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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라는 이름의
개
구수정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고 예언한 사람의 이름은 북두北斗다.
북두칠성의 북두를 쓰는 그는 근방에서 가장 용한 입시 전문 점쟁이였다. 종이에 사주를 풀어 확률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해진 진실을 선언하는 반신半神이었다.
방석에 엉덩이를 대기도 전에 합격할 대학을 말해 준다던 북두였으나 수정이 자리에 앉아 왠지 부정하게만 들리는 부스럭 소리를 내 가며 가방에서 지난 달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꺼낼 때까지 그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수정은 회색 티셔츠와 학교 체육복 바지를 입은 채로 가만히 앉아서 탁자 위에 놓인 성적표가 선풍기의 회전에 따라 파르르 떨릴 때마다 검지로 가만히 그 끄트머리를 누르며 기다렸다.
묘한 승리감이 수정의 가슴속으로 젖어 들었다. 이것이 만약 누가 먼저 입을 여느냐의 싸움이라면 수정은 상대가 반신이 아니라 온전한 신이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수정은 어른들과 이런 싸움을 해 본 경험이 많았다. 그런데 북두는 어른인가. 갑자기 그 생각에 미친 수정은 시선을 들어 천천히 북두의 앳된 얼굴을 훑었다. 만약 북두가 수정만 한 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북두가 아이라도 북두의 몸속 신이 어른일 수 있다. 반대로 북두가 어른이라도 북두 몸속 신이 아이일 수 있다.
― 얘는 대학 못 가.
불쑥 북두의 입이 열렸다. 이겼다…라는 생각에 이어 터지려는 비명을 수정은 속으로 잘 삼켰다. 싸우느라 입술을 힘주어 딱 다물고 있던 참이라 날숨도 제대로 내뱉을 수 없었으니 참는 게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 보살님, 저 친구가 공부를 아주 잘한대요. 자세히 좀 보세요.
문턱 너머에서 바닥을 훔치던 은주 아줌마가 익숙한 듯 웃으며 말을 건네왔다. 수정은 나름대로 감사를 표할 마음으로 소심하게 고개를 돌려 은주를 봤다. 수정이 어릴 적 살던 빌라의 맞은편 건물 1층에서 ‘은주 슈퍼’를 하던 은주 아줌마는 수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슈퍼를 닫고 이곳에서 일을 봐주며 월급을 받고 있었다. 그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미소 지으며 장판만 설설 훔치는 것을 보니 신의 이런 꼬장이 아주 드물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 그거랑 달라.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니까?
북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 그러믄요, 우리 학생한테 운이 안 트이나?
― 안 트이는 정도가 아니야.
― 그럼 보살님이 잘 좀 봐줘 보세요. 학생이 성실해 보이는데.
그 말에 북두는 처음으로 수정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그 눈을 수정도 똑바로 봤다. 새카맣고 작은 눈동자가 깊고 멀었다. 우물에 빠진 채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이런 느낌일까. 이렇게 막막하고 이렇게 두렵고 이렇게… 행복할까?
― 야, 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
북두가 말했다.
누군가 수정의 목덜미를 잡아채 우물에서 끌어올렸다. 정신을 차리니 이상한 적요가 신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순간 수정은 뭔가 대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정은 일단 조금 웃어 보려고 했지만 눈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여 보려 했지만 머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살려 달라고 빌어 볼까? 그러나 몸이 꿈쩍도 하지 않자 수정은 지금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오로지 입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정의 입이 열렸다. 한참 만에 한마디를 내뱉었다.
― 싫다면요?
죽음은 소나기처럼 움직인다고 북두는 설명했다.
지평선에서부터 먹구름과 비가 솨아아 달려오는 모양으로 죽음도 다가온다고. 그러므로 만약 구름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더 빨리 달린다면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듯이, 죽음과 반대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면 죽음을 조금, 어쩌면 아주 오래동안 늦출 수 있다는 말이 되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죽음의 이동 속도가 구름의 이동 속도보다 훨씬 느리다는 것이었다. 원망스러운 점은 비구름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소멸하는 데 반해 죽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북두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 고개를 피했다. 아마도, 죽음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히려 점점 더 빨라지고 강해진다는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수정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다리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하고 수정은 또 생각했다.
수정이 생각을 하는 동안 북두는 수정을 생각했다. 수정을 바라보며 수정을 생각했다.
