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933년 5월 10일, 독일 베를린의 가장 중요한 거리인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에서 불이 타올랐다. 그곳은 대단히 상징적 울림이 있는 곳이었다. 대학의 맞은편이자, 장크트헤드비히Sankt-Hedwig 대성당, 베를린 국립가극장, 황태자궁,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의 아름다운 전쟁 추모관 노이에바헤Neue Wache 부근이다.
4만에 가까운 환호하는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무리의 학생이 획기적인 성性과학연구소 설립자인 유대인 지식인 마그누스 히르슈펠트Magnus Hirschfeld의 흉상을 가지고 절도 있게 불이 피워진 곳으로 행진했다. 그들은 ‘포이어슈프뤼헤Feuersprüche, 불의 주문’를 외며 연구소 도서관에서 나온 수천 권의 책 꼭대기에 흉상을 던졌다. 불 속에는 서점과 도서관에서 압수한 유대인 및 다른 ‘반反독일’ 작가들특히 동성애자와 공산주의자들의 책들도 던져졌다. 불 주위에는 나치스 제복을 입은 청년들이 ‘하일 히틀러’ 경례를 한 채 줄지어 서 있었다. 학생들은 새 정부의 비위를 맞추는 데 열을 올렸고, 이 책 불태우기는 세심하게 기획된 떠들썩한 선전 활동이었다.
베를린에서 히틀러의 새 국민선전계몽부RMVP 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전 세계로 널리 보도된 격정적인 연설을 했다.
퇴폐와 도덕적 타락을 거부합니다! 가족과 국가 안에서의 품위와 도덕을 지지합니다! … 미래의 독일 남자는 책을 읽은 남자에서 더 나아가 인격을 갖춘 남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교육시키고자 하는 것은 이런 목표를 위해서입니다. … 여러분은 과거의 악령을 잘 태워버렸습니다. 이것은 강력하고 대단하며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그날 밤 이 나라 곳곳에 있는 90개의 다른 장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벌어졌다. 독일 안의 많은 도서관과 기록관들이 무사하기는 했지만, 이 불들은 나치스 정권의 지식에 대한 공격이 임박했다는 분명한 경고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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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아직도 공격을 받고 있다. 체계화된 지식의 집적체는 과거 역사 속에서 공격을 받아왔던 것처럼 지금도 공격을 받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는 지식 보존을 도서관과 기록관에 맡겼다. 그러나 오늘날 이 기관들은 여러 가지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진실을 부정하고 과거를 말살하고자 하는 개인과 집단, 심지어 국가들의 목표가 되고 있다.
동시에 도서관과 기록관은 자금 지원 감소도 겪고 있다. 계속되는 이런 자원 감소는 과학기술 회사들의 성장과 연결돼 있다. 이들은 지식의 저장과 전달을 디지털 형태로 사실상 민영화해, 공적인 자금으로 운영되는 도서관과 기록관의 기능 일부를 상업적 영역으로 가져갔다. 이런 회사들은 전통적으로 사회에 지식을 제공하던 기관들과는 전혀 다른 동기에 의해 움직인다. 구글 같은 회사가 수십억 쪽의 책을 디지털화해 온라인에서 이용할 수 있게 만들고, 플리커Flickr, 〔온라인 사진 공유 커뮤니티 사이트〕 같은 기업이 온라인 무료 저장을 제공하는 판에 도서관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공공 자금이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시기에 우리는 민주적 기관, 법에 의한 통치, 개방 사회 역시 위협을 받고 있음을 발견한다. 진실 자체가 공격을 받고 있다. 이는 물론 새로운 것이 아니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이를 지적했고, 그의 말들은 오늘날 우리가 개방 사회를 지키기 위해 도서관과 기록관이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생각할 때 당혹스럽게도 진실로 들린다.
진실이 있었고, 거짓이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온 세상과 맞서면서까지 진실을 고수한다면 당신은 미친 것이 아니다.
