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죄수를 활용한 불법 수사
‘제보자 X’와의 만남
2018년 12월 17일 서울 성공회 빌딩 뉴스타파 사무실, 처음 만난 그 남자는 두툼한 패딩을 입고 있었다. 실내라 춥지 않은데도 패딩을 벗지 않았다. 금융 시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선수’라는 얘기를 듣고 상상했던 매끈한 인상은 아니었다. 50대 초 중반, 키는 보통이지만 힘은 꽤나 쓸 것 같은 체구다. 그는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우리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고 있는지, 혹은 믿고 있는지 조금은 걱정되는 얼굴로 자꾸만 표정과 눈빛을 살폈다. 중요한 대목마다 미리 준비해 온 클리어 파일 1개 분량의 서류와 두터운 노트를 펼쳐 보였다.
그로부터 8개월 뒤 우리가 〈죄수와 검사〉 보도를 통해 선사한 ‘제보자 X’라는 별칭이 지금은 더 유명해진, 지 모 씨다.
“저는 남부구치소에 수감된 죄수였는데, 남부지검의 수사도 했어요, 제가.”
“본인과 연관된 사건에서 참고인 진술을 했다거나… 일부 제보를 했다거나 그랬던 것 아닌가요?”
“아니 그게 아니고. 처음에는 제가 연관된 사건 수사를 도왔지만 나중에는 저와 아무 상관없는 사건의 수사도 했다니까요.”
“그럼 뭐 기술적인 분석이나 이런 전문적인 영역에서 좀 조언을 해주신 거겠죠?”
“어떤 기업을 수사해야 하는지 아이템 발굴과 선정까지 제가 다 한 적도 있다니까요.”
‘죄수’, 즉 재소자들의 주장은 과장된 경우가 많다. 구치소 안 먼발치에서 한 번 힐끗 본 유명인을 지인이라 하고, 말이라도 한 번 섞어 봤다 싶으면 절친한 친구라고 한다. 검사에게 살짝 정보를 귀띔해 준 정도면 결정적 제보를 했다고 하고, 기술적인 조언을 좀 했다 싶으면 그 수사는 자신이 다 했다고 하는 식이다. 그 역시 횡령 혐의 등으로 4년 5개월 형을 살고 불과 넉 달 전에 출소한 ‘죄수’ 출신, 그래서 그의 말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여겼다.
우리가 믿지 못하는 눈치를 보이자, 그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PT,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시작했다. 검사들에게도 했던 PT라고 했다. 주가조작과 배임·횡령 등 기업 범죄 수사에 대한 PT였다. 낯선 용어들이 튀어나왔다. 한두 시간 듣고 나자 기업 범죄 수사에 대한 그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래도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제보자 X가 뉴스타파에 연락을 해온 것은 그날의 첫 만남으로부터 약 두 달 전의 일이었다. 2018년 10월 25일, 뉴스타파 홈페이지에 동아일보 김재호 사장의 부당 주식거래 혐의를 다룬 기사가 나갔다. 기사를 쓴 사람은 전자신문 해직기자 출신으로 뉴스타파에 합류한 이은용 객원기자.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과 방송통신위원회 서기관 한 명이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올리패스라는 비상장회사의 주식을 거래해 시세차익을 봤다는 내용이었다. 김재호라는 언론계 인물이 엮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언론도 이 기사를 받아쓰거나 추가보도를 하지 않았다. 어쩌면 김재호라는 언론계 거물이 엮여 있다는 게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김재호가 얻은 시세차익이 2천만 원 정도밖에 확인이 안 됐고, 연루된 방통위 공무원의 직급도 서기관에 불과했다는 게 다른 언론들의 핑계였을 것이다.
제보자 X는 이 기사를 눈여겨봤다. 당시 그는 출소한 지 석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그는 기사를 쓴 이은용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당신이 쓴 기사가 사실에 부합한다고, 그리고 추가로 제보할 것이 있다고 말이다. 그가 이 사건을 잘 알고 있던 건 올리패스 주식거래에 깊이 개입한 인물을 수감 시절 동료 재소자로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 재소자에게 받은 정보로 기사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기사를 내보낸 뉴스타파라는 언론사에 한 가닥 신뢰와 기대를 가졌다. 이 언론사라면 내가 경험한 얘기를 기사로 내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일주일 뒤인 2018년 11월 1일, 제보자 X가 뉴스타파 이은용 객원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은용 기자는 제보 내용을 본 뒤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와 상의했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던 데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용이 방대하고 복잡하고 다양했기 때문이다. 김용진 대표는 당시 팀장이었던 김경래 기자를 불러 상의했고, 김경래 기자는 팀원이었던 내게 취재를 제안했다. 나와 김경래 기자, 두 사람이 내린 처음의 판단은 ‘제보 내용이 사실인지도 알 수 없고, 사실이라 해도 입증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냥 포기할 수도 없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조금씩 취재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탐사보도를 하다 보면 이렇게 하나의 기사가 다른 기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히 있다. 큰 파장을 일으킨 기사가 아니라도 공들여 쓴 기사는 누군가에게 신뢰를 주고, 그 누군가는 무언가 제보를 할 일이 생겼을 때 기사를 떠올리며 그 언론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신뢰의 선순환이다. 그렇게 해서 취재를 시작한 〈죄수와 검사〉 시리즈는 훗날 다른 제보들을 불러 모아 또다른 굵직한 취재들로 이어졌다. 하나의 작은 씨앗이 큰 나무가 된 셈이다.
