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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척 아닌 척
조직의 불합리
스폰,
도덕적 해이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완전한 정의를 달성할 수 없고 그것에 이르는 영원한 과정에 있을 뿐이다. 그 끝나지 않을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내 안의 인간과 내 밖의 인간이지, 무슨 조직이 아니다. 그러나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것에만 온몸의 감각이 집중된 탓에 인간의 마음을 느끼는 능력이 퇴화하여 괴물이 되어버린 검사들은 조직을 사랑한다는 핑계를 대며 인간을 향해 오만한 칼날을 찍어 누른다.
배당의 미학과 기술
2020년 4월 초봄, 휴가에서 돌아온 윤석열 총장이 채널에이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유착 의혹 조사를 대검찰청 인권부에 맡겼다. 형사사건을 배당할 때 민감한 사건은 차장검사가 말 잘 듣는 검사에게 손 배당차장검사가 사건을 직접 나눠주는 일을 일컫는 말.을 하거나 속 썩이는 검사에게는 깡치어렵고 복잡하며 해결해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사건을 가리키는 법조계 은어.를 왕창 맡겨 벌 배당을 한다. 윤총장이 채널에이 조사를 대검 인권부에 맡긴 것은 이러한 선별적 배당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한동훈 검사장은 감찰 사건이 개시되면 ‘대감찰청 감찰본부 설치 및 운영 규정’ 제16조에 따라 감찰 협조 의무를 지게 된다. 답변도 꼬박꼬박 제출하고 출석에도 응해야 하며 휴대전화도 제출해야 한다. 불응 행위가 또 다른 감찰 사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권부의 조사는 그런 것이 없다.
2016년 5월 김홍영 검사가 자살했을 때 대검 감찰본부는 직접 조사하지 않고 서울 남부지검에 자체 조사를 맡겼다. 김진모 검사장과 조상철 차장검사는 검사들을 한 명씩 불러서 “이 새끼, 저 새끼 정도가 무슨 욕이냐”, “언론이 과장해서 떠드는 데 부화뇌동하지 말라”라고 했다. 이게 바로 대검이 노린 것이다.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인 김대현 부장검사에 대한 지휘 및 감독의 책임을 추궁당할 처지의 검사장과 차장검사가 어떻게 할지는 뻔하고, 대검이 따로 뭔가를 지시해야 하는 부담도 없으니 말이다. 이 사건은 결국 대검 감찰본부가 감찰을 개시하게 되는데, 그것도 거저 된 것은 아니었다. 김홍영 검사의 부모가 대검찰청과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김 검사의 사법연수원 동기가 기자회견을 열어 대검찰청에 성명서를 제출한 끝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너무나 잔인하지 않은가. 아들의 죽음에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질 듯 아픈 부모가 제대로 애도할 시간도 없이 “우리 아들의 죽음을 밝혀주세요”라면서 사정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해자와 한패인 사람들에게 말이다. 이 일로 김진모 검사장은 검찰총장 경고를 받았는데, 오히려 김대현의 직속 상관인 조상철 차장검사는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한편 분실한 고소장을 간 크게 위조하고 무단결근을 수시로 하고도 금융지주 회장인 아버지의 뒷배로 무탈했던 윤혜령 전 검사를 보자. 윤 전 검사가 부장검사실에서 불려가 사건에 대한 보강 지시를 받은 어느 날이었다. 그는 지적당한 것에 화가 나 부장실을 나오자마자 공판 카드를 내던지고 부장검사가 지시사항을 적어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떼서 버렸다. 보다 못한 부장검사가 징계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그 일로 미움을 받아 그 후 부장 보직을 못 받게 되었다는 풍문이 있다. 인지부서에 가고 싶어 실적에 유독 신경을 쓴 윤 전 검사가 인지 실적을 올리려고 무리한 일도 있었다. 윤 전 검사는 공판에 출석했던 어떤 증인을 불러 위증죄를 조사했다. 그리고 부인을 하는데도 자백을 했다고 허위의 인지 사건 보고서를 작성해 결재를 받았다. 그 피의자가, “내가 자백을 언제 했냐”라고 항의해서 인지는 철회되었다. 윤 전 검사는 너무나 훌륭한 아버지를 둔, 누가 “너그 아버지 머하시노”라고 물을 필요도 없는 검사라서 징계를 받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조희팔 측근과 유진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은 김광준 전 검사의 경우도 있다. 이 사람은 검찰 내부에서 ‘우리 시대의 마지막 검사’라 불렸다. 수사관과 부하 검사들에게 거한 인심을 자주 써서 스폰을 받고 있다는 게 뻔했지만 다들 감사해하며 열심히 얻어먹고만 다녔다. 경찰이 조희팔의 계좌를 추적하던 도중에 김광준의 차명계좌를 확인했고 그제야 부득이 수사 및 감찰이 이루어졌다.
