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병역제도가 사회적으로 거론될 때마다 여성징병제 논란은 따라온다. 징병제를 유지하느냐, 모병제로 전환하느냐와 같은 논쟁이 정치적으로 설왕설래하면 “여성도 군대 보내자”라는 이야기가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군대 이야기는 ‘젠더 갈등’으로 번역된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은 노동권의 차원에서 ‘사람’들의 평등을 문제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 결과는 남성들의 군 복무 보상 문제로 논쟁의 불이 붙는가 싶더니 “여자도 군대 가라”는 격노를 키웠다.
여성혐오 발화가 한창이던 2015년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2005년부터 시작된 ‘개똥녀’, ‘된장녀’, ‘김치녀’와 같은 호명에는 “군대를 가지 않는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딱지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혐오 감정이 순환하고 유통되면서 그 가치는 증폭된다. “필요한 때는 평등을 외치면서 병역의무는 이행하지 않는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언설은 급기야 여성도 징집하라는 청와대 청원으로 이어졌다.
여성이 군대 가는 일은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일까? “여자도 군대 가라”라는 발화는 마치 지뢰처럼 숨어 있다가 격발한다. 그 어디쯤에는 여성징병제 이야기가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성평등과 짝패가 되어 돌림노래에 되돌이표다. 이 긴 노래는 언제 끝날까?
병역, 근대국가의 젠더 정치
혹자는 여성징병제가 시행되면 끝이 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해법만으로 충분할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여성징병제가 시행되면 이른바 젠더 갈등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평등이 저절로 실현되는 걸까? 여성징병제를 하자고 하면 실행은 가능한 것일까? 여러 물음들이 뒤따른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군대에서 누가 군인이 되는가라는 문제는 단선적인 기준으로 말할 수 없다. 그만큼 군대는 근대국가가 생성되면서 축적된 역사적·문화적 유물이자 정치적 아키텍처이다. 이념이 있고, 관습과 문화가 있으며, 복잡한 정치 역학이 얽혀 있다. 남북관계와 국제관계는 어떠한가. 안보 상황을 진단하고 군사 전략을 논하면서 어떤 병역제도가 주효한지 가늠하는 데 고려해야 할 조건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여성징병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물음과 논쟁이 요청된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란 무엇일까? 군대가 한국인들에게 보편적이면서도 도덕적인 규범이 된 것은 오랜 시간 정치적으로 축적되고 변형된 결과이다. 군대는 정치경제적 문제이자 사회구성물이다. 그 중심에는 젠더 정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물음을 던질 수 있다. 남성에게 군대란 무엇인가? 여성에게 군대란 무엇인가? 이 물음 안에는 깊은 설명 없이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사회문화들이 있다. 군대는 여성과 남성에게 다르게 경험된다는 점이다.
인생에서 한 번은 꼭 군대를 가야 하는 사람과 태어날 때부터 병역의무에서 면제된 사람에게 군대가 미치는 삶의 의미는 다르다. 남성만의 병역의무제는 남성과 여성이 생을 다르게 기획하도록 만든다. 남성들은 군대를 언제쯤 갈지, 어떤 군 유형을 선택할지 삶의 진로 안에서 기획하고 배치한다. 이 가운데 남성은 무엇인가라는 모양새가 사회적으로 주조된다. 어릴 때부터 입대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남성들에게 군사훈련과 안보, 국가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일부로서 남성 정체성을 이루는 사회적 조건이다.
반면 여성들에게 군대는 금지이자 도전이다. 군사 활동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군사 영역에 개입하는 일은 도전이다. 여군들에게 ‘최초’, ‘여풍’, ‘여장부’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그런 구조화된 상황을 내포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군대는 여성에게 배제와 차별의 제도이고, 이를 강화하는 전거이다.
