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90년대 생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떻게 지금의
20대가 되었는가
“올해는 정부는 물론, 모든 국민이 세계화를 본격 추진하는 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1995년을 우리 모두 ‘세계화의 원년’으로 만듭시다.”
― 김영삼 대통령, 1995년 신년사 중에서
한국 사회에 울려 퍼지는 화두를 꼽을 때 ‘20대 현상’은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20대 현상에 대해 오가는 갑론을박은 무척이나 혼란하다. 혹자는 20대 현상이 아니라 ‘20대 남자 현상’을 지목한다. 여성에 대해 적대적인 일군의 남성 집단이 지금의 20대에서 상당한 비중으로 존재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공정’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경제적 여건이 팍팍해진 20대들이 공정이란 가치에 민감해졌고, 공정과 평등에 대해 다른 관념을 갖는 기성세대와 충돌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응해 누군가는 20대 현상이나 청년 세대론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지금 20대 현상이라 일컫는 이야기 대다수는 지금의 40대, 즉 X세대가 출현할 때 이미 한 번쯤 나왔던 이야기의 반복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소위 20대 현상은 새로울 것도 없고 실체도 없는 게으른 논의에 불과하다.
그래서 20대 현상에 대해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어쨌든 ‘20대 현상’이라 불리는 무언가가 사회적으로 널리 논의가 되고 있다는 사실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 이 글 역시 복잡하게 꼬인 90년대생에 관한 논의에 별 의미 없는 소음을 더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 글이 1994년에 태어난 2021년의 20대 중 하나로서, 나 자신이 속한 세대와 우리를 둘러싼 시대에 대한 감상을 더하는 글이라면 그보다는 좀 더 의의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변명도 얹어본다.
20대 현상에 대해 논하려면 먼저 그 실체를 보다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처음 짚어볼 것은 지금의 현상이 ‘연령효과’인지 ‘세대효과’인지 가려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20대 현상’은 시대를 막론하고 한국의 20대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현상인가? 예컨대 2010년의 1980년대생들과 2020년의 1990년대생들은 같은 20대 현상을 공유했는가? 아니면 이는 ‘근래의’ 20대인 1990년대생들에게만 한정 지을 수 있는 현상인가? 여기에 더해, 20대 현상을 특정 성별에 한정 지을 수 있는지의 문제도 더해진다. 두 번째 질문은 현상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20대든, 90년대생이든, 특정 인구 집단이 다른 인구 집단과 변별되는 특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2020년 현재의 20대는 다른 세대와 차이를 보이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래도 간단하다. 내 개인적인 인상은 작금의 ‘20대 현상’은 2020년 현재의 기준에서 20대인 90년대생들이 부상하면서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즉, 연령효과보다는 세대효과가 강하다. 물론 인구의 특성이 1년 단위로 칼같이 변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 30대 초반을 형성하는 80년대 후반생들도 90년대생들과 많은 것을 공유한다. 그러나 30대 후반인 80년대 초반생이나 그 위인 70년대생으로 가면 갈수록 90년대생과의 공통점은 옅어진다.
그렇다면 20여 년 전 X세대가 20대일 때 나왔던 이야기와 작금의 20대 현상론이 거의 유사하다는 지적에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답이 가능하다. 첫째, 형태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X세대와 90년대생이라는 두 세대 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둘째, X세대의 특성으로 지적되었던 어떤 것들이 시대를 거치며 90년대생들에게서 더 강해졌다는 식의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글에서는 앞으로 ‘20대 현상’보다는 ‘90년대생 현상’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할 것이다. 나는 90년대생이 30대가 되어서도 그들이 다른 세대에 대해 갖는 차이가 유지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답하기가 더 힘들다. 그래서 90년대생이 그 윗세대와 다른 점이 대체 무엇인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 그들을 다르게 만들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사실상 ‘20대 현상론’의 실체와 원인을 다 설명해야지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내용조차 제대로 합의되지 않은 ‘20대 현상론90년대생론’의 성격을 규정하고 분석하는 것 자체가, 이 난해한 현상에 대한 각자의 답 그 자체인 셈이다.
