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글
주주 최우선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할 가장 좋은 기회
─ 송옥렬 | 서울대 로스쿨 교수
린 스타우트Lynn Stout 교수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니 매우 반갑다. 이분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유학 시절 그리고 교수가 되어서도 즐겨 읽던 논문 가운데는 늘 린 스타우트 교수의 글이 있었다. 왜 증권시장이 카지노와 같은가를 이론적으로 분석해놓은 논문은 읽으면서 여러 차례 감탄한 기억이 있다. 기업 이론에 관한 흥미로운 논문도 여럿 있다. 이 책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양심 키우기Cultivating Conscience》 역시 기존의 성악설에 기초한 법경제학에 경종을 울리는 책으로서,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기를 기대한다. 두 책 모두, 냉정한 그리고 우울한 학문인 경제학의 틀 안에 있기는 하지만 이분만이 가진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는 책이다.
이분의 글은 항상 직선적이고 읽기 쉬우면서도, 아주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특히 비판 대상에 대한 충실하고 정확한 분석은 좋은 귀감이 된다. 그래서 이분의 글을 읽다 보면 오히려 그 비판 대상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이 책은 뎀세츠Demsetz로부터 출발하여, 젠슨Jensen과 메클링Meckling, 이스터브룩Easterbrook과 피셀Fischel, 그리고 최근의 한스만Hansmann과 크라크만Kraakman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주류적 기억법 논리를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이 책은 이런 주류적 입장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나면 덤으로 미국 학계의 최신 동향에 대해서 정확한 내용을 알게 될 것이다. 이중 주식 구조, 시차 이사회 제도, 포이즌 필 등에 대한 실증 연구는 여전히 미국 기업법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것들이다.
이 책은 주주 최우선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 논쟁은, 원서가 출간된 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기업법과 재무학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이다. 즉 기업의 목적이 무엇인가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인데, 미국의 주주 최우선주의에 대항하여 주로 유럽의 학계를 중심으로 ESG 또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강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논쟁의 중심적인 논거는 이 책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독자들은 10년쯤 전의 논의를 통하여 현재 벌어지는 논쟁을 이해하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린 스타우트 교수는 이렇게 세상을 앞서갔다.
이 책이 워낙 직선적으로 주주 최우선주의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노파심에서 독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점을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이제는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식으로 주주 최우선주의를 극단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구글에서 마틴 슈크렐리Martin Shkreli를 검색해보면 청문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변호하는 사진을 찾을 수 있다. 한 헤지펀드가 에이즈 치료약을 생산하는 기업을 염가에 매수한 다음 치료제 가격을 대폭 인상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는데, 바로 그 주인공이 슈크렐리이다. 청문회에서 그는 도대체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 당연한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공격하는 월가의 탐욕이 그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것은 주주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현재 주류적인 입장은 주주 이익을 슈크렐리처럼 이해하지는 않으며, 이 책과 같이 정말로 주주가 원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한다. 독자들은 이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는 내용, 즉 진정으로 주주가 원하는 것에 대한 설명에 더 주목하면 좋을 것이다.
더 중요한 부분은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에 관한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룬 여러 제도와 실증 연구는 미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미국과 다르다. 예를 들어 이중 주식 구조, 시차 이사회 제도, 포이즌 필 같은 제도는 한국 기업법에서는 불가능하거나 미국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대신 우리나라에는 미국에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여러 문제들, 특히 재벌 구조와 관련된 문제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린 스타우트 교수는 일감 몰아주기나 경영권 승계같은 것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사회나 주주총회도 분위기가 다르다. 무엇보다 한국은 아직 주주 이익조차 충분히 강조되거나 보호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지배 주주의 잘못인 경우도 많지만 정부나 정치권이 자신의 회사인 양 주주 이익, 나아가 기업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도 본다. 따라서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데는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
사회과학을 하는 학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남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게 쓰인 ‘다른’ 생각을 읽는 것은 학문을 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린 스타우트 교수의 글은 미국 학계에서도 이런 점에서 늘 높게 평가받았다. 이 책에서도 그런 설명이 곳곳에 등장한다. 이런 곳에서는 잠시 책을 읽는 속도를 줄여서 찬찬히 읽은 다음, 기존의 논리와 이 책의 비판을 다시 확인해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개인적으로도 즐거웠고 생산적인 시간이었다. 독자들도 오늘날 벌어지는 중요한 논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잘 쓰인 책을 읽는 즐거움을 제공할 것이라 확신한다.
해제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우리는 어디에 서야 할까?
─ 류영재 |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서스틴페스트 대표
이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 린 스타우트는 존메이너드 케인스의 유명한 말을 인용했다. “경제학자와 정치 사상가의 사상은 옳건 그르건 간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사실 이 세상은 극소수에 의해 움직인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지성의 영향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고 믿지만, 항상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일 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 자본주의가 오래전에 죽은 경제학자들의 사상을 여과 없이 수용하며, 여전히 그것에 지배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기업은 누구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이고도 묵직한 물음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치열한 담론 전개를 통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우리만의 독창적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여 “기업의 목적은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것”이라는 서구 어느 경제학자의 주장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며 추종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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