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바로 옆에 있는 죽음
Montaigne’s essai
아이스킬로스는 공중을 나는 독수리 발에서 떨어진 거북에 맞아서 죽었다. 황제 한 분은 머리를 빗다가 빗에 찔려서 죽었다. 아에밀리우스 레피두스는 자기 집 문지방에 발이 부딪혀 죽었고, 아우피디우스는 회의실에 들어가다가 문에 부딪혀서 죽었으며, 판정관 코르넬리우스 갈루스는 여자의 허벅다리 사이에서 죽었다. 내 형제 가운데 하나인 생 마르탱 대위는 나이 23세에 이미 용맹한 무인으로 알려졌다. 그는 공을 받다가 오른쪽 귀 조금 위를 맞았는데, 출혈이 있거나 다친 흔적도 없었다. 그는 앉지도 쉬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공에 맞은 것이 원인이 되어 대여섯 시간 뒤에 졸도하여 죽었다.
사람들은 죽음을 말하기만 해도 놀라며 악마의 이름을 들은 듯 성호를 긋는다.
사실 우리가 죽음에서 주로 두려워하는 것은 습관적으로 죽음에 앞서 오는 고통이다. 거룩한 한 교부敎父의 말씀을 믿는다면, “죽음에 뒤따르는 것이 없다면, 죽음은 악이 아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그러나 더 진실하게 말하면, 그 앞에 가는 것도 그 뒤에 오는 것도 죽음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잘못 변명한다. 그리고 죽음을 상상하는 조바심 때문에 고통을 참을 수 없게 되며, 고통이 우리를 죽음으로 위협하기 때문에 그것을 몇 배나 심하게 느낀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죽음이라는 것을 대비할 수 있는가? 익사, 낙사, 질식사, 압사, 소사 등을 제외하고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형태로 어이없고 허망하게 맞는 죽음을 보면 과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질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또한 가능한 얘기다. 육체적인 대비가 아니라 마음의 대비로 보면.
아버지는 내 나이 20살에 돌아가셨다. 정확히 10년 뒤인 30살에는 엄마마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다발성골수종, 엄마는 췌장암으로 두 분 모두 일명 ‘나쁜 암’으로 불리는 병으로 세상을 뜨셨다. 엄마까지 그리되시고 나서부터 주변에서는 나에 대한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걱정하는 진심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 걱정의 이면에는 나 또한 언젠가 반드시 암에 걸릴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있는 듯했다. ‘건강관리 잘하라’는 말은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인사법 같았다.
물론 그들의 걱정만큼이나 나도 내 건강에 자신이 없어졌다. 현대인 중 그 누구도 성인병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엄마의 죽음을 기점으로 내 유전자는 암이 새겨진 유전자로 분류된 것 같았다. 두 분의 병이 유전되는 암이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건강 염려증 환자처럼 살았다. 매년 잊지 않고 정기검진을 받고 어딘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다 싶으면 바로 병원에 달려갔다. 병원 문턱이 내 집 안방 문턱보다 낮다 싶을 만큼 드나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4년 즈음이 지난 지금까지 별 탈이 없었던 것을 보면 내 건강의 문제는 육체가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게 분명했다.
‘조금 마음을 놓아도 되지 않을까? 오랫동안 긴장하며 사는 것이 오히려 나쁜 것 아닐까?’
나는 내 삶에 조금의 느슨함을 허용할 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바람에 불과했을 뿐.
“아가씨. 오빠 빨리 큰 병원에 데려가야 한대요.”
다급한 목소리로 올케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내 유일한 피붙이인 오빠가 큰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얄궂게도 그 소식을 들은 날은 3년 전 엄마의 11주기를 지낸 바로 다음 날이었다.
오빠의 일은 부모님의 일과는 또 다른 충격이었다. 오빠는 당연히 나처럼 건강에 신경 쓰며 살던 사람이었고 심지어 오빠는 의사다. 지금까지 우리의 ‘불량 유전자’가 심증이었다면 오빠의 발병은 확증이었다. 오빠에게 먼저 닥쳤을 뿐 머지않아 내게도 닥칠 일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오빠만은 살려야 한다는 강한 일념과, 그와 반대로 내 삶의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모순의 감정을 지닌 채 지내야 했다.
암 환자가 자그마치 174만 명, 이 중 절반 이상이 5년 이상 생존율을 보인다는 희망의 시대이니 마음을 놓아도 될 것처럼 보이긴 한다. 내 건강 염려증이 호들갑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주변을 둘러보라. 여전히 한 집 걸러 한 집으로 환자가 있지 않나? 암뿐 아니라 위험하다고 알려진 모든 성인병 인구를 합치면 어느 집이나 성한 사람보다 아픈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죽음을 늘 남의 일처럼 여기며 산다.
물론 죽음을 자주 떠올리며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만 해도 두렵고 공포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곧잘 죽음을 삶의 끝이라는 생각 외에 ‘신의 벌’이라고도 생각하는 것 같다. 죄에 대한 대가로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말하기만 해도 놀라며 악마의 이름을 들은 듯 성호를 긋는다.”는 몽테뉴의 말처럼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 중 일부는 자신의 병을 밝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대체 내가 무슨 그리 큰 죄를 지었냐며 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일찍 유명을 달리한 사람의 가족에게 “착한 사람을 왜 이렇게 일찍 데려가셨냐.”는 이상한 논리를 위로랍시고 건네는 사람도 있다.
죽음을 뭐라고 정의하든 그 어떤 생명도 죽음을 피할 방법은 없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은 저승을 갔다 와 본 사람이 지었을까? 이승도 살아보고 저승도 살아보니 과연 이승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삶은 좋은 것이고 죽음은 나쁜 것이라는 등식을 진리인 양 받아들이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다. 이승과 저승을 비교할 재간도 없다. 앞서 내가 건강염려증 환자처럼 살았다는 말은 죽음이 두려워 그것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두려운 것은 질병이 주는 육체의 고통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한순간에 즉사한다면 모를까, 부모님을 보면서 느낀 게 있다. 긴 세월 투병하며 겪는 심신의 피로 탓에 투병 전 내 모습을 잃는 게 끔찍하게 싫다는 것. 육체의 고통은 육체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정신마저 무너뜨린다. 그 모습을 사람들은 ‘정을 떼는 과정’으로 이해시키곤 했다. 그렇게 생명이 소멸해가는 쓸쓸하고도 허무한 과정을 나는 원치 않는다. 더욱이 이미 허물어진 영혼과 육체를 약물의 힘으로 끌고 가는 의미 없고도 잔인한 끝맺음은 구차하기까지 해서 나는 온전한 정신으로 내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면 그 어떤 연명도 거부하리라 결심했었다.
나는 늘 내 죽음에 관해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하나뿐인 혈육마저 아파하는 것을 보면서 도저히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 방법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에는 뇌수막염으로, 커서는 어떤 사건을 당하면서 나는 실제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 일들은 나의 의식에 ‘죽음’을 바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내 머리와 심장에 ‘죽음’이 아로새겨진 건 가족들이 차례차례 병을 얻으면서부터다. 죽음이 너무나 삶 깊숙이 그리고