그러니 답을 먼저 내리기 전에, 이제 본격적으로 90년대생의 주요한 특징이 과연 무엇인지 얘기해보자. 모호한 인상과 숱한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90년대생만의 특징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이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2010년대의 10년을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이 10년 동안 90년대생들이 차츰 20대가 되어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10년대의 20대들이 주도하여 일으킨 변화상은 90년대생들당연히 그 인접 연령대도 포함만의 특성을 보여주는 단서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생들의 전장: 온라인과 콘텐츠
여기서 내가 제시하고 싶은 것은 양면적인 두 가지 현상이다. 첫 번째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사회갈등이 격렬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끓는 솥과 같은 한국 사회에서 갈등이 격하지 않았던 때는 이전에도 없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는 갈등의 장이 주로 온라인으로 옮겨갔으며, 온라인에서 급변하는 여론이 실제 세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2010년대 펼쳐진 한국 사회의 논쟁을 훗날 돌이켜볼 때, 일베, 디씨인사이드, 트위터, ‘여초 카페’ 등을 아예 논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온라인 커뮤니티의 위상은 이전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커졌다.
커뮤니티에 속한 숱아 이용자들이 다양한 주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 것 자체는 이전과 비교했을 때 근본적 차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는 남초 커뮤니티와 여초 커뮤니티 사이의 갈등이 첨예해지기 시작했고, 그 밖에 여러 소규모 커뮤니티도 포함된 온라인 집단들이 ‘화력’에 근거한 세력 싸움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현상이라 할 만했다. 이 같은 세력 싸움도 물론 이전부터 내려오던 경향을 계승한 것이었지만, 2010년대에 들어 이 갈등이 한층 격해지고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빈도가 늘었다는 것은 이전과의 중요한 차이였다. 증오와 혐오에 대한 논의가 급증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두 번째 양면적인 현상은 한국의 대중문화와 콘텐츠 산업이 급격한 발전을 거듭해 세계적 수준에 올라섰다는 것이다. 요즘에야 K-팝 아이돌의 세계적 위상이 너무나 당연하고,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도 세계 전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지만, 2010년만 하더라도 한국 콘텐츠의 위상이 10년 안에 세계적 수준에 올라설 것이라는 말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이돌은 음악성 없는 상품 취급을 받기 십상이었고, 드라마는 자주 막장이라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 떠오르는 웹툰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0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한국 콘텐츠는 기존의 주요 시장이던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전역으로 뻗어나갔고, 온라인 플랫폼의 발전에 힘입어 웹툰과 웹소설 같은 콘텐츠 산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이런 콘텐츠의 발전에 맞물려 한국이라는 국가 이미지 전반 또한 함께 상승했다. 서구나 일본 문화를 늘 의식해오던 한국이 반대로 ‘선진국’ 문화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한 것은 실로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리고 대중문화와 콘텐츠가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이 시기 또한 90년대생들이 20대로 부상한 때였다. 물론 봉준호나 방시혁이 90년대생은 아니듯, 모든 콘텐츠 산업의 성장을 90년대생의 진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돌에서부터 만화, 인터넷 방송에 이르기까지 90년대생들은 콘텐츠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연예 기획사, 방송국, 혹은 네이버와 같은 대형 플랫폼과 상호작용해 한국 콘텐츠의 트렌드를 형성하는 데 아주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2010년대 한국의 ‘콘텐츠 제국’ 건설에 있어서 총사령부나 수뇌부를 맡지는 못했어도, 결정적 공헌을 세운 일선 정예부대 역할을 맡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갈등의 격화와 콘텐츠 산업의 발전이라는 현상을 동전의 양면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이유는 2010년대에 발전한 콘텐츠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2010년대에 발전한 콘텐츠는 장르를 막론하고 상당한 강도의 갈등을 반영했다. 