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서문
역사적 수명이 끝난
자본주의
현재 우리는 무너져가는 자본주의를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통적인 자본주의의 적들소위 ‘진보’ 진영이 쏟아내는 온갖 비판을 잘 뒷받침해준다고 볼 수만은 없다. 오히려 현 상황은 그 오랜 적대 세력이 비판의 와중에 스스로 길을 잃고 함께 동일한 역사의 쓰레기통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제 ‘인간 해방’ 문제가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되고 있다. 모든 것은 재고되어야 하며, 바로 그 점이 우리가 ‘가치비판’을 하는 목적이다. 역사학자 모이쉬 포스톤1942~2018과 독일의 저널 《크리시스Krisis》나 《엑시트!Exit!》의 주요 필자였던 로베르트 쿠르츠1943~2012 등이 특히 1980년대 이래로 그러한 작업을 꾸준히 해낸 바 있다.
나 또한 이미 2003년에 『상품의 모험: 새로운 가치비판을 위하여』를 펴낸 바 있다. 그 책에서 나는 프랑스어권 대중을 위해 가치비판론을 압축적으로 소개했다. 그 책은 마르크스의 기본 개념, 즉 가치value, 추상노동abstract labour, 화폐money, 상품the commodity등을 분석하며 시작한다. 이 분석을 바탕으로 우리는 현대의 세계 상황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다른 비판들과 함께 몇몇 주요한 논쟁에도 참여하게 된다.
2003년에 책을 내고 나서 몇 년간 나는 가치비판론을 실제 상황의 분석에 적용해보았다. 즉 오늘날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접근법으로서 이 가치비판론이 다른 시각들에 비해 얼마나 더 효과적일지 알아내고자 그 이론을 해석의 틀로 삼았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가치비판론에서 본 ‘자본주의의 해체’
이 책은 프랑스에서 벌어진 여러 논쟁과 관련해 내가 쓴 열 편의 에세이를 묶은 것이다. 대체로 2007년과 2010년 사이에 발표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글들은 사실 서로 다른 계기로 썼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최 측이 “던져준” 주제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글이 기본적으로 동일한 질문을 다룬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모두 동일한 내용으로 겹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중간부터 읽거나 따로따로 읽어도 된다. 각 장의 주제가 제각기 그 나름의 이론적 가정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 이론적 가정이란 전술한 가치비판과 상품 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책은 전반적으로 보아 가치비판 개론서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내가 이전에 낸 책 『상품의 모험』을 읽지 못했거나 (영어나 프랑스어로 된) 가치비판 학파의 다른 문헌을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나는 각각의 에세이에 그 주제와 관련된 가치비판의 다른 측면, 이를테면 위기 이론crisis theory, 상품의 구조the structure of the commodity, 물신주의fetishism 등을 요약해놓았다. 그 이론적 요약을 한데 묶어 별도의 장章을 구성하기보다는 개별 에세이에 그대로 두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만약 이론 부분만 따로 떼어내 새로운 장을 구성했더라면 이 열 편의 에세이를 독립적으로 읽어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랬다면 독자들이 기초 개념 이해를 위해 또다시 “사막을 건너는” 부담을 지게 되었을지 모른다. 이 열편의 에세이 가운데 아홉 번째 글 「고양이와 쥐, 문화와 경제」만 빼고 모든 글은 원래 프랑스어로 쓰여 프랑스 저널에 발표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이번에 영문판 발간을 위해 모든 글을 조금씩 수정, 보완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본질적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해체decomposition와 그 해체가 야기하는 다양한 대응을 분석한다.
(중략)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책의 모든 논의를 한마디로 ‘낙관적’이라거나 ‘비관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한편에서 가치비판론은 늘 자본주의의 추락 경향을 예측해왔다. 심지어 파국적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Mene Mene, Tekel, Upharsin”다니엘서 5장 25절, ‘세고, 달고, 나눠 주다’라는 뜻이다. ― 옮긴이과 같은 ‘파국의 예고’라 할 수 있다. 성서에 나오는 이 신비한 말은 어떤 초자연적인 손이 바빌론 벨사살왕의 궁전 촛대 앞 석회벽에 쓴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시점은 벨사살왕이 최전성기라 착각하고 흥청망청 잔치까지 벌이던 때였다. (영리한 다니엘의 해석을 통해) 이 이야기를 자세히 들은 왕은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자신이 저울에 달아졌으며 이래저래 계산을 해본 결과 (나라를 이끌기에는) 자질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이 난 것이다. 결국 왕국은 성문 밖에서 기다리던 적군에게 통째로 넘어가고 말았다.바빌론 왕국의 멸망
우리의 가치비판론처럼 근본적인radical 비판은 그 어떤 결론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목적이 “우리의 기존 생활방식”을 구해주자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의 위기 이론에 대해 사람들은 늘 “전면적 부정”이 아니냐고 반응했다. 부르주아 사상가는 물론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도 그랬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겪은 일들은 이 위기 이론의 타당성을 재확인해주었다.
2002년 나는 런던의 상황주의자들the Situationists 모임에서 강연하며 자본주의가 맞이한 심각한 위기를 상기시켰다. 그런데 나중에 영국의 한 마르크시스트 간행물에 실린 어느 비평은 그때 내가 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면서도, 불행히도 “자본주의의 내재적 붕괴”와 관련된 “초현실적 주장들”로 인해 상당한 흠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만일 그 논평을 6년 뒤2008년 위기 이후에 썼다면 아마도 내 예측이 그렇게 초현실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미한 위로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위기crisis는 결코 해방emancipation과 동의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해방의 요구가 이 책의 심장부를 관통하고 있긴 하지만, 결코 낙관적이지는 않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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