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열여덟 살의 학교폭력, 28년 후의 기록
|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1997년 여름, 대학생이 된 지 2년 6개월이 지난 여름방학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까맣게 모른 채 나는 책을 읽으려고 버스를 타고 시립도서관에 갔다. 오후 3시쯤 종합열람실에서 나와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데 누가 다가왔다. “은혜 아니니?” 그 순간 나는 공들여 벗어난 지난날이 무색하게 3년여 전 악몽 속으로 다시 내던져지면서 온몸이 얼어붙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보고 싶었는데…… 은혜야, 우리 아빠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엄마는 집에 돌아왔고. 그동안 많이 힘들었는데 우리 이제 다시 만나자.”
K 특유의 친근감과 비굴함을 반반 섞은 얼굴은 여전했다. 그가 상대를 끌어들이는 화법도 변함없었다. 동정심을 살 만한 불행한 일을 빠르게 몇 가지 나열하면서 상대방의 나약한 마음을 헤집었다.
3년 전 그 시절 K의 몸과 마음은 불행의 요소들이 똬리를 튼 집약소 같았다. 그건 한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고, 옆에 있던 나는 그 애의 심신 속에서 소화되지 못한 불행들을 받아내는 쓰레받기가 되어 있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순 없었다. 그 애 아빠가 돌아가셨든 말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기에 열람실로 돌아와 도서관 사서 앞 책상에 자리를 잡고 책을 들었다. 이때 ‘퍽!’ 하고 갑자기 두꺼운 손이 내 뒤통수를 갈겼다. “너같이 잔인한 년은 처음 봐.” 열람실 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책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불평등과 불행
삶에서 어둠은 바깥으로부터 주어질 때가 많다. 세상을 향해 자기를 열어놓으면 노랑, 주황, 초록, 파랑 등 색색의 존재가 웃으며 다가오지만 본색을 숨긴 채 검은색의 사람도 끼어서 들어온다. 인간은 반쯤 어리석어 수개월이 흐른 뒤에야 옆의 존재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알아차리는데, 그때는 이미 사방이 무언가로 둘러쳐져 있어 탈출하기에는 늦은 시점이다. 28년 전 열여덟 살 때의 내 어두운 생이 그랬다.
삶은 흔히 불평등하다고들 하는데, K를 보면 정말 그랬다. 학교를 마치고 K의 집에 놀러 가면 그의 아버지는 대낮인데도 술을 들고 계셨다. 엄마는 부재로서 자기 존재를 강력히 증명했는데, 가족 앨범 속 사진마다 그녀의 얼굴이 도려내져 있었다. 파내어진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진을 보여주는 그 아이가 안됐지만 그렇다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이번엔 장롱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옷이 한가득 쌓여 있었는데, 가위로 찢긴 넝마가 된 엄마 옷들이었다. 남겨진 가족은 집 나간 엄마를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기보다는 한맺힘의 증거들을 나열해놓으며 동거하고 있었다.
K의 집에 가면 음식과 노래와 농담들이 있었다. 그 애는 아빠가 사주는 고기를 먹으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른스러운 농담들을 던졌다. 음주가무에 능한 그 애 아빠는 노래를 불렀다. 집 나간 엄마는 아마 그 시간에 어디서 식당일을 하고 계셨을 것이다. 그 애의 오빠나 동생과도 오가며 마주쳤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지만 언제든 부서질 것 같은 이 가족은 나를 맞아들이고 함께 있자고 했다. 우리 가족끼리만 있으면 두려우니까 외부인이 들어와 그 불안의 느낌을 희석시켜주기를 기대했을 테지만, 거꾸로 내가 불행 속으로 빠르게 끌려들어갔다.
처음 K와 친해진 방식은 이랬다. 몇 개월간 온갖 달콤한 말과 행동으로 잘해주면서 학교의 모든 아이 앞에서 우리가 단짝임을 과시했다. 둘 사이의 관계가 확고해지자 점점 둘만의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때부터 굴레를 씌우는 일들이 은밀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K는 다른 사람보다 욕망의 크기가 유난히 더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K의 욕망은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나뉘었는데, 학업 성적, 외모, 이성 관계성적 욕망 그리고 온전한 가족이었다. 고등학생이 이런 것들을 바라는 것은 특별하기보다 지극히 평범한 면모겠지만, 문제는 K의 욕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데 있었다.
