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
6월의 어느 토요일 이른 오후, 잭 케니슨은 선글라스를 쓰고 스포츠카에 올라탄 뒤 차 지붕을 열고 어깨와 불룩하게 나온 배 위로 안전벨트를 했다. 위스키를 사러 가려는 것이었는데, 이곳 메인주 크로스비에 있는 식료품점에서 올리브 키터리지와 마주치느니 차라리 포틀랜드―거의 한 시간 거리였다―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면 식료품점에서 두 번 마주친 다른 여자도 피할 수 있었다. 그 여자가 날씨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위스키를 들고 서 있었다. 날씨 이야기라니. 그 여자―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도 남편과 사별했다.
운전하는 동안 마음이 꽤 차분해져서, 그는 포틀랜드에 도착하자 차를 세우고 물가를 따라 걸었다. 여름이 왔으나 6월 중순이라 아직 쌀쌀했고, 하늘은 푸르고 갈매기는 부두 위를 날아다녔다. 사람들이 보도에 나와 있었는데, 많은 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있거나 유아차를 밀고 있었다. 모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함께 있다는 것을,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을 얼마나 쉽게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가! 누구도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지금은 다르게 다가왔다. 그는 그저 배 나온 늙은이일 뿐 전혀 쳐다볼 만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 사실이 그를 거의 자유롭게 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키 크고 잘생긴, 그러나 배짱은 없는 남자로 하버드 캠퍼스를 거닐며 보냈다. 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학생들은 존경어린 눈빛으로 힐끔거렸고, 여자들 또한 눈길을 주었다. 동료들이 말해주기로, 학과 회의 때 그는 위압적인 존재였다. 그런 모습을 의도했던 터라 그는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이제 그는 콘도를 짓고 있는 부두 한곳을 어슬렁어슬렁 걸으면서, 사방에 물과 사람이 보이는 이곳으로 이사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흘끗 본 뒤 다시 집어넣었다. 딸과 통화하고 싶었다.
어느 아파트 문이 열리더니 한 커플이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 다 그의 또래로 보였는데, 남자는 잭만큼은 아니지만 배가 나왔고 여자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아 하니 결혼한 지 오래된 사이 같았다. “이제 끝났어.” 여자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남자가 뭐라고 대꾸하자 여자가 “아니, 이제 끝났어” 하고 말했다. 그들은 잭을 스쳐지나갔고(그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고), 그는 잠시 뒤 고개를 돌려 커플을 다시 보고는―조금―놀랐다. 부두를 따라 작은 도시를 향해, 여자가 남자의 팔에 팔짱을 낀 채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잭은 부두 끝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쪽, 그리고 저쪽을 돌아보았다. 작고 하얀 파도가 그는 이제야 알아차린 미풍을 타고 밀려왔다. 이곳은 노바스코샤캐나다 동남부에 위치한 주州에서 출항한 페리가 들어오는 곳이었고, 언젠가 그도 벳시와 함께 그 배를 탔었다. 그들은 노바스코샤에서 사흘 밤을 머물렀다. 그는 벳시가 그의 팔에 팔짱을 꼈었는지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아마 꼈을 것이다. 이제 그의 마음에는 자신과 아내가 페리에서 내리는 모습이 담겼다. 아내가 그와 팔짱을 낀 채……
그는 떠나려고 돌아섰다.
“바보 멍청이.”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부두에서 한 소년이 잭 가까이에 있다가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그건 그가 메인주 포틀랜드의 어느 부두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늙은이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는 자신―박사학위를 두 개나 가진 잭 케니슨―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거참.” 소년을 지나쳐 갈 때 그 말도 튀어나왔다. 그는 부두에 있는 벤치 중 빈자리에 앉았다. 전화기를 꺼내 딸에게 전화했다. 딸이 사는 샌프란시스코는 아직 한낮이 아닐 것이다. 딸이 전화를 받자 그는 깜짝 놀랐다.
“아빠?” 딸이 말했다. “괜찮으세요?”
잭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 캐시.” 그가 말했다. “그냥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어.”
“저는 잘 지내요, 아빠.”
“됐다, 그럼 됐어. 그 말 들으니 좋구나.”
잠시 침묵이 흘렀고, 이윽고 캐시가 말했다. “지금 어디 계세요?”
“오. 지금 포틀랜드 부두에 와 있다.”
“거긴 왜요?” 그녀가 물었다.
“그냥 포틀랜드에 와야겠다고 생각했어. 음, 바람이나 좀 쐬려고.” 잭은 눈을 찡그리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캐시가 말했다. “그렇군요.”
“저기 말이다, 캐시.” 잭이 말했다. “내가 형편없는 놈이라는 걸 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나도 내가 형편없는 놈인 걸 안다.”
“아빠,” 그녀가 말했다. “아빠, 왜 그러세요. 저보고 무슨 말을 하라고요?”
“아무 말 안 해도 돼.” 그가 유쾌하게 대답했다. “그 말에 무슨 대답을 하겠니. 하지만 그저 내가 알고 있단 걸 네가 알아줬으면 해서.”
또 한차례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는 더 길었고, 잭은 두려웠다.
딸이 말했다. “아빠가 저를 그렇게 대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일레인 크로프트와 그토록 오래 바람을 피웠기 때문인가요?”
그는 부두에 깔아놓은 널빤지를 내려다보았고, 거칠어진 판자를 밟고 선 자신의 노인용 검은 운동화를 보았다. “둘 다.” 그가 말했다. “아니면 네가 골라도 좋아.”
“오, 아빠.” 캐시가 말했다. “오, 아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아빠를 위해 뭘 어떻게 하면 되죠?”
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할 것 없다, 얘야. 내게 아무것도 해줄 것 없다. 그저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아빠, 우리 외출하려던 참이었어요.”
“그래? 어디 가려고?”
“농산물 시장에요. 오늘이 토요일이잖아요, 토요일에는 늘 같이 농산물 시장에 가거든요.”
“그렇구나.” 잭이 말했다. “나가봐. 걱정 말고. 다시 연락하마. 끊는다.”
그는 딸의 한숨소리를 들은 것 같다. “알겠어요,” 딸이 말했다. “잘 지내세요.”
그럼 이걸로 됐다! 이걸로 됐어.
잭은 벤치에 한참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혹은 한동안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는 아내 벳시를 계속 생각했고, 큰 소리로 울부짖고 싶었다. 그가 아는 것은 이 사실뿐이었다. 자신은 이 모든 일을 당해 마땅하다는 것. 전립선수술을 받아서 속옷에 패드를 대고 있어야 하는 것도 마땅했다. 전립선수술 자체도 마땅했다. 그는 오랫동안 딸―동성애자였다―과의 대화를 피했기에, 딸이 그와의 대화를 피하는 상황 또한 마땅했다. 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편한 감정이 작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하지만 벳시가 죽은 것은 마땅하지 않았다. 죽어 마땅한 사람은 그였고, 벳시가 그렇게 된 것은 마땅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잭은 아내에게 불쑥 분노가 치솟았다. “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는 중얼거렸다.
아내가 죽어가던 당시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녀였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미워.” 그러자 그가 말했다. “당신을 탓하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오, 그만해.” 하지만 그는 진심이었다―어떻게 아내를 탓하겠는가? 탓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것이었다. “당신이 미운 이유는, 나는 죽고 당신은 산다는 거야.”
그가 갈매기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살고 있는 게 아니야, 벳시. 얼마나 지독한 농담이었는가.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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