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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를 이해해야
인간이 보인다
네트워크와 인간 행동
“1492년에 시작된 세계화1.0 때 세계의 크기는 대형에서 중형으로 축소되었다. 다국적기업이 등장하기 시작한 세계화2.0 때는 중형에서 소형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 즈음 시작된 세계화3.0 때 세계는 소형에서 초소형이 되었다.”
― 토머스 프리드먼《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 《와이어드》와의 이터뷰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 중부의 작고 오래된 도시 시디부지드에서 노점상을 하던 26세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지난 20여 년 동안 튀니지를 통치하며 저항 세력을 억압해온 독재정권에 대항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친 분노의 표현이었다. 그의 가족은 오랫동안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고, 그는 지역 경찰들에게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 그날 아침, 경찰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를 모욕하며 그가 빚까지 지며 마련한 청과물을 압수했다. 이제 그에게 남은 희망이라고는 없었다. 모하메드는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임으로써 이에 항의했다.
수십 년 전이었다면 이 사건은 수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아마도 시디부지드 밖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희생을 비디오로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공유했고, 이 영상은 시디부지드를 넘어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튀니지를 비롯해 다른 독재 정부들이 저지른 탄압 행위들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이후 전개된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사건은 휴대폰뿐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촉발되고 조직화되었다.
비록 방식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이 사건을 널리 전파시키고 대중의 분노를 키운 것은 결국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였다.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점이 있다면, 이 사건에 대한 뉴스가 전례없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대응을 조직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뉴스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아지지의 분신에 의해 촉발된 튀니지 혁명은 점점 더 규모가 커지고 격렬해져, 이듬해 1월 중순 결국 정부를 전복시키기에 이르렀다. 저항의 물결은 이웃 나라인 알제리로 퍼져 나갔고, 두 달 뒤에는 오만, 이집트, 예멘, 바레인, 쿠웨이트, 리비아, 모로코, 시리아,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에까지 전파되었다. 아랍의 봄이 성공한 혁명인지 실패한 혁명인지 그 평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 지역 전체에 그토록 빠른 속도로 시위가 확산된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으로 우리 삶에서 인간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최근 우리의 의사소통 방식이 급격히 변화한 것만큼이나―앞에 인용한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처럼―우리 세계도 여러 차례에 걸쳐 급격히 작아졌다. 인쇄기, 우편, 해외여행, 기차, 전보, 전화, 라디오, 비행기, 텔레비전, 팩스가 이러한 경향을 이끌었다. 인터넷 기술과 소셜미디어는 얼마나 멀리, 얼마나 빨리, 누구와 소통할 것인지 오래전부터 진행된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 중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일 뿐이다.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방식과 네트워크의 양상이 계속 변해왔다 해도 그중 많은 부분은 오래 지속되고 예측도 가능하다. 이와 같은 인간 네트워크에 대해 이해하고 변화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세계에 대한 많은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질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네트워크에서 각 행위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그들의 영향력과 힘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친구들에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의견을 형성할 때 우리는 어떤 체계적인 오류를 범하는가? 금융 전염은 어떻게 시작되고 독감의 확산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사회적 네트워크의 분열은 불평등과 계층 간 비유동성, 양극화를 어떻게 악화시키는가? 세계화는 국가들 사이의 갈등이나 전쟁을 어ᄄᅠᇂ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인간 네트워크는 이러한 문제들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정작 정치·경제적 행동이나 트렌드를 분석할 때는 그 영향력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가 미흡했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 행동의 동인인 네트워크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 지식과 대중 및 정책 입안자의 인식 사이에 깊은 간극이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책의 각 장은 어떤 문제를 이해하고 해법을 마련할 때 인간 네트워크에 대한 지식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즉 이 책의 목적은 우리의 수많은 사회경제적 행동을 이해하는 데 네트워크가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네트워크에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핵심 패턴이 여러 가지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들도 하나 이상의 주제를 담고 있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독자들은 각자 살고 있는 네트워크가 여러 측면에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또한 네트워크를 두 가지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하나는 네트워크가 어떻게 형성되며 왜 특정한 패턴들을 나타내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패턴들이 우리의 능력과 견해, 기회, 행동 그리고 성취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이다.
휴먼 네트워크의 특성
“삶은 참으로 단순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어한다.”
― 작자 미상
칼 세이건은 우주에 대한 그의 유명한 책에서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제로 관찰 가능한 우주에 있는 별의 수는 대략 3000해(10해=1021) 즉 300,000,000,000,000,000,000,000개로 추산된다. 너무도 커서 마치 허구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작고 초라한 존재라는 느낌은 물론 자연에 대한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놀라운 사실은 이 수가 우리가 친구나 동료와 맺는 네트워크의 수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라는 점이다. 소규모의 공동체―예컨대 학급, 동아리, 규모가 작은 회사―에 존재할 수 있는 네트워크만 봐도 그렇다. 불가능하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살펴보자.
30인으로 구성된 집단을 생각해보자. 한 학급에 소속된 아이들의 부모로 구성된 집단을 예로 들어보겠다. 30명의 학부모 중 아무나 한 명을 골라 이 사람을 세라라고 해보자. 세라가 이 집단에서 주기적으로 교류를 하며 서로 도움을 주는 친구를 사귀는 경우, 세라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29명이다. 이어 다시 한 명을 골라 이 사람을 마크라고 해보자. 마크는 앞서 세라의 사례에서 이미 고려한 관계를 제외하면 나머지 28명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이 작은 집단에서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짝의 수를 모두 더하면 435쌍29+28+27+……+1이다. 분명 이 수는 그렇게 커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집단 내에서 가능한 네트워크의 수로 변환하면 그 수는 엄청나게 커진다.
