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진 곳
집을 옮기고 첫날 밤이었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휘이휘이 소리를 내며 불고 있었고, 창문이 부들부들 떨 때마다 방은 냉기로 차올랐다. 그릇에 수돗물을 받아 두면 다음 날 아침 얼어붙어 있을 것 같은 강추위였다. 나와 여동생은 불을 끄고 각자 이불을 두 채씩 포개어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자리에 누웠다. 그때 웅크린 몸으로 이빨을 덜덜거리던 여동생이 갑자기 소리쳤다.
“아, 씨발 좆나 춥네. 내일 뽁뽁이 사다 창문이나 덮자.”
이불에 반쯤 묻혀 탁해진 목소리 때문인지 동생이 방금 한 게 욕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쁘게 짐을 정리하느라 보일러에 기름 넣는 걸 깜빡했더니 코딱지만 한 방에 닥친 재앙이었다.
“기름보일러라 난방비 많이 들 텐데 그냥 전기장판 살까?”
“어쩌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을까? 난 저렇게 창호지로 된 방문은 첨 봐.”
“나도.”
방은 전에 살던 원룸을 딱 반으로 접어놓은 크기였다. 급하게 보증금을 빼야 했고, 역시나 반토막 난 보증금에 맞추어 방을 구하다 보니 동생 말대로 ‘여기까지’ 굴러오게 된 것이었다. 추운 날씨에 짐을 옮기는 과정도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다급하게 진행되었다. 방을 빼야 하는 날짜가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다. 날짜를 내일로 착각하는 바람에 우리가 살던 방에 새로운 세입자가 짐을 들여놓는 일과 우리의 짐을 빼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점심을 먹다 말고 당장 짐을 옮겨야 해서 밥통이 있던 자리에 곧바로 토스터가 놓였고, 운동화 네 켤레뿐 이라 자리가 남아돌던 신발장은 하이힐과 부츠로 가득 찼다. 우리 짐은 오도 가도 못한 채 시멘트 바닥에 반나절 동안 까발려진 채로 놓여 있어야 했다. 정말 엄동설한에 길바닥에 나앉은 사람이 된 것이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누추한 우리 살림을 자주 힐끔거리는 데다 눈까지 내려서 짐 위에 보자기와 수건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덮어 두어야 했다. 포장이사를 할 만큼 물건이 많은 게 아니라서 작은 용달차를 렌트한 뒤 면허증이 있는 대학 동기를 불러 운전을 부탁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이 어찌나 많은지 용달차 안에서 우리의 몸은 서로 여러 번 부딪쳤고, 자주 출렁였다. 동생은 안쪽 볼과 혀를 동시에 깨물어서 피까지 났다. 짐을 대충 옮긴 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저녁 먹을 사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음식을 배달시키기엔 후미지고 위치를 설명하기도 어려운 곳이었는데 주인집의 도움으로 겨우 보쌈과 군만두를 시켜 먹을 수 있었다.
그때 무언가를 걷어차듯 발을 휘두르며 동생이 다시 소리쳤다.
“우리한테 사기 친 그 개새끼를 어떻게 잡아 죽일까?”
나는 뭉개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죽여야지. 언젠가 꼭 돈도 돌려받고.”
입도 얼어붙은 듯 우리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각자의 이불 속에서 자기 숨으로 덥힌 공기로 추위를 조금씩 누그러뜨리며 우리는 천천히 잠이 들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우리 자매에게 적응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언제나 방 한 칸짜리 집에서 살아온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동안 살던 방에는 배려하듯 화장실이 공간 안에 덧붙어 있었다. 그런데 여긴 화장실이 멀리 떨어진 곳에, 딴청 부리듯 다른 공간에 놓여 있었다. 그러니까 화장실에 가려면 제일 먼저 휴지를 챙긴 뒤, 방문을 열고 나가 마루에 앉아서 신발을 신고 긴 마당을 지나야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공동 화장실이라 볼일이 생길 때마다 집을 옮겼다는 사실을 실감 나게 깨닫도록 해 주었다. 하루에 여섯 번 화장실을 사용하면 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가난과 그것이 몰고 온 온갖 불편함을 여섯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날도 추워서 화장실에 가는 건 매번 우리에게 큰 결심이 필요한 일까지 되어 있었다. 동생은 되도록 오래 참거나, 자주 가는 일이 안 생기도록 물을 적게 마셨다. 그러다 병난다고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여름이 되면 좀 나아지겠지만, 여름까지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살기에 좋은 환경이 아닌 걸 주인아주머니도 아는지 방을 계약하던 날 남이 들을까 봐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 말고, 조금만 살다 가.”