북두는 수정에게 남동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간다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북망산을 등지고 걷는 길, 차갑고 딱딱한 달 대신 따뜻하고 무른 해를 향해 가는 길. 전 생애에 걸친 길이 될 것이다. 북두는 수정이 모르게 잠시 마음의 눈을 감았다. 그리고 수정을 위해 발원發源했다.
― 버스 같은 거 타도 되는 거예요?
가방을 챙겨 둘러메며 수정이 물었다.
― 되겠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정성이야 정성.
정성이란 말을 뱉어 놓고 북두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들어차는 것은 수정은 보았다. 삶을 이어 나간다는 뿌듯함으로 조금 벅차오르기까지 한 수정에게 그것은 불편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북두의 눈은 수정과 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눈물을 찔금대는 자기 얼굴을 본의 아니게 거울로 마주했을 때 느끼곤 하는 충격과 역겨움을 닮은 감정이 수정의 마음에 생겨나려 했다.
내내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수정은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하여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허리를 숙였다. 북두는 수정이 그렇게 하기만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무릎을 짚고 일어나 신단을 향해 뒤돌아 절했다. 하지만 수정은 절을 하려던 게 아니었으므로 금세 무릎을 털고 일어나 벽을 따라 세워진 신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출 뿐이었다.
이른 새벽의 어슴푸레하고 찬 공기 속으로 수정은 걸어 내려간다. 철 계단에 운동화가 닿을 때마다 탕, 탕, 하고 총을 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맞아도 아무도 죽지 않는 무른 총알을 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죽지 않기 위하여 수정은 최선을 다한다. 건물 외부에 붙은 계단은 건물 내부에 난 계단처럼 회전하지도 않고 널찍하지도 않다. 계단은 가파르게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수정이 마침내 안전하게 지상에 내려왔을 때였다. 건물 1층의 떡집 앞을 지나는 수정의 배낭을 누군가 뒤에서 잡아챘다.
돌아보니 은주다.
은주 아줌마와는 어린 시절에도 딱히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자식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슈퍼 간판을 내건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간판 아래서 은주는 수정이 평생 먹고 써도 죽을 때까지 소진하지 못할 물건들과 함께 바위처럼 앉아 있었다. 그 광경이 어린 수정의 마음에 불러일으킨 감정은 부러움이나 질투가 아니었다. 불경스럽다,라고 수정은 생각했을 것이다. 여섯 살 무렵의 수정이 그런 단어를 알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단어를 모른 채로도 분명 그렇게 느꼈던 것이라고 수정은 생각한다.
은주에게 느끼던 그 감정이 지금도 수정의 마음속에 먼지처럼 잔잔하게 남아 있다. 은주를 내려다보며 수정은 기분이 조금씩 나빠지는 것을 느낀다. 은주도 그것을 느낄까.
은주는 말없이 수정의 손목을 붙들고 막 김이 나기 시작한 떡집에 들어간다. 달고 따스한 김이 축복처럼 수정을 감싼다. 수정과 은주의 몸을 감싼다. 커다란 백설기 한 판을 꺼내 놓고 막 썰어 내려던 떡집 주인이 눈인사를 하며 얼른 선풍기를 돌려 주었다.
침대만큼 커다래 보이는 백설기 한쪽 모서리를 은주가 검지로 꾹 누른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눈으로 수정과 주인이 은주를 쳐다본다. 백 조각으로 잘라 랩으로 따로따로 싸 달라고 은주가 주문하고 나서야 주인의 얼굴이 풀어진다.
은주는 콩찰떡만큼 작게 잘린 백설기 조각들을 수정에게 묻지도 않고 수정의 가방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떡이 쌓일 때마다 수정의 허리와 다리에 묵직한 힘이 들어간다.
― 백 살까지 살라고 먹는 백설기가 백 개니까, 만수무강하라는 거야.
은주는 웃으며 가방 지퍼를 채워 주고는 값을 치르고 신당으로 올라간다. 탕탕 총소리를 내며 끝도 없이 계단을 올라간다. 그 뒷모습을 이루는 회색의 단발 머리칼, 마찬가지로 회색이라 수정의 교복을 연상시키는 치마가 움직거리는 모양을 한참 올려다보다 수정은 가방을 돌려 지퍼를 연다. 떡이 가득 들었다. 명이 짧은 누군가라면 평생 먹어도 다 못 먹고 죽을 떡이 가방에 가득하다.
… 불경스럽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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