2019년 10월 24일 대검찰청은 그간의 감찰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척하면서, ‘검찰 자체감찰 강화 방안 마련’을 발표한다. 여기서 핵심은 ‘척하면서’다. 검사들에게는 이 ‘척’이 매우 중요하다. 발표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동안 검찰은 감찰 업무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법무부와 감찰 협업을 강화하겠습니다. 검찰 자체 감찰로는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사안에 대해 선제적으로 법무부에 감찰을 요청하는 한편, 감찰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 공유를 확대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따위 발표를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다시 2020년으로 돌아와 보자. 어느 법조 출입 기자가 “어제 M본부 보도 때문에 한동훈 검사장님이 많이 심란하신 것 같아요”라고 하더니 급기야는 “한동훈 검사장님이 아니라는데요”란다. 윤 총장도, 법조 기자들도 한동훈이 아니라고 하면 그냥 아닌 거다. 그저 ‘아아, 이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로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팩트 체크
검찰 내부에서 사건 배당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일반적으로 사건이 접수되면 검사들에게 순차적으로 배당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행정조직도 민원이나 진정은 컴퓨터에 접수된 순서대로 담당자에게 분배한다. 그러나 검찰은 공공연히 사건을 임의로 부서에 손 배당한다. 채널에이의 검언유착 의혹 조사를 일례로 들 수 있다. 감찰 사건인 이 사건은 규정에 의하면 감찰 협조 의무를 진다. 답변과 출석, 휴대전화 제출을 해야 하고 불응하면 또 다른 감찰 사안이 된다. 그런데 인권부에 배당되면서 그 협조 의무가 없어졌다.
사건 무마 지시를 거부하는 골치 아픈 검사에 대한 응징이 바로 사건을 재배당하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 공정성과 적법성을 외치는 검사들이 있지만 상명하복을 거부하는 순간 여러 이유로 보복 조치를 당하는데 불공정한 사건 배당 관습도 그중 하나다. 그러니 조직 내부에서 외치는 성찰의 목소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기인형들
아는 검사 출신이 선거에 출마하거나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걸 보면 ‘검찰에 그나마 갇혀 있던 바이러스가 저기로까지 퍼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초임 여검사를 호텔로 불러내던 검사장도, 부산의 나이트클럽 사장에게서 소개받은 젊고 예쁜 여자를 지역유지에게 빌린 요트에 태워 통영으로 여행 간 추억을 자랑하던 부장검사도 모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중 한 사람은 당선되기까지 했다. 그 부장검사는 아래 검사들에게 이런 신조를 전파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무원은 먹고 해주는 공무원이다. 다음은 먹고 안 해주는 공무원, 그다음이 안 먹고 해주는 공무원. 어, 안 먹고 해주면 안 되지. 사람들 심리란 게, 먹고 안 해주면 그래도 애는 썼구나 하며 고마워하는데, 안 먹고 해주면 고마워할 줄 몰라. 가장 싫어하는 공무원은 당연히 안 먹고 안 해주는 공무원이지.” 스폰받은 자랑에 ‘그거 뇌물죄잖아요’라며 어이없어하는 상대의 얼굴을 눈치챘는지 “야, 공무원의 가장 큰 죄는 재수 없는 죄야”라고 하던 양반. ‘잡초론’도 주장했다. 어디에나 일정량의 잡초는 존재하고 잡초를 다 뽑으려고 하면 더 사달이 난다는 것. 이런 양반들이 “부패와 낡은 정치를 청산하겠다. 쇼하는 정치, 척하는 정치, 으름장 정치를 배척하고 청렴정치, 도덕정치, 평등정치를 강력히 추진해나가겠다”라거나 “유권자의 위임과 신뢰를 가슴에 안고 오로지 지역 발전과 구민의 영광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이번 선거에 임할 것”이라고 출마 포부를 밝히면 발가락 끝이 저릴 만큼 웃기다.
