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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현재 안에서 숨 쉬기”
― 사색과 시
우리 삶에 음악이 없다면! … 누군가 나나 그럭저럭 음악적이라 할 사람에게서 바흐의 성가곡을, 〈마술피리〉나 〈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들을 빼앗고 금지하고 기억으로부터 떼어놓는다면, 우리 같은 사람에게 그것은 몸의 장기 하나를 잃는 것과도 같은 것이며 감각 하나를 반쯤 또는 전부 상실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고음악
내가 사는 외딴 시골집 창문 밖으로 스산한 비가 그칠 기미 없이 집요하게 내렸다. 또다시 장화를 신고 저 먼 지저분한 길을 따라 시내까지 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혼자였고 오랜 작업으로 눈이 아팠다. 서재 벽에는 온통 묵직한 질문과 의무를 짊어진 금빛 장정 책들이 늘어서서 견디기 어려울 만큼 나만 쳐다보고 있었고, 아이들은 이미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작은 벽난로 불은 다 타서 사그라졌다. 그래, 나는 나가기로 마음먹고 연주회 입장권을 찾아낸 다음, 장화를 신고 개를 매어놓고 방수 코트를 걸친 채 축축하고 지저분한 길로 나섰다.
공기는 상쾌했고 쌉싸름한 향이 났으며, 구붓하고 큰 참나무들 사이로 난 거무스레한 들길은 이웃의 땅을 제멋대로 둘러가며 이어져 있었다. 한 건물 관리인의 집에서 불빛이 잔잔하게 새어나왔다. 개 한 마리가 컹 소리를 내더니 점점 더 사납고 우렁차게 짖어댔고 그러다 스스로 감당이 안 돼 제풀에 뚝 그치고 말았다. 검은 덤불 너머 시골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울려왔다. 이렇게 저녁에 혼자 들판을 걸으며 외딴집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그리움 가득 차오르는 일도 없으니, 이 순간에는 온갖 선하고 사랑스러운 것의 정취가 깨어난다. 고향과 등불의 정취, 조용한 공간 속 장엄한 저녁의 정취, 여자의 손길과 오래된 가정 문화의 정취가.
어느새 첫 가로등, 조용히 창백한 도시의 전초가 보인다. 다시 가로등. 가까이에서 깜빡이는 도시 외곽의 합각머리. 조금 더 가서 담 모퉁이를 돌면 불쑥 눈이 시리도록 환한 아크등 아래 트램 정류장이 나타난다. 긴 외투 차림으로 기다리는 사람들, 물방울 뚝뚝 듣는 모자를 쓰고 담소 중인 차장들. 젖은 코트 위로 희미하게 빛나는 제복 단추. 트램이 쿠르릉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 차량 아래에 푸른 섬광이 번쩍인다. 널찍한 유리창이 있는 밝고 따뜻한 차다. 나는 올라탄다. 우리는 출발한다. 밝은 유리 상자 안에서 넓고 황량한 밤거리를 내다본다. 모퉁이 곳곳에서 우산을 쓰고 우리가 탄 차를 기다리는 여자가 보인다. 이제 좀 더 환하고 약동하는 도로가 나온다. 불현듯 높은 다리 저편에서 시가지 전체가 창문과 가로등의 저녁 불빛으로 빛난다. 다리 한참 아래쪽 멀리 강 골짜기에는 물이 어둑하게 반사되고 하얀 포말이 방죽에 부딪친다.