이렇게 나와 김경래 기자는 느슨하게나마 한시적인 취재팀을 꾸리게 되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취재를 진행하면서 김새봄 피디와 정형민 촬영기자, 박서영 편집감독이 합류해 〈죄수와 검사〉 팀이 꾸려진다. 예상치 못했지만, 이 팀은 이후 거의 2년 동안 〈죄수와 검사〉를 함께 취재하게 됐다. 김새봄 피디는 첫 번째 시즌까지 함께했다.
“나는 죄수이자 남부지검 수사관이었다”
제보자 X는 여러 가지 제보를 했는데 가장 기초가 되는 내용은 이렇다. 자신이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됐던 시절 죄수의 신분으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170번 정도 출정을 나가 검찰의 수사를 도왔다는 것이다. 그가 제보한 다른 사안들은 이렇게 죄수의 신분으로 검찰의 수사를 돕는 과정에서 보고 들은 것이다.
죄수란 갇혀 있는 사람이다. 징역형은 노역을 하고 금고형은 노역을 하지 않는 차이가 있지만, 징역형이든 금고형이든 ‘갇혀 있다’는 점이 죄수의 본질이다. 죄수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경우는 질병으로 인한 입원이나 직계가족의 사망 등 특별한 사유에 한하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이다. 갇혀 있다는 것 자체가 범죄에 대한 징벌이기 때문에 아무 때나 들락날락할 수 없도록 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특별한 사유 없이도 구치소나 교도소 밖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출정이다. 출정이란 원래 구치소에 수감된 재소자가 재판을 받거나 자신의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추가 조사를 받으러 구치소 밖으로 나가는 절차를 말한다. 재판이야 정해진 일정대로니 별다른 특혜나 조율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검찰의 조사를 받으러 나가는 출정이다. 검사가 클릭 몇 번으로 공문 한 장을 보내기만 하면 언제든 죄수를 자신의 검사실로 불러들일 수 있다. 공문에 구체적인 수사 내용을 적시할 필요도 없다. 수사하는 내용의 제목 정도만 적어주고 관련 수사라고만 적으면 된다. 본래 수용자에 대한 관리의 책임과 권한은 법무부 산하 교정본부, 즉 구치소나 교도소 측에 있지만 검사는 이 방법으로 죄수들을 마음대로 부를 수 있다. 똑같은 수사시관이지만 경찰은 출정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 따라서 재소자들을 조사할 필요가 있을 때는 경찰관이 직접 구치소나 교도소로 방문해 조사를 한다.
제보자 X는 바로 이 출정으로 검사실에 드나들면서 마치 수사관처럼 수사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자신과 연관된 사건에 대한 조사 때문에 출정을 다닌 것이 아니라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사안의 수사에 참여했으며, 심지어 수사할 사안을 자신이 발굴하거나 기획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재소자 신분으로 어떻게 수사에 참여할 수 있는지 좀 이해가 안 되거든요”
“저도 그런 시스템이 있었는지 잘 몰랐는데… 제가 〈스포츠서울〉이라는 언론사의 주가조작을 검찰에 제보한 이후에 관련자들이 많이 구속이 됐죠. 그러고 나서 검찰에서는 아마 제가 이렇게 제보하거나 사건을 구성하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저한테 수사를 도와달라고 요청을 해서 검찰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수사에 참여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자신이 연관된 주가조작 사건을 검찰에 제보했는데, 오랜 기간 주식시장에서 활동했던 그의 이력과 능력을 눈여겨본 검찰이 그를 따로 불러내 다른 사건의 수사를 돕게 했고,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아예 자신이 사건을 발굴해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건을 조사하고 나면 보고서를 작성해 검사들과 수사관, 금감원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을 앞에 두고 PT를 했다고 한다.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했던 그런 종류의 PT 말이다.
대신 검찰은 편의를 봐주기 위해 방 하나를 따로 내주고, 외부와의 통화는 물론 가족이나 지인과의 면담도 자유롭게 하도록 해주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인터넷이 연결된 PC 사용은 물론 개인 태블릿 PC의 반입도 묵인해주었다고 한다. 죄수복을 입은 죄수가 검찰청에 자신의 사무실을 두고 들락날락하며 수사를 도왔다고? 영화 같은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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