대중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 음원차트나 오디션 프로그램은 팬덤과 기획사 간의 치열한 경쟁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곳이 되어 전장처럼 변모했다. 웹소설은 이전보다 ‘한국적’ 색채가 짙어지면서, 위계를 거슬러 오르는 사회적 상승, 적대적 세계 속의 투쟁, 경쟁이 야기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며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웹소설보다 정도는 약했지만, 웹툰 또한 유사한 흐름을 겪었다. 내용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처럼 소비 양태의 변화도 발견되는데, 서로 대립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콘텐츠와 플랫폼을 둘러싼 갈등을 벌이며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2010년대 전반에 걸쳐 발전한 한국의 대중문화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그래서 ‘투쟁’일 것이다. 이 시기의 대중문화 콘텐츠에는 주제의식과 서사 구조부터 소비자들의 행태까지 일관된 투쟁 지향성이 관찰된다. 그리고 그 투쟁심이야말로 2010년대 한국 콘텐츠 산업 발전의 주된 연료였다. 투쟁심은 구성원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산업이 고속 발전할 수 있게 만든 심리적 동기였다. 그들은 서사의 주인공이 투쟁하는 것에서 대리만족을 느꼈고, 소비자로서 투쟁에 참여한다는 데서 어떤 만족감을 느꼈다. 2010년대의 콘텐츠는 그런 면에서 90년대생 사이에서 격렬해진 사회갈등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아니, 어쩌면 사회갈등의 격화가 반대로 콘텐츠 발전의 연장선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두 현상, 격화되는 갈등과 투쟁적 방향으로 발전한 콘텐츠 사이에는 서로 전혀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심지어 다양한 진영 간의 세력 싸움이나 콘텐츠의 세계적 약진은 그것들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변화와도 어떤 상관 없이 자체적으로 진화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90년대생이라는 특정 세대가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두 주요한 현상이 공히 같은 메시지를 표출하고 있다면, 이것을 90년대생이라는 인구 집단이 보편적으로 겪은 어떤 거시적 변화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이라고 바라보는 것이 완전히 터무니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다대한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고, 어쩌면 검증을 굳이 시도할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90년대생이 주도한 온라인 공간은 왜 그토록 투쟁적이된 것일까? 집단적 투쟁적이 된 것일까? 집단적 투쟁심이 모종의 압박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라는 가정에 동의한다면, 그 투쟁심은 그들이 겪었던 사회적 압박과 스트레스의 반영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즉, 90년대생들을 둘러싼 모종의 환경 변화가 그들에게 적대적으로 작용했고, 그로 인해 축적된 집단적 에너지가 90년대생을 투쟁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요점은 “90년대생들을 투쟁적으로 만든 환경의 변화, 특히 압력은 무엇인가?”로 좁혀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게 된다. 한국이 1인당 GDP 1만 달러를 달성했을 무렵에 태어난 90년대생들이 대체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모자라서 ‘압박’을 느낀단 말인가?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그들도 무언가 변화를 겪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21세기에 90년대생이 겪은 변화라는 것이 그들 윗세대가 겪었던 더욱 극심한 빈곤과 더욱 야만적 폭력에 비할 바가 되는 것인가?
이는 충분히 타당한 의문이다. 그러나 90년대생들이 압박을 느끼고 투쟁적이 되었다는 것은 객관적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 주관적 심리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인간 심리의 주관성은 언제나 거시적 시간 속에서의 절대적 변화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90년대생이 그 이전 세대보다 지표상 나은 것은 분명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환경을 개인적으로 감각되는 수준에서만 인식하고, 그 인식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를 이해한다. 이 때문에 절대적 지표의 영향력은 그 지표 안의 인간이 맞닥뜨린 심리적 문제에서 어느 정도는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90년대생뿐 아니라 모든 인간 개인과 집단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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