를 출산할 수 있는 기간이 줄어들게 되어 출산율이 높아질 확률은 크지 않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특징이 결합된다. 우리나라는 가임기 여성의 수가 연령이 낮을수록 적은 인구구조다. 가임기 여성들의 연령별 인구가 크게 다르면 초산연령이 합계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평생 한 명의 아이를 낳더라도 20대에 낳느냐 40대에 낳느냐에 따라 합계출산율이 크게 달라진다. 만약 15~49세 여성의 연령분포가 고르다면 언제 낳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연령구조가 역삼각형인 사회에서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낳으면 합계출산율이 확 올라가고, 반대로 늦게 낳기 시작하면 합계출산율은 뚝 떨어진다.
이런 조건이라면, 늦어진 혼인과 출산 시기를 다시 앞당기려는 정책이 필요할까? 아니면 이미 늦어진 혼인과 출산에 맞추어진 정책이 필요할까? 사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혼인과 출산 시기를 앞당기려는 정책이 태어난 아이들의 보육과 양육을 지원하는 정책보다 더 중요하다고 동의하는 편이었다. 2010년 평균 초혼연령은 남녀 각각 31.8세와 28.7세였다. 결혼을 원하는데 취업이나 주택 문제로 결혼이 늦춰질 때였으니 그 문제를 좀 도와주면 청년들도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혼인연령이 더 늦어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저출산 정책은 보육과 양육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늦어진 혼인과 출산 시기를 앞당기려는 정책을 더욱더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제는 이에 절반의 동의만 보낸다. 10년이 지나면서 혼인연령은 더 높아졌고2020년 남성 33.2세, 여성 30.8세 여성의 첫째 자녀 출산연령도 32세를 훌쩍 넘어섰다. 이 정도 되면 혼인 및 출산 시기를 앞당기려는 정책이 의도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아직 취업전선에 있는 청년들에게는 의미 있는 정책이겠지만, 취업을 준비하느라 이미 오랜 시간을 써온 청년들이 더 많기에 그만큼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미 이렇게 늦어진 혼인연령과 출산연령은, 지금 청년들이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준비가 되려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모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못 낳게 된 청년들도 많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준비는 취업이나 주거문제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삶 전체를 포괄하는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이다. 10년 전 혼인과 출산을 미루던 X세대와 지금 청년들인 밀레니얼 세대는 삶의 방식 자체가 다르다. 이 때문에 혼인과 출산 시기를 무조건 앞당기려는 정책은 오늘날 현실감이 무척이나 떨어지는 정책이 되고 말았다.
현실적인 방안은 현재 청년들의 전반적인 삶의 구조를 이해하고 이미 (과거에 비해) 늦어진 혼인과 출산연령을 받아들이며, 생물학적 연령이 높더라도 건강하게 자녀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관련된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세대도 바뀌고 인구의 특성도 바뀌는 만큼 인구정책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본인 삶에서 결혼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의 증가다. 한 해의 출생아 수는 1~2년 전 혼인건수와 관계가 있는데, 2015년만 해도 30만 건이 넘던 우리나라의 혼인건수는 2017년과 2018년 전년 대비 약 6% 줄었고, 2019년에는 또다시 7.2%가 줄어 약 24만 건이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조차 어려워진 2020년에는 혼인건수가 약 21만 4000건에 그쳤다. 전년 대비 10.7%나 줄어든 수치다. 코로나의 여파가 해를 넘어 계속되면서 혼인건수는 더 줄고 있다. 2020년 1~2월의 혼인건수는 약 3만 9000건이었는데, 2021년 같은 기간의 혼인건수는 3만 1000여 건이다. 한 해 만에 거의 20%가 줄어든 것이다. 이대로라면 2021년 혼인건수는 20만 건도 채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022년까지 코로나가 종식된다면, 미뤘던 결혼식이 치러지면서 혼인건수에 약간의 반등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인구의 차별적 영향력만큼이나 코로나19의 영향도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 아니라서, 혼인건수는 개개인의 전반적인 경제상황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만 사라지면 혼인건수가 고스란히 반등할 거라 예상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 혼인적령기라는 말도 많이 사라졌다면 결국 언젠가는 결혼을 할 테니 지금 줄어드는 게 딱히 이야기할 만한 거리는 아니지 않을까?
2010년 인구센서스 당시 서울시 35~39세 인구 중 남성의 32%, 여성의 20%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내가 속한 연령대가 바로 여기다. 이들이 40~44세가 된 2015년 인구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남성의 26%, 여성의 18%가 여전히 비혼이었다. 남녀 각각 6%p, 2%p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정해진 미래》에서 나는 이 수치를 남성 20%, 여성 15%로 예측했는데, 내 예측보다 더 많은 이들이 비혼을 유지하고 있었다.