국회의원 출마를 노렸으나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 어느 검사장 출신 인물도 있다. 이 사람은 차장검사 시절 주임검사를 불러다가 기소유예를 하라고 압박하는 자리에서 스폰서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스스럼없이 받았다. “네, 제가 지금 불러서 잘 단도리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이 검사가 주군으로 모시던 사람은 신촌에 있던 백화점을 현대백화점에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저축은행을 인수하려고 기웃거리던 사람이었다. 이들은 45인의 형제가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봐주고 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형제들의 모임’ 소속이었다. 아무튼 이 검사는 검찰의 자기 식구 봐주기로 수사받는 것은 면했으나, 한직으로 가게 되는 둥 눈치를 받으면서도 안 나가도 버텼다. 한창 본인 구명 운동을 하던 도중에는 “검사장까지 오른 사람이 특정인의 하수인 역할을 할 정도로 부패했다면 저를 검사장으로 임명해준 검찰과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특정인의 하수인’이라……. 자신의 정체성을 아주 적확한 단어로 표현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한 검찰청에서 같은 시기의 검사장, 차장검사, 부장검사가 모두 이 모양이었으니 평검사는 어땠을까. 검사 2년 차이던 연수원 동기가 수사 목적으로 이용하는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해서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의 주소를 알아내 “내가 잘못했다. 돌아와다오”라는 편지를 보냈다. 심지어 여자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는데 말이다. 그 얘기를 하면서 동기들에게 자신의 순정을 호소하는데, 대단히 역겨운 경험이었다. 이 사람도 계속 정치판을 기웃거리고 있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의 것이 일어나는 곳. 그렇기에 순천지청 소속 부부장검사 성매매 적발 건 따위는 놀랍지도 않다.
나는 이런 사람들은 ‘공기인형’이라 생각한다. 안은 텅텅 비고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면서 자신을 꼿꼿이 세워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권력이라 여겨 그 권력으로 펌프질하려는 처지. 의로움을 말하고 행하다가 상처받아 안으로부터 생각이 단단히 여문 사람들, 배척당해서 외로운 처지에 떨어져 봤기 때문에 사람들을 가장 사랑할 수 있게 된 그런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너무 큰 열망일까.
팩트 체크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고 도덕적 해이에 무감각한 검사들이 많다. “공무원의 가장 큰 죄는 재수 없는 죄”라는 부장검사의 말은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정치계를 기웃거리고 당선이 되기도 한다. 스폰서에게 충성하다 들켜도, 성매매하다 들켜도, 성추행이 발각되어도 검찰의 자기 식구 봐주기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면 분명히 문제가 많은 조직이다. 이렇게 되면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지 않고 힘없고 약한 자에게만 엄격한 것으로 전락한다. 소신 없고 철학 없는 검사들은 오직 권력을 향해 나부끼는 공기인형과 다름없다. 그들을 향해 개탄의 시선을 보내면서도 저자는 검찰에 남아 의로움을 말하고 행하다가 조직의 배척을 받은 몇몇 검사에게 희망을 건다. 그들이 끝까지 살아남아서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많은 사람이 염원하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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