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둘째 주
밍글라바, 사람들은 대단해
― 김응교
코끼리 등에 바나나 코코넛
잔뜩 실어와 나누기 좋아하고
어릴 때 나와 물놀이 하던 삼촌은
쌀국수에 밀크티 한 잔 마시고
새벽 시위까지 벌였대요
저격수들이 정조준으로 쏴서
머리가 부서진 사람이 많아요
저 독재자 무리를 그대로 두면 수천 년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거나 죽일 거예요
이마에 피를 흘리며
팔이 부러진 삼촌은 울지도 않아요
총알이 관통한 다리를 오늘 잘라야 한대요
간호사 의사까지 끌려가 수술할 수 없다는데,
괜찮아,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19세 치알 신 누나가 했던 말은 유행어가 되었어요
미얀마 사람들은 대단해요.
울면서도 이제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요.
울면서도 이제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요.
제가 나선다 해도 눈물 보이지 않고
엄마 아빠는 껴안고 기도해주셨지요
아들딸 기다리며 냄비 두들기는
저 악당들은 윤회할 때 벌레로 태어날 거야,
바리케이트 심야시위까지 용맹한 미얀마 영웅들
행복해요. 저 많은 별빛 속에 저 툰툰아웅도 있어요.
누가복음 10장에 강도 만난 사람을 돕는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예수님은 짧게, “가서 그대로 하세요Go and do likewise”라고 권한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단순하다. 강도 만난 사람이 이방인인지, 불교 신자인지 따지지 않고 그를 도운 사마리아인의 방식 그대로 “가서 그대로 하세요”라고 권한다.
사마리아인이 도운 사람이 유대인인지, 교회를 다니는지, 집사인지, 장로인지, 십일조를 내는지, 예수님은 전혀 묻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 처할 때 예수님의 메시지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에서 예수님의 단순한 방식을 따르는 삶을 ‘단순한 복종’이라고 명명했다.
동남아시아에 거대한 쓰나미가 닥친다거나 지진 혹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으면,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불교국이라서 벌을 받았다는 황당한 설교를 하는 이도 있다. 이때 예수님의 메시지는 아주 단순하다. “가서 그대로 하세요.”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사악한 독재자와 군부는 미얀마 사람들을 어린이 노인 구별하지 않고 정조준하여 사살, 학살하고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목숨을 내놓고 군부와 싸우고 있다.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시위하다가 사망한 19세 소녀 치알 신이 사망 당시 입고 있던 상의에는 “모든 것이 잘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88혁명 때 3천여 명 이상 희생되어 사오십 대 어른이 망명하거나 죽은 이 나라에서 지금 20대 청년들이 목숨 내놓고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 가고 있다. 이 비극적인 상황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말씀하실까. 답은 간단하다.
“가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강도 만난 사람들을 도우세요.”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사람들은 요즘 잠을 못 이루고 있다. 미얀마 현지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염려되어, 이들은 미얀마 대사관이나 중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한다. 몇 주간 나는 이들을 만나고 함께 성명서를 미얀마어로 번역하여 낭송하기도 했다. 모금을 하여 미얀마에서 피해를 입은 한 가족에게 적지만 10만원씩 송금하는 일을 했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미얀마 현지의 시인과 대화도 해 본다. 내가 쓴 글을 미얀마 청년이 읽고 서툰 번역기로 고맙다고 답신을 보내 주기도 했다. 미얀마인들과 문자와 정보를 나누며, 이 시간이 거의 기도하는 시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일로 집회가 있는 미얀마 대사관과 대전역을 오가다가, 3월 22일 툰툰아웅이라는 열세 살 소년이 총살당했다는 소식과 사진을 보았다. 툰툰아웅의 죽음을 생각하며, 그의 입장에서 글을 써 봤다. 이 책에 단 한 번이라도 미얀마, 타 종교와 함께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을 담고 싶었다.
“뭔 여유가 있어 미얀마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느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미얀마가 1951년 한국전쟁 때 물자지원을 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당시 물자를 지원했던 나라 중 미얀마의 지원 물량은 총 2위였다. 당시 5만 달러의 쌀을 보냈는데,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10억을 보내 준 것이다. 지금도 미얀마 경제로는 외국에 1억 보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였다.
미얀마는 나누기를 좋아하는 나라다. 미얀마 불교는 기부문화를 중요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미얀마의 기부문화는 이번 생에서 공덕을 쌓으면 다음 생에서 멋지게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에서 비롯되었다.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 농촌이 많은 미얀마 사람들은 아침마다 탁발승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나그네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거리 곳곳에 물 마실 곳을 준비해 둔다고 한다. 기부 행위는 이웃을 돕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다음 생을 위한 수양인 것이다.
실제로 영국 자선지원재단이 발표한 “2016년 세계기부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의 기부지수는 100% 만점에 70%로 전 세계 140개국 가운데 1위다. 지난 2014년 이후 3년 연속 1위라고 한다. 미국이 61%로 2위, 호주, 뉴질랜드, 스리랑카 등이 뒤를 잇고 있는데, 한국은 기부지수 33%로 부끄럽게도 75위라고 한다.
미얀마는 숲이 울창한 나라다. 나무는 서로 거리를 두고 저마다 힘껏 자란다. 신기하게도 위에서 드론으로 숲을 보면 그 많은 나무들 높이가 비슷하다고 한다. 흙 속에서는 뿌리끼리 연대하고, 서로 격려하며 나무들은 비슷한 높이로 자란다. 이 지구의 만물이 이러하거늘, 죽어 가는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미얀마를 떠올리며 숲을 생각한다. 만나서 대화해 보면 미얀마 사람들은 의연하고 당당하다. 그 당당한 다중多衆, Multitude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찾으리라 기대하고 기도하며 함께한다.
저 폭력과 비극 앞에서 손 모아 기도한다. 그리고 2천 년 전 한 젊은이의 말을 떠올린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누가복음 10:37.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태복음 5:9.
그 젊은이를 평생 따르다 감옥에도 다녀온 바울의 권면도 떠올려 본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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