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신문조서
피의자: 문희
위의 사람에 대한 김수성 명예훼손 피의 사건에 관하여 20**년 *월 **일 15:25 신양경찰서에서 사법경찰관 조형식은 사법경찰리 이윤수를 참여하게 한 후, 피의자에 대하여 다시 아래의 권리들이 있음을 알려 주고 이를 행사할 것인지 그 의사를 확인한다.
1. 귀하는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아니할 수 있습니다.
2. 귀하가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합니다.
3. 귀하가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4. 귀하가 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 피의자는 본건 고소인 김수성을 아나요?
답: 네. 김수성 씨의 어머니인 박성자 씨가 저희 할머니와 한 동네에서 30년 넘게 사셨습니다. 박성자 씨가 종종 저희 집에 놀러 오셨는데, 간간이 자제분들 얘기를 하셔서 둘째 아드님인 김수성 씨도 예전부터 알았습니다. 또 김수성 씨가 하는 가게 앞을 지나다가 간혹 얼굴을 뵙기도 했습니다.
문: 피의자는 고소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 본 적이 있나요?
답: 아니요. 하지만 자주 그 앞을 지나갔습니다.
문: 피의자는 고소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한 아르바이트생 이진형을 알고 있습니까?
답: 가게 앞을 지나가다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아는 사이는 아닙니다.
문: 피의자는 아르바이트생과 관련된 일을 캐려고 직접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녔나요?
답: 네, 그렇습니다.
문: 피의자가 고소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아르바이트생 일에 개입했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답: 아닙니다. 저는 김수성 씨를 비방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김수성 씨는 이웃 주민일 뿐이고, 저는 그분에게 아무 감정도 없었습니다.
문: 없었다는 것은 과거형입니까? 현재는 감정이 있다는 건가요?
답: 제 감정은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에 대한 안쓰러움과 부당한 일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피의자는 고소인이 부당한 일을 벌였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렸습니까?
답: 김수성 씨의 잘못을 알려야 부당한 일을 당한 피해자의 명예를 지킬 수 있으니까요. 저는 피해자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문: 피의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소인의 가게를 이용하지 않도록 선동했습니까?
답: 아닙니다. 김수성 씨 가게에 피해를 입히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진실을 알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문: 정보통신망에 고소인의 사적인 일을 게시하였습니까?
답: 저는 누명을 쓴 피해자를 애도하기 위해 사진을 올렸을 뿐입니다.
문: 그 사진을 올리기 위해 공모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답: 공모한 게 아니라 함께 추모한 겁니다. 그 사진을 올린 일을 범죄로 규정하고 공모한 거냐고 묻는 거라면 없습니다. 저 혼자 한 일입니다.
문: SNS에 고소인과 고소인의 가게를 유추할 수 있는 글을 올린 건 맞습니까?
답: 아니요. 저는 청소년 배달 아르바이트생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 현실에 대해 썼을 뿐입니다.
문: 피의자가 올린 글에 고소인 가게를 언급한 댓글이 있습니다. 그 댓글을 보셨습니까?
답: 네. 보긴 했지만, 저는 그 댓글에 어떤 답글도 달지 않았습니다.
문: 피의자가 올린 글이 정보통신망에 확산되면서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습니까?
답: 네. 전혀 몰랐습니다. 저는 고소인이 누명을 씌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려 했을 뿐입니다.
문: 고소인의 명예가 훼손되어 영업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답: 아니요. 몰랐습니다.
문: 정보통신망에 특정한 개인의 사실을 적시하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답: 제가 법률 조항을 찾아보니 공연히 개인의 사실을 적시하면 죄가 성립된다고 명시되어 있더군요. 저는 공연히 김수성 씨를 곤경에 빠뜨릴 목적으로 SNS에 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제 글은 한 청소년을 추모하기 위한 작은 마음일 뿐입니다. 그리고 제 글을 옮긴 사람들도 모두 저처럼 마음을 보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피의자가 고소인과 관련된 사건에 개입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답: 그건 간단히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그 일의 시작은 아주 긴 얘기가 될 겁니다.
문: 본건과 관련하여 피의자에게 유리할 증거나 자료를 제출할 의향이 있습니까?
답: 네, 있습니다.
문: 이상 진술이 사실인가요?
답: 네.
문: 더 할 말이 있나요?
답: 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자술서로 제출하겠습니다.
소멸
한 사람의 시작은 우주가 탄생한 태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양에서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행성에 바다가 생기고 그 바다가 잉태한 보잘것없는 미물은 이 행성에 존재했거나 아직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시작이었다. 초록빛이나 붉은빛을 띤 끈적끈적한 시조로부터 비롯된 생명의 지난한 생존 투쟁은 행성이 태양을 46억 바퀴 돌 때까지 이어졌고, 긴 시간이 낳은 피조물은 시조의 업을 계승하여 끈질기게 발버둥 치며 복제와 업그레이드를 거듭했다.
