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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북상하는 것.
고기압, 벚꽃, 누군가의 부음.
남하하는 것.
황사, 파업, 쓰레기.
지난 한 주간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인 것은 부음 소식이었다. 발인이 지나면 효력을 잃어버릴, 유통기한이 짧기에 신속한 것.
소식이 시작된 곳은 경남 진해였다. 하필 벚꽃의 발원지와도 같은 곳. 어느 오후의 거대한 쓰나미 아래서, 그곳의 모든 생활들이 갑자기 점. 점. 점. 으로 끊어졌다. 꽃 마중을 갔던 사람도, 걷던 사람도, 일광욕을 하던 건물도, 해변의 가로등도, 모두 점. 점. 점. 난파당했다.
요나는 금요일 오후 진해로 내려갔다. 요나가 여행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정글은 진해와 연관된 상품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곧 갖게 될 터였다. 이 순간 가장 먼저 할 일은 진해시에 위로금과 봉사 인력을 파견하는 거였다. 1000명 가까운 정글의 직원들이 1만 원씩을 걷어 모은 조의금을 전달하고, 진해시에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사태를 파악하느라 요나는 그곳에서 주말을 보냈다. 화산, 지진, 전쟁, 가뭄, 태풍, 쓰나미 등 재난의 종류는 정글의 분류 법칙에 의하면 크게 서른세 가지로 나뉘었고, 거기서 또 152개의 여행 상품이 생겨났다. 요나는 진해의 쓰나미와 봉사 활동을 결합한 상품을 만들 계획이었다.
서울에서 진해로 내려가는 데 걸린 시간보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 더 길었다. 요나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꽃 무리가 북상하고 있었다. 남해안 쓰나미 이후, 뉴스에서는 일기예보와 벚꽃의 개화 소식을 알려 준 다음, 무너진 동네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중계했다. 그러니까 해양 쓰레기의 예상 경로를 말이다. 거기엔 버려진 생활들이 있었다. 수명이 길지만 기억 속에서는 짧은 것들. 며칠 사이에 쓰레기들은 조금 더 남하했다. 여전히 바다 위에 있었지만, 어제의 그 물 위는 아니었다.
쓰레기의 예상 경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태평양 어딘가에 있다는, 한반도 일곱 배 크기의 쓰레기 섬으로 흘러들 거라고도 했고, 2년 후에는 칠레 앞바다를 지날 거라고도 했다. 10년 후의 경로를 이미 예상해 놓은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쓰레기의 경로가 자신들의 동선과 겹치지 않기를 빌었다. 일상에서 위험 요소를 배제하듯, 감자의 싹을 도려내듯, 살 속의 탄환을 빼내듯, 사람들은 재난을 덜어 내고 멀리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배제된 위험 요소를 굳이 찾아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생존 키트나 자가 발전기, 비상 천막 같은 것을 챙기면서, 재난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찾아다닌다. 그러니까 망망대해로 흘러간 쓰레기 섬을 찾아 굳이 떠나려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정글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여행사였다.
한때는 요나도 그런 여행을 꿈꿨다. 요나의 첫 여행지는 나가사키였는데, 그녀를 그곳으로 유인한 것은 가이드북의 한 문장이었다. “이 도시에는 원폭으로 불에 타거나 폭풍으로 목이 날아간 천사상이 여러 개 있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것은 목 없는 천사상의 위치였지만, 요나가 정말 궁금했던 것은 날아간 목의 위치였다. 물론 대부분 요나가 궁금해하는 것은 항상 생략되어 있었다. 돌에서 떨어진 돌들, 손질한 생선에서 떨어져 나간 비늘들, 도려낸 감자 싹이나 피 묻은 탄환, 그런 것들의 현재.