집주인은 60대 부부였다. 그들은 이 집을 네모집이라 불렀다. 집 구조가 ‘ㅁ’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인데, 세를 놓지 않고 여섯 식구가 네모집 전체를 쓰면서 살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남부러울 게 없어서 그때는 아흔아홉 칸짜리 집에 사는 것 같았다던 아주머니는 몰락한 가문의 여주인처럼 처량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나는 그 한숨에 그다지 공감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 봤자 세입자에게 그들은 집주인이고, 월세가 하루만 늦어도 방문을 두드릴 것이므로. 그렇게 떵떵거리며 살다, 둘째 아들놈이 사업을 크게 말아먹어서 자식 덕 보고 살기는 애초에 글렀다고 판단한 내외는 자기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방을 개보수했다. 아들놈이 쫓아와 있는 돈 다 내놓으라고 할까 봐 서둘러 집을 고치는 데 써 버린 것이다.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세탁실을 만들어 코인 드럼세탁기를 세 대 들여놓고, 부엌이 없는 방에는 물을 쓸 수 있게 수도관을 연결하고 보일러도 따로 놓았다. 네모집에는 주인 내외가 기거하는 방을 빼면 총 아홉 개의 방이 있었고, 부엌이 딸린 방은 방세가 조금 더 비쌌다. 방마다 번호가 붙어 있는데 우리가 사는 곳은 9번 방으로 네모집에서 모서리에 해당하는 끝방이었다. 아주머니는 그러면서 내년 봄에는 문짝을 교체할 거라고 했다. 왠지 작년에도 새로운 세입자한테 똑같은 말을 했을 것 같았다.
나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손에 들고 고무신 변기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오늘의 가난에 대해 두 번째 생각하는 중이었다. 공동 화장실은 엉덩이를 걸치고 사용해야 하는 변기보다 고무신 형태의 구식 변기가 위생적이었다. 단점은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가 저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리가 저려오기 전에 서둘러 용무를 끝낸 뒤 화장지를 변기에 버리고 발로 레버를 눌렀다. 오늘의 두 번째 가난이 소리를 내며 물과 함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때 누군가 화장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되도록 다른 세입자와 마주치지 않고 살아 보려 애썼는데 네모집의 구조상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중앙 마당. 여긴 원룸과는 다른 것이다. 화장실을 나가자 내 또래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자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 여자는 치약과 비누 거품이 하얗게 튄 거울을 통해 나를 쳐다보며 인사했다. 나도 애초의 다짐을 잊고 얼떨결에 얼룩덜룩한 거울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네모집에 세 들어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정을 묻지 않아도 나와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뜻이므로 이 사람도 어딘가에서 밀려왔을 것이다. 힘의 원천이 무엇이든, 그 힘이 없으면 사람은 외진 데로 밀려나는 것이었다. 바깥으로, 중심에서 먼 변두리로, 어둡고 냄새나는 구석 자리로.
“지난주에 9번 방으로 이사 오셨죠?”
“아, 네.”
“전 3번 방이에요.”
“네.”
“9번 방이 웃풍은 세도 재수가 좋은 방이에요.”
“네?”
“그 방에 살던 사람들 다 잘돼서 나갔어요.”
“여기 오래 사셨나 봐요.”
”2년 됐어요. 사는 데 좀 불편하긴 해도 방세가 싸니까요.”
나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다 씻은 여자는 자기 옷에 물기를 닦더니 화장지 좀 빌려 달라고 했다. 나한테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건 것도 화장지를 얻어 쓰기 위한 꿍꿍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엉거주춤 두루마리 화장지를 건네자 여자는 손에 한 열 바퀴쯤 돌돌 감아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두루마리는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속으로 헤픈 여자라고 생각하며 화장실을 나가는 내 등 뒤로 여자의 발랄한 목소리가 닿았다.
“자전거 탈 줄 알아요? 알면 대문 앞에 세워진 자전거 언제든 필요할 때 써요. 여긴 컵라면 하나 사러 편의점 가는 길도 멀잖아요. 그리고 밤에는 되도록 혼자 다니지 말고요.”
헤프지만 공짜를 좋아하는 여자는 아닌 것 같았다.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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