곱게 목숨을 부지할 수도, 요행으로 종족을 번식할 수도 없는 행성의 법칙을, 예순다섯 해 동안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온 이영심 씨는 ‘팔자’라고 했다. 생명의 법칙은 모든 생명체를 아우르는 박애주의자지만, 팔자는 불행의 씨앗을 고르는 디테일을 갖춘 차별주의자다. 팔자는 행성의 법칙이 아니라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착각하는 오만한 인간의 창조물이다.
이영심 씨도 뻔히 알고 있었다. 자신을 팔자에 옭아맨 장본인은 따로 있다는 것을. 칠월 칠석에 태어난 딸을 받아 들고는 계집애가 너무 센 날 태어났다면서 출생 날짜를 하루 미룬 아버지. 가부장의 무거운 책임감을 아집과 독선으로 지탱해 온 음울한 아버지는 딸의 생일을 바꾼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딸의 미래도 멋대로 결정했다. 고등학교에 안 보내 줬으니 양재 학원이라도 보내 달라는 딸에게 곱게 있다가 시집이나 가라고 호통친 아버지는 딸에게 과분하지도 처지지도 않는 신랑감을 물색했다.
이른 봄날, 열아홉 살 이영심 씨는 새로 산 까만 에나멜 구두를 신고 아버지를 따라 읍내 다방에 갔다. 수족관이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방에는 과수원집 노인과 중학교 서무로 일한다는 그의 막내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영심 씨는 내내 수족관 안을 유유히 헤엄치는 빨간 금붕어에 한눈을 팔고, 얼굴이 새까만 제 아버지와 다르게 희멀끔한 스물여덟 살 서무는 시종 이맛살을 찌푸린 채 앉아 있었다.
그날 이영심 씨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뻣뻣한 새 구두에 발뒤꿈치가 까져 눈물을 찔끔댔는데, 어머니는 드센 사주를 액땜해야 하는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라며 쥐어박는 소리를 했다. 이 행성에서 여자가 생존하는 방식은 사내를 잘 만나는 것밖에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운명론자들의 연대는 견고했다.
이영심 씨는 서무와 서너 번 데이트라는 것을 한 뒤 결혼식을 올리고 기차역 앞 새로 지은 양옥집 2층에 살림을 차렸다. 서무는 잘 웃지 않았지만 소탈해서 옷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아내 말에 선뜻 서울 변두리에 있는 양재 학원을 끊어 줬다. 이영심 씨는 한여름에 재봉틀 밑줄 갈기를 익히고, 가을에 패턴을 배워서 눈이 잦던 겨울에 후레아스커트 하나 겨우 만들었는데, 서무가 뺑소니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게 꿈같았다. 봄에서 겨울까지 긴 꿈을 꿨다고 하면 좋았겠지만, 너무 확실한 물증들이 남아 있었다. 이영심 씨는 서무를 처음 만날 때 신었던 에나멜 구두를 신고, 수안보 온천으로 신혼여행 갈 적에 쓴 트렁크를 끌고 발이 푹푹 들어가는 눈 쌓인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완고한 운명론자들은 딸과 마주할 적마다 팔자를 운운하며 혀를 차다가 이듬해 화훼 농사를 크게 한다는 아이 하나 딸린 홀아비한테 떠넘기듯 보냈다.
눈 내리는 날이었다. 이영심 씨는 다시 트렁크를 끌고 집을 나섰다. 홀아비가 타고 온 택시는 눈길을 엉금엉금 기어갔다. 이영심 씨는 느리게 뒤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망설였다. 뛰어내려야 할까? 결국 이영심 씨는 뛰어내리지 못했고, 스무 살에 네 살짜리 사내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이영심 씨는 작년 겨울에 그 겨울날을 얘기했다.
“그 친구는 택시야 기든 말든 흰 눈이 사박사박 내리는 차창 밖만 내다봤지. 제 처지는 생각 않고 물색없이 중학교 때 몰래 극장 가서 본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가 생각나더라는 거야. 거기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나도 사랑을 찾아 썰매를 타고 눈밭을 달리는 거다, 눈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다는 말도 있지 않나, 내 사나운 팔자도 눈처럼 고와질 수도 있지 않겠나 싶었다나. 그런데 그 〈닥터 지바고〉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건 미처 생각 못 했지.”
이영심 씨의 회고록은 언제나 3인칭 시점이었다. 택시를 타고 눈길을 달리던 그 친구가 사실은 이영심 씨 자신이라는 것을 결코 말하지 않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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