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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 기르는 법
태어나서부터 만 2세까지
아기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책에 관심을 보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소리에 반응하고, 소리 나는 곳으로 가 보기도 합니다. 아기의 눈이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는 것도 신생아 시기죠. 세상의 소리를 듣고 이것저것 쳐다보고, 생후 3~4개월이면 물건 쪽으로 손을 뻗기 시작합니다. 움직임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장난감이나 딸랑이처럼 책도 탐구 대상이 되죠. 책을 물어뜯고 뒤집어 보고 한동안 응시하기도 합니다. 밝은 색깔, 뚜렷이 대비되는 색깔에 흥미를 보이고, 이야기를 읽어 주거나 노래를 불러 주는 나지막한 소리에는 온순해집니다. 말과 목소리의 리듬과 표현을 듣는 것만으로도 한창 발달하는 아기의 뇌에 풍부하고 다양한 언어 그물망이 형성됩니다.
저는 갓난아이에게 소설책을 엄청나게 읽어 줬어요. 주로 흔들의자에 앉아 있을 때나 젖을 먹이면서 하루에 몇 시간이고 읽어 주다 보니 나중에는 한 손에 전자책 리더기아기에게 벽돌 같은 소설책을 떨어뜨릴 수도 있으니까를 들고 다른 손으로 아기를 안는 자세에 완전히 익숙해졌죠. 아기가 들을 만한 내용이 아니어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그랬죠. 아무튼 아기는 단순한 일상 대화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그 말들을 모조리 듣고 있으니까요.물론 일상 대화도 매우 중요합니다!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의심이 들 수도 있지만, 핵심은 바로 ‘노출’입니다. 더 많이 소리 내어 읽어 줄수록 더 많은 단어가 아기에게 노출되겠죠. 그 과정은 앞으로 아기가 갖춰야 할 리터리시 역량에 견고한 토대가 되어 줄 겁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 준다면 아기는 6개월 무렵부터 책을 선명하고 화려한 장난감 이상으로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책을 보면 ‘이야기 시간이다!’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거죠. 아기가 책을 건넬 때마다 부모님이 잘 읽어 주셨다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아기가 유난히 좋아하는 책, 자주 보려는 책이 생길 거예요. 좋아하는 책을 거듭 읽어 주면 신이 나서 들썩들썩할 거고요.
아기는 신생아 시기부터 만지는 건 물론이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 리터러시 역량을 키워 갑니다. 촉각을 통해 실제 물건과 그 물건의 의미를 연결 짓게 되죠. 컵, 신발, 강아지 그리고 책까지요. 책장을 넘기고 표지와 그림을 만져 보며 아기는 책이란 것이 어떤 물건인지 깨달아 갑니다. 플랩북이나 촉각 책은 더 효과가 좋지요. 부모님 품에 안겨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부터 책의 생김새를 탐색하는 것까지, 물리적 접촉과 만지는 행위는 언어 발달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아이는 차츰 손가락으로 글자를 가리키며 따라 읽고, 태블릿에서 디지털 텍스트를 조작해 보기도 하겠죠. 아이 손이 닿는 곳에 책을 많이 두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책을 쥐고 건드려 보면서 책과 놀 기회를 충분히 줄 수 있으니까요.
10개월 즈음이면 아기는 난생처음 단어를 알아듣고, 돌 무렵에는 첫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할 거예요. 뜻을 이해하는 과정은 꽤 더디게 진행되다가 18개월 즈음부터 급격히 빨라집니다.
어린아이는 작은 스펀지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걸 흡수하거든요. 단어, 반복되는 가사, 노래, 책, 가리지 않고 푹 빠져듭니다. 물론 손에 닿는 건 뭐든 망가뜨리죠. 모든 감각을 동원하기 때문에 책을 씹어 먹기도 하고 찢기도 해요. 그런데 이때가 바로 책에 홀딱 빠지는 시기입니다.
스스로 책을 보는 시간에는 튼튼한 보드북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그런데 보드북에 적힌 글이 너무 단순할 수도 있으니 언어적·시각적으로 풍부한 그림책도 보여 주세요. 근사한 그림과 매혹적인 문장 그리고 이야기 자체의 쾌락에 노출시키는 것이야말로 책과 사랑에 빠지게 하는 최상의 방법이죠.
세 살 무렵에는 비로소 읽기가 지닌 사회적 특성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아이는 친구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정해진 학습 환경이 아니어도 읽고 쓸 기회에 조금씩 노출됩니다. 기관에 다니는 아이들을 지켜보면 책을 장난감처럼 대하곤 합니다. 어떻게 만지는 건지 알려 주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을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해요. 그러다가 같이 읽고 번갈아 읽게 되지요. 함께 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학습에도 서로 도움을 줍니다. 한 아이가 그림을 보고 동물 이름을 말하면 다른 아이는 동물 소리를 내는 식이죠. 어린이집에서 서너 살 아이들을 관찰해 보면 선생님이 한 번 읽어 준 책을 몇 번이고 보려고 하는데요, 이는 말과 글을 인지해 가는 초기 특징이기도 합니다. 정해진 이야기 시간이 아닐 때 스스로 책을 골라 ‘거듭’ 읽는 이 시간은 선생님과 함께하는 ‘이야기 시간’ 못지않게 의미 있는 시간이랍니다.
아기와 책 읽기
아기와 부모님 모두 독서를 즐겁게 경험할 수 있는 비결 몇 가지를 알려 드릴게요. 교육적이면서도 재미있답니다!
♬ 아기가 가장 기분 좋게 깨어 있을 때가 좋아요.
♬ 꼭 안고 읽어 주세요. 책을 읽으며 신체적으로도 친밀해집니다.
♬ 그림이 훌륭하면서 간단한 글이 곁들여진 책을 고르세요.
♬ 책 읽기 시간은 규칙적이고 짧게 해 주세요. 한 권을 다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 번에 몇 쪽만 읽어도 돼요.
♬ 끝도 없이 읽고 또 읽어 줄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부모는 미치도록 괴롭지만 아기는 반복을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배워 가지요.
아기에게 읽어 주기 좋은 책
○ 『곰 사냥을 떠나자』 마이클 로젠 글, 헬린 옥슨버리 그림, 공경희 옮김, 시공주니어, 1994
○ 『그건 내 조끼야』 나카에 요시오 글, 우에노 노리코 그림, 박상희 옮김, 비룡소, 2000
○ 『안아 줘!』 제즈 앨버로우, 웅진주니어, 2000
○ 『달님 안녕』 하야시 아키코, 한림출판사, 2001
○ 『사과가 쿵!』 다다 히로시, 정근 옮김, 보림, 2006
○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버나뎃 로제티 슈스탁 글,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신형건 옮김, 보물창고, 2006
○ 『두드려 보아요!』 안나 클라라 티돌름, 사계절, 2007
○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사계절, 2008
○ 『잘잘잘 123』 이억배, 사계절, 2008
○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 멤 폭스 글, 레슬리 스타웁 그림, 김기택 옮김, 비룡소, 2011
○ 『눈·코·입』 백주희, 보림, 2017
○ 『잘 자요, 달님』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클레먼트 허드 그림, 이연선 옮김, 시공주니어, 2017
○ 『안녕, 내 친구!』 로드 캠벨, 이상희 옮김, 보림, 2018
○ 『이건 책이 아닙니다』 장 줄리앙, 키즈엠,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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