정글에서 요나는 10년 넘게 재난을 찾아다니고 그것을 상품화하는 일을 했지만, 그건 요나의 어릴 적 호기심과는 공통분모가 별로 없는 일이었다. 요나는 단지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것에 익숙했다. 재난의 빈도·강도, 인명·재산 피해가 색색의 그래프로 변해 요나의 책상 위에 붙어 있었다. 그 옆에는 세계지도와 한국 지도도 있었는데, 지명 위에 표시된 메모들은 대부분 재난을 읽는 데 필요한 말들이었다. 이제 요나에게 어떤 지명들은 재난과 동의어였다. 뉴올리언스에서는 허리케인의 흔적을 볼 수 있고, 뉴질랜드에서는 도시를 폭삭 무너뜨린 대지진을 훔쳐볼 수 있고, 체르노빌에서는 핵 누출로 생긴 유령 마을과 낙진으로 생긴 붉은 숲을, 브라질의 빈민가에서는 경제 재앙의 현실을, 스리랑카나 일본, 푸껫에서는 쓰나미의 위력을, 파키스탄에서는 대홍수를 경험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재난이 없는 도시는 없었다. 재난은 우울증 같은 거라 어디에든 잠자했다. 자극이 임계점을 넘으면 그 우울증이 곪아 터지기도 하지만, 용케 숨어 한평생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진도 5.0 이상의 지진이 매년 900건가량 일어나고, 매년 300개가량의 크고 작은 화산이 터진다는 사실이 요나에겐 신호등이 녹색에서 붉은색으로, 혹은 그 반대로 바뀌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자연재해로 사망한 인구는 20만 명에 가까웠다. 근 10년간 연평균 사망자수가 10만 명 정도였던 것을 보면, 재난의 빈도와 강도는 점점 또렷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기술이 정교해지면서 방지가능한 재난의 종류도 늘어났지만, 동시에 새로운 재난들도 계속 생겨나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건 일이었다. 수많은 재난들이 요나에겐 업무였기 때문에, 때론 그보다 몹시 사소한 사건들도 요나의 머릿속에선 거대한 재난들과 동급으로 존재했다. 얼핏 보면 이상한 등가였지만, 실제로 그랬다.
“과장님, 고객만족센터에서 넘어온 거예요.”
후배가 요나에게 전화를 넘겼다. 이제 몇 마디의 기계 같은 말을 할 차례였다. “고객님, 취소하시면 수수료가 발생합니다.”나 “약관에 명시되어 있습니다.”와 같은. 정확히 말하면 그건 요나의 업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보이지 않게 책상이 옮겨지기라도 한 듯, 요나는 벌써 몇 번째 자신에게로 넘어온 고객의 전화를 응대하고 있었다.
“환불은 불가능합니다, 고객님.”
이런 말을 들을 고객들의 반응은 뻔했다.
“아직 3개월이나 남았는데요, 위약금이 100퍼센트라니 말이 됩니까. 애가 아파서 그래요, 환불이 하나도 안 된다고요? 아니, 어떻게 취소가 안 되는 상품이 다 있죠?”
“취소는 가능하지만, 이미 완불하신 예약금은 환불이 안 됩니다.”
“취소는 가능하지만, 환불이 안 된다고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예약금을 애초에 조금만 내는 게 더 나았겠네요! 이렇게 되면 저도 소비자보호원에 신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보호원으로 전화를 돌려 드릴까요? 그렇지만, 소용은 없을 거예요. 이 상품은 취소 시점과 관계없이 100퍼센트 환불 불가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약관에 밝혔고, 고객님도 그 조건으로 계약을 하신 겁니다. 이미 서명도 하셨고요. 예약금을 완불하는 대신 전체 금액을 많이 할인받으셨으니까,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보는데요. 여행을 가신다면 최고의 타이밍에 최고의 가격으로 예약하신 셈이에요. 같은 상품을 지금 예약하시는 분들은 완불했을 경우에도 35퍼센트나 더 비싸게 주고 가세요.”
“이봐요.”
고객의 목소리가 드디어 차분해졌다.
“애가 아프다고요. 병원에 입원했어요. 이렇게 되면 인지상정으로라도 취소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원하시면 취소는 가능해요.”