그렇다고 해서 군대가 여성의 삶과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 남성과 다른 방식으로 군대와 관계를 맺는다. 국제정치학자 신시어 인로Cynthia Enloe는 군대와 전쟁, 국제정치에서 여성은 어디에 있는가를 물으며 페미니스트 호기심으로 탐색한다. 군인을 양육하고 지원하는 모성으로서, 성적 위안과 휴식을 주는 ‘위안부’로서, 군인들에게 의료와 돌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간호 군인으로서, 정서적·물질적 힘이 되는 ‘곰신’으로서, 여성은 군대 시스템이 작동하는 어딘가에 있다. 군대는 남성과 여성의 삶을 다르게 구성할 만큼 젠더에 기대어 작동하고, 또 젠더를 강화한다.
“여성들도 군대 가라”는 말은 남성만의 징병제가 젠더 질서에 따라 조직되고 운영되었던 역사를 담고 있다. 정치학자 문승숙은 한국의 근대화가 병역제도의 확립과 깊이 서로 작용했음을 분석했다. 그중 병역을 고용과 연결시켜 남성들에게 경제적 혜택을 우선적으로 준 것은 주효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병역 이행은 남성들에게 취업을 위한 기술 훈련과 기회를 제공했고, 남성들은 병역과 경제활동을 통해 국가에 통합되었다. 그래서 국가를 지키는 자는 곧 가정을 지키는 생계부양자라는 정치경제구조가 자리 잡았다. 근대 남성성은 이 가운데 구성되었다.
신자유주의 시대, 변화의 징후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남성들은 병역의무가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경쟁 사회에서 성장한 그들에게 군복무는 시간을 투자한 만큼 회수되지 않는 손실로 여겨진다. 군사적 남자다움은 현대 생활과 매끄럽게 어울리지 않는 과잉이다. 그런데 성장기부터 경쟁 상대였던 여성은 병역의무 면제자다. 국가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정책을 펼치지만, 남성에게는 오히려 희생을 요구하는 것으로 비쳐진다. 이러한 이해 속에서 남성들 사이에 유통되는 공정성은 이제 여성에게로 향한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근대사회의 안보통치와 신자유주의 자기경영 주체 사회가 어긋나면서 새는 파열음이다. 그 말에는 억울함, 보복, 성 대결, 성평등 등 여러 감정들과 주장들이 얽혀 있지만, 각각의 것들이 태동한 맥락은 사라진 채 그 해법은 여성징병제 제도화로 모인다. 그래서 여성징병제는 성평등을 위해서라도 실현되어야 할 자명한 것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논란은 청년 정책의 부재를 고심 없이 쉽게 메꾸려는 정치적 성격이 짙다.
사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변화한 젠더 지형을 노출한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커리어를 쌓으면서 개성 있는 인생을 설계하려 한다.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주조된 아내와 딸이 아닌 자신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 만들어가는 삶을 추구한다. 전통적인 젠더 문법에 맞지 않는 여성들의 등장은 연애와 결혼, 직장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젠더 구도가 점차 달라지면서 군대를 전통적인 성별 분업의 공간으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은 비록 여성혐오가 촉발시킨 발화이지만, 젠더 지형이 달라진 세태를 반영한다.
여성 군인은 어떠한가? 1990년대 이후 여성들은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는 정도가 점차 증가했다. 대졸 여성들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취업문이 열렸고, 사관학교에 여성 생도 입학이 허용되었으며, 여성들의 장교 임관이 촉진되기 시작했다. 우수 인력의 활용이라는 국가 정책의 힘이다. 물론 유엔의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정책의 확산이라는 글로벌한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도록 사회 조건들을 만드는, 이른바 국가페미니즘의 강화는 여성 군인을 증가시킨 주요한 배경이다.
여기에 신자유주의 능력계발 담론은 성평등을 내세우며 여성들을 공적 영역으로 밀어낸다. 능력이 있으면 자기계발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여성들에게 낯설었던 분야에 도전할 용기를 준다. 군사 영역도 마찬가지다. 여성이라서 못할 것은 없다는 능력주의는 군사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동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도전과 성취는 남성들과 다를 바 없다는 성평등으로 표상되고, 여성들의 성공담이 된다. 하지만 능력주의가 성평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구조화된 불평등이 일어나는 맥락을 보지 못하게 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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