예를 들어 이 집단에 엄청난 문제가 있어서 누구도 친분을 맺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떤 관계도 없는 ‘텅 빈’ 네트워크를 얻게 될 것이다. 즉 가능한 435쌍의 관계가 모두 부재한 상황이다. 정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경우는 집단이 완벽하게 화목한 상황으로 모든 구성원이 다른 모든 구성원과 친구 관계를 맺는 ‘완전한’ 네트워크를 이룬다. 이 양극단 사이에 수많은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쌍은 친구이고 두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쌍은 친구가 아닌 상황이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씩 짝을 짓는다고 할 때 가능한 네트워크의 수를 모두 계산해보자. 각 쌍은 친구이거나 친구가 아니라는 두 가지 경우밖에 없다. 즉 각 쌍이 취할 수 있는 상태는 두 가지다. 따라서 가능한 네트워크의 수는 2×2×……×2로 2를 435번 곱한 수다. 2를 435번 곱하면 1 뒤에 0이 1313개가 붙는 수가 나온다. 앞에서 언급한 10해는 1 뒤에 0이 21개 붙는다. 따라서 가능한 네트워크의 수는 10해×10해×10해×……개로 우주에 있는 별의 수를 여러 번 곱한 값이 된다. 사실 우주에 존재한다고 추정되는 원자의 수보다도 수십 자릿수가 더 크다.
이렇든 겨우 30명으로 구성된 집단에서도 체계적으로 분류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동물을 분류하면서 누군가가 ‘얼룩말’ ‘판다’ ‘악어’ ‘모기’라고 하면, 우리는 그 단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안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런 식으로 분류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낙담하고 마냥 손 놓은 채로 사회 구조는 너무 복잡해서 이해하기 어려우니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동물을 분류하고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특징들이 있다. 척추가 있는가? 다리가 몇 개인가? 초식동물인가, 육식동물인가, 아니면 잡식동물인가? 새끼를 낳는가? 성체가 되었을 때 얼마나 커지는가? 어떤 종류의 피부를 가지고 있는가? 날 수 있는가? 물속에서 사는가? 등등. 마찬가지로 네트워크를 분류할 때도 우리는 중요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 내에 존재하는 연결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연결 관계가 구성원 사이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지, 특정한 분리 패턴을 찾을 수 있는지에 따라 네트워크를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패턴들을 통해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계층 이동, 정치적 양극화, 금융 전염 등의 이슈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 행동을 이해하려는 목적에서 네트워크를 기술하는 것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네트워크의 몇몇 핵심 특성들은 인간이 왜 그런 행동 양상을 보이는지에 대해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 둘째 이러한 특성들은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정량화가 가능하다. 셋째 인간 활동에서 나타나는 규칙성은 네트워크가 독특한 특성을 가지도록 이끈다. 예컨대 인간 사이에서 형성된 네트워크는 주위의 다른 링크link나 노드node와 무작위로 연결된 네트워크와 쉽게 구분된다.
일례로 〈그림 1.1〉에 있는 두 네트워크를 생각해보자. (a)는 고등학생들의 친구 관계를 나타낸 네트워크이며이 네트워크는 5장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b)는 컴퓨터를 이용해 (a)의 네트워크와 동일한 수의 노드와 링크를 가지지만 완전히 무작위로 연결한 네트워크를 나타낸다.
두 네트워크는 어떤 점에서 서로 다른가?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차이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고등학교의 슬픈 현실이다. 10여 명이 넘는 학생이 가까운 친구가 없다. 반면에 무작위 네트워크에서는 모든 노드가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로 인간 네트워크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그리고 일반적인 특징은 네트워크에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네트워크 상단에 위치한 학생들은 하단에 위치한 학생들과 친분 관계를 거의 가지지 않는다. 반면에 무작위 네트워크에서는 링크가 모든 방향으로 골고루 퍼져 있다.
학생들의 인종을 표시하면 네트워크에서 나타나는 분열 양상을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2〉를 보자.
이러한 분열 양상은 인간 네트워크의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특성이다. 앞으로 보게 되었지만, 인간 네트워크가 왜 이런 특성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명백할 때도 있고 조금 까다로울 때도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네트워크에 대해 배우는 까닭은 우리 삶에 미치는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예를 들어 고등학교 네트워크에서 나타나는 분열 양상이 우리가 대학을 선택할 때는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독감의 전염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삶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력 말고도 네트워크 과학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여러 학문 영역에 걸쳐 있다는 점이다. 인간 네트워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학, 경제학, 수학, 물리학, 컴퓨터 과학, 인류학의 핵심 개념과 연구들을 끌어올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경제학의 ‘외부효과externality’―사람들의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개념을, 그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다양한 형태의 피드백 작용과 결합하여 자주 이용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수많은 복잡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으로 외부효과 개념을 이용하면 복잡계의 다채로운 특성과 양상을 이해하기 쉽게 기술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또한 개인적인 친분 관계의 네트워크를 넘어 은행 간 계약이나 국가 간 협정 같은 것에 대해서도 다룰 것이다. 우리가 살펴볼 모든 사회경제적 네트워크는 어느 정도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모두 ‘인간 네트워크’의 일종이다.
나는 우리의 여정을 네트워크에서 당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어떻게 당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결정하는지에 대한 논의엥서 시작하고자 한다. 이 논의는 이후 다룰 거의 모든 주제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다. 먼저 당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논하고, 이 방법들이 네트워크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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