인구학에서 중요시하는 개념 가운데 ‘생애미혼율’이 있다. 만49세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여러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는가? 아마 없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 남성의 5.8%, 여성의 2.7%가 만 49세까지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에는 이 비율이 남녀 각각 11%와 5%가 되었다. 남녀 모두 2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2020년 생애미혼율은 얼마나 될까? 2020년 인구센서스 통계가 집계되는 2021년 가을에는 답을 알 수 있다. 그래도 미리 유추해보면 남성은 대략 15%, 여성은 10% 정도 되지 않을까? 참고로 일본의 2015년 생애미혼율은 남성 23.4%, 여성 14.1%나 되었다. 알다시피 일본도 우리처럼 ‘때가 되면 결혼하는 문화’가 통용되던 곳인데 말이다.
〈도표 1-6〉은 서울대학교 인구학연구실이 30~49세 비혼인구를 추정한 것이다. 2010년과 2015년은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결과이고 2020~40년은 추계한 내용이다. 최근 들어 혼인연령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가 뚜렷하므로 이를 반영했다. 남성의 경우 2010년 30대 초반 비혼인구는 약 94만 명이었다. 2025년, 이 인구는 약 121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연령대에 들어오는 인구는 2010년보다 적지만 워낙 비혼자의 비중이 높아지다 보니 생겨난 결과다. 그 이후 비혼 경향은 더 강해질 수 있지만, 해당 인구 크기가 작아지기 때문에 비혼인구 자체는 줄어들 전망이다.
한편 40대 이상의 비혼인구는 2010년에서 2015년까지 크게 증가했고, 그 추세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2010년 약 15만 명에 불과했던 45~49세 비혼 남성은 2020년 40만 명을 돌파하고 2030년에는 50만 명에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여성도 다르지 않다. 비혼인구의 구성비가 계속 증가한 일본도 그랬지만 같은 연령대에서 여성의 비혼 비율은 남성에 비해 다소 낮다. 같은 연령이라면 남성보다는 여성이 결혼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남녀 차이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싱글의 삶을
선택할 여성의 비율은 계속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2010년 40~44세 비혼인구를 보면 남성은 30만 명, 여성은 13만 명이었다. 약 2.3배 차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2030년에는 1.5배로 줄고, 2040년에는 1.3배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들의 자발적 비혼 선택 경향이 남성들보다 더 강해질 거라는 뜻이다. 이처럼 결혼연령이 올라가고, 아예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면 출산율도 당연히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데 여성들의 비혼 선택 경향이 남성들보다 왜 더 강해지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해 여성학에서 심도 있게 다루는데, 이와 관련성이 높은 인구학 연구들을 살펴보자. 여성들의 비혼 선택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인 여성의 삶의 질 및 처우 개선, 성평등 이슈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처우 개선은 사회적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계인구학회IUSSP 회장을 역임한 호주국립대 사회학과 피터 맥도널드Peter McDonald 교수는 유럽 국가들의 출산율 추이를 분석한 결과 여성과 남성의 성평등에 두 가지 맥락이 있음을 밝혀냈다.* 하나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에서의 지위’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출산율은 내려가는 추세를 보이지만, 가정에서의 지위가 높으면 출산율 하락이 정지하고 오히려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결국 여성의 가정 내 지위가 중요한데, 사회적 지위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올릴 수 있지만 가정 내 지위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한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지표가 있을 테지만 여성의 교육수준과 사회 진출을 예로 든다면,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고 사회활동을 많이 할수록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비교적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수준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면서 크게 높아졌다. 특히 여성의 교육수준 향상이 괄목할 만하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 사회에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하나는 출산을 기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학력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진 반면, 워킹맘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기에 여성의 출산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다. 앞서 40~44세 남녀 비혼인구의 차이는 여성의 비혼 선택 증가로 2010년 약 2.3배에서 2040년에는 1.3배로 줄어들 것이라 언급했는데,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맥도널드 교수의 연구 제안으로 보면, 떨어지는 출산율을 막아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정 내 성평등 수준이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해진 만큼 가정에서 남성의 가사노동과 자녀돌봄도 함께 활발해져야 하고 출산 이후 여성의 경력단절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세대는 가사분담이 일반화되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지속적인 초저출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현실에서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러한 현실은 여성, 특히 경제적 능력이 충분한 여성에게 비혼을 선택하게 하는 원인들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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