그 애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도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 했다. 연습장에 암기할 내용을 수십 번씩 쓰면서 외웠지만 성적은 중상위권 혹은 중위권에 머물렀다. 외모에 대한 열망 또한 컸는데, 이는 이성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마음과 결부돼 있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고교 시절의 식욕은 대체로 생애주기에서 정점에 달하고, K 역시 먹는 걸 좋아했다. 이것은 K가 바라는 ‘예쁜 외모’와 ‘이성적인 매력’에서 점점 그애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게다가 ‘행복한 가정’은 의도와 상관없이 그 아이에게는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것이 돼버렸다.
마사 누스바움은 『정치적 감정』에서 ‘시기심’에 대해 검토하는데, 시기심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소유했는지 혹은 그러지 못했는지에 따라 생겨나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대상신분, 부, 기타 이점들은 골고루 분배돼 있지 않은데, 이런 “불쾌한 대비” 때문에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고통과 적대감’이 수반되는 시기심이 생겨난다고 한다. 이에 앞서 존 롤스 역시 사회생활의 조건들이 눈에 띄게 차이날 경우 못 가진 자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여고생이었지만, K가 못 가진 것을 좀더 명확히 드러내고 확인시키는 존재가 됨으로써 K의 욕망이 굴절되어 폭력으로 변질될 때 이를 받아내는 처지가 되어갔다.
우선 성적이 K보다 좋았던 나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압수당해 찢기곤 했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엔 폭력이 자행됐다. 주로 폭언과 발길질이었고, 그다음 시험 성적을 낮추기 위해 학교가 파한 뒤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공부를 못 하게 저녁 9시까지 붙들어두었다. (아빠의 실업과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해 그 집의 가세는 속도를 내며 기울었고, 서울에 있던 아파트를 팔아 외곽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이사 간 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왕복 2시간 이상이 걸려 나도 점점 지쳐갔다.) 집에 돌려보낼 때는 ‘공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그럼에도 믿지 못해 내가 집에 도착할 시간에 전화를 걸어 한 시간쯤 통화를 했다. 그때부터 난 살아남기 위해 수업 시간에 배우는 대로 즉시 외워버렸다. 밤에 집에 돌아오는 컴컴한 버스 안에서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적은 쪽지를 펴들고 급히 암기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답안지는 하루 정도 신체적 폭력을 당하고 일주일 정도 정신적인 괴롭힘을 받는 것을 각오한 채 써냈던 반면, 모의고사 답안은 대학 입시 점수에 반영되지 않는 까닭에 백지로 냈다. 그때 나는 K를 위해서라기보다 나 자신을 위해 신께서 그 아이에게 남들만큼 좋은 것 몇 가지를 주셨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면 세상이 좀더 평화로워질 것이었다.
K는 평범한 몸무게와 체형을 가졌던 나를 견디지 못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외모에 관심이 많아서 머리 모양을 늘 꾸미고, 유명 브랜드의 청바지와 워커를 착용한 그 애지만, 또래 소년들이 욕망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리 학교는 남녀 공학이었고, K가 좋아하던 남자아이가 있었지만 잘 이뤄지지 않아 K는 어느 날부터 내가 남자 선배들이랑 마주칠 때면 귀에다 대고 “인사하면 죽는다”라고 소곤거리며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후로 무례한 사람처럼 아는 선배들을 보고도 인사할 수 없었다.
3학년 1학기는 졸업앨범 촬영을 하는 시즌이다. 사진 촬영 후 K는 심기가 불편해 얼굴이 붉어졌다. 자기 사진이 생각보다 못 나왔던 반면 내 사진은 예상보다 잘 나와서였던 듯하다. 반년쯤 뒤 2학기 때 선생님은 재촬영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K는 나를 대신해서 내 졸업사진의 재촬영을 신청했다. 이때 나는 머리도 풀어 늘어뜨리지 못했고 1학기보다 좀더 통통해져 사진이 전만 못하게 나왔는데, 그걸 보고 그 애는 껄껄 웃더니 앨범에 후자가 실리도록 했다.
또한 K는 자신의 가족이 유리처럼 언제 깨질지 모를 상태가 되자 내 가족을 표적으로 삼았다. 보통 폭력은 정신적 폭력과 신체적 가해가 동시에 이뤄지는데, 정신적 폭력에는 거짓말이 동반되기 마련이다. “너희 엄마는 갈보야!” K는 엄마와 나의 관계를 깨뜨리려고 이런 말을 지어냈다. “너희 엄마 옛날에 몸 팔았던 거 알아?” 엄마의 부재를 매일같이 느끼던 K는 나의 엄마를 성적 대상화시켜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래로 떨어지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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