“환불은 안 되고, 그렇죠?”
“잘 알고 계시네요.”
“당신 이름이 뭐야?”
“고객님.”
“이름이 뭐냐고? 당신 말하는 싹퉁머리가 기분 나빠서 못 참겠어. 이름 말해.”
“고요나입니다.”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그는 화가 난 게 분명했지만, 요나 역시 화가 났다. 고객들은 통화 상대의 직급이 높을수록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었고, 그래서 고객만족센터의 전화가 프로그래머들에게 넘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화가 나는 건, 요나가 한참 잘나갈 때는 이런 전화에 시달릴 시간조차 없었고, 회사 측에서도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요나는 여행사의 브레인이지 입이 아니었다.
업무 영역이 조금씩 바뀌는 것도 옐로카드의 한 형태일지 몰랐다. 옐로카드의 존재에 대해서는 입사 초기부터 알고 있었다. 옐로카드는 경고의 의미라기보다는, 균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에 가까웠다. 한번 옐로카드를 받으면,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큰 사건이 생기지 않는 한 그때부터 시작된 추락은 막을 수 없었다. 요나는 진짜 노란색 카드가 우편이나 메일로, 혹은 인편으로 날아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옐로카드는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아주 미세하고 교묘하게, 그러나 분명 당사자로서는 회사 생활에 위기를 느낄 만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거였다.
옐로카드를 받은 사람 앞에는 이렇게 바뀐 업무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느냐, 아니면 반감을 온몸으로 표현하느냐의 두 갈래 길이 있었다. 갑자기 추락한 위치에서 5년을 꿋꿋이 버틴 뒤, 다시 원래 위치로 복귀한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 밑에 있던 부하 직원이 이제 그의 상사가 되어 있었다. 원래 자리로 복귀했지만, 그는 오래 출근하지는 못했다. 몸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옐로카드의 충격과 파란만장한 5년간의 동선이 그의 뇌 속에 종양을 만들어 낸 건지도 몰랐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요나는 몰랐다. ‘옆 팀 부장 이야기’라면서 떠도는 얘기였다.
요즘 들어 요나는 출근할 때마다 민들레 홀씨처럼 우연히 회사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내 자리인데 어쩌다 오늘 하루만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어색했다. 신입 사원들이 걸인처럼 여기저기 복도를 떠도는 걸 볼 때마다 불안했다. 요나가 그런 말을 했던 건 휴게실에서 친한 동료 몇몇이 불만을 늘어놓던 분위기에서였기 때문이다. 가볍게 토로하던 말들이 요나의 그 말에 이르자 갑자기 진지해졌다. 휴지통에 휴지를 버리듯 가볍게 말을 던지고 듣던 사람들이 요나에게 정색을 하고 물었다.
“뭐 불편한 일 있어? 그런 거 아니야?”
자기만 심각한 상황에 몰리는 듯해서, 요나는 급히 발을 뺐다. 그러나 사실 며칠 전, 불편한 일이 있긴 했다. 회의 시간에 맞춰 갔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저만치서 후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요나에게 다가왔다.
“회의 아니었어?”
빈 회의실을 나서며 요나가 묻자, 후배는 눈을 찡긋하면서 “오늘 파울이잖아요.”라고 말했다. “파울?”이라고 되묻자, 후배는 “그러게 말이에요.”라고 대꾸했다. ‘파울’이라니, 이건 또 무슨 뜻의 신조어인가? 줄임말인가, 은어인가? 생각해 보니 전날 옆 부서에 갔을 때도 “파울 때문에 그래요.”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얼떨결에 “예.” 하고 지나느라 “근데 그게 뭐죠?”라고 물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 단어의 뜻보다는 그게 어떤 상황에서 자꾸 반복되는지를 찾아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감이 안 잡혔다. 물론 누구에게든 물어보면 되는 거였지만, 모르는 티를 내기도 불안했다. 황당한 건 다른 사람들은 뜻을 아는지 자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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