도서관과 기록관은 민주주의, 법에 의한 통치, 개방 사회를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그들이 ‘진실을 고수’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사실alternative fact’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미국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켈리앤 콘웨이Kellyanne Conway가 2017년 1월 주장한 유명한 이야기다. 콘웨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취임식에 참석한 군중이 4년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때보다 많았다고 주장사진과 자료는 그 반대가 사실임을 보여주었다한 것이 비판당하자 이를 방어한 것이었다.
이것은 정보의 보존이 개방 사회를 지키는 데 여전히 핵심적인 도구임을 적시에 일깨워 준 일이었다. ‘또 하나의 사실’의 대두에 맞서 진실을 지키는 것은 그러한 진실들과 그 진실들을 부정하는 진술들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사회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이 생긴다.
도서관은 사회가 건강하게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나는 35년 이상 도서관에서 일했지만, 더 오랜 기간 그 이용자였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보았다. 이 책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사회가 지식을 보존하기 위해 도서관과 기록관에 의지할 수 없게 된 사실의도적인 부분도 있고 우연적인 부분도 있다에 대한 개인적인 분개로부터 출발했다. 오랜 기간 그들이 반복적으로 공격당한 일은 인류 역사의 우려스러운 경향으로서 검토가 필요하며, 사람들이 자기네가 가진 지식을 보호하기 위해 기울인 놀라운 노력들은 상찬 받아야 한다.
‘윈드러시Windrush 세대’〔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노동력 보충을 위해 윈드러시호를 타고 영국에 온 카리브해 출신의 이민자들〕의 영국 도착을 입증하는 상륙 증서가 2010년 영국 내무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기됐다는 폭로는 기록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정부는 또한 이민에 대한 ‘적대적 환경hostile environment’ 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윈드러시 이민자들 자신이 이곳에 지속적으로 거주했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추방한다는 정책이다. 그러나 그들은 1948년 영국 국적법에 의해 시민권을 보장받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직면한 영국에 선의를 갖고 왔다. 2018년 봄까지 내무부는 이들 시민 중 적어도 83명을 부당하게 추방했음을 인정했다. 그들 가운데 11명은 이후 사망해 공분을 촉발했다.
나는 정부 부처이런 상황이 폭로될 때는 총리가 된 테리사 메이가 수장으로 있던 부서다가 추진하고 적극적으로 공표한 이 어처구니없는 정책에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민권을 입증할 수 있는 핵심 증거를 파괴한 것이었다. 기록을 파기한다는 결정이 정책 시행 이전에 내려졌고 악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내무부는 적대적 처우를 고집하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명 칼럼을 써서, 이런 종류의 지식 보존이 개방적이고 건전한 사회에 필수적임을 지적했다. 우리 문명이 시작된 이래 정말로 그래왔듯이 말이다.
인류가 사회를 조직해 함께 모여 살고 서로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있는 한 지식은 만들어져 왔고 정보는 기록돼 왔다. 가장 이른 사회에서는, 우리가 아는 한 이것은 구전口傳 정보 형태를 띠고 있었다. 남아 있는 영구 기록은 오로지 형상화된 것뿐이었다. 벽이나 동굴에 그려진 그림, 돌 위에 긁어놓은 상징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표시들 뒤에 어떤 동기가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인류학자나 고고학자들만이 경험에서 우러난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청동기시대에는 사회가 더욱 조직화되고 더욱 복잡해졌다. 유목민 집단이 정착하고 고정된 공동체를 만들어 농업과 초기 공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조직의 위계를 개발해 지배 가문과 부족장, 그리고 공동체의 나머지 사람들을 이끄는 다른 존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서기전 3000년 무렵부터 생겨난 이런 사회들은 문서 기록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이 초기 기록관과 거기서 발견된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이들 사회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관한 놀라운 분량의 세부 사항들을 알 수 있다. 다른 기록들에서 사람들은 자기네의 생각, 견해, 관찰,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은 초기 도서관에 보관됐다. 이렇게 지식을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곧 특별한 기술을 발전시키는 일이 필요해졌다. 지식을 기록하는 것과 필사하는 방법 같은 것들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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