이제 내려서 어느 골목의 아케이드를 통과해 성당을 향해 간다. 성당 앞 작은 광장의 물기 젖은 포석에는 서늘한 가로등 불빛이 가물가물 비치고 있다. 테라스 위로 밤나무들이 살랑이고, 불그스레 밝혀진 정면 입구 위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 뻗은 고딕 첨탑이 촉촉한 밤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빗속에 서서 잠시 기다리다가 시가를 던져버리고 높은 첨두아치 속으로 들어간다. 젖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북적이고 불 밝힌 유리창 뒤에 매표원이 앉아 있다. 남자에게 입장권을 보여주고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손에 모자를 들고. 들어서자마자 희미하게 밝혀진 거대한 둥근 천장에서 기대에 찬 성스러운 공기가 불어온다. 작은 조명들이 둥근 기둥들과 다발 기둥들에 소심한 빛줄기를 올려보낸다. 잿빛 돌덩어리에 부딪치면 사라지고 위쪽 높은 아치형 천장에는 따스하고 부드럽게 스며 흐르는 광선이다. 신도석 벤치 군데군데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앉아 있다. 다른 신도석과 합창석은 거의 비어 있다. 나는 발끝으로 조심조심 ― 그렇게 해도 발소리가 나직하게 웅웅 울린다 ― 커다랗고 엄숙한 공간을 지나간다. 어두운 합창석에는 등받이에 조각이 새겨진 낡고 육중한 나무 벤치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접혀 있는 좌석 하나를 내린다. 의자 소리가 석조 천장에 둔탁하게 울린다.
흡족한 기분으로 널찍하고 깊숙한 의자에 앉아 프로그램 책자를 꺼낸다. 하지만 읽기에는 너무 어둡다. 곰곰 새겨보지만 연주 목록을 정확히 기억해낼 도리가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된 어느 프랑스 대가의 오르간 곡이라고 공지되어 있었다. 그리고 옛 이탈리아 작곡가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누구 작품이면 어떠랴. 아마도 베라치니나 나르디니, 아니면 타르티니일 테지. 그다음은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일 테고.
어둑한 형체 두엇이 합창석으로 살금살금 들어와 앉는다. 각자 다른 사람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낡은 의자에 푹 파묻힌다. 누군가 책을 떨어뜨린다. 내 뒤에서 여자아이 두 명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자, 조용히 해주세요, 조용히. 멀리 조명이 밝혀진 칸막이 위, 두 개의 둥근 램프 사이, 서늘하게 빛나는 높은 파이프오르간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는 눈짓하더니 의자에 앉는다. 기대에 찬 숨결이 이 소규모 회중에 감돈다. 나는 오르간 쪽을 보고 싶지 않다. 몸을 뒤로 젖혀 높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침묵하는 성당의 공기를 호흡한다.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이 어찌 일요일마다 대낮의 밝은 빛 속 이 거룩한 공간에 서로 바짝 붙어 앉아 설교에 귀 기울일 수 있단 말인가. 이 높은 신전에서 설교는 아무리 근사하고 명석하다 한들 그저 메마른 울림이며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을.
이때 오르간의 강렬한 고음이 울린다. 오르간 음은 점차 커지면서 어마어마한 공간을 채우더니 음 스스로가 공간이 되어 우리를 온전히 휘감는다. 음은 자라나 편안히 쉰다. 다른 음들이 합류한다. 별안간 모든 음이 다급히 도망치며 추락하고 몸을 숙여 경배하며, 문득 치솟다가 제지되어서는 조화로운 베이스 음 속에 꿈쩍 않고 머문다. 이제 음들은 침묵한다. 휴지부는 뇌우 전의 미풍처럼 홀 안에 나부낀다. 장중한 음들이 다시 깊고 황홀한 열정으로 일어서더니 격정적으로 팽창하며, 소리 높여 헌신하는 자세로 신께 저들의 탄원을 부르짖는다. 그렇게 한 번 더. 더욱 통절히, 더욱 우람하게. 그러다 뚝 그친다. 음들이 다시 일어선다. 이 대담하고 무아경에 빠진 대가는 자신의 막강한 목소리를 신을 향해 들어올리며 애원하고 간구한다. 그의 노래는 음을 휘몰아치며 원 없이 펑펑 운다. 다시 고이 머물면서 몰입해 경외와 위엄의 성가로 신을 찬미하고, 높고 어스름한 곳에 황금빛 둥근 천장을 만들고, 둥근 기둥들과 소리의 다발 기둥들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자신의 경배로 성당을 지어 올린다. 마침내 성당이 완성되어 고요히 서 있다. 음이 다 사그라들었을 때도 성당은 여전히 고요히 서서 우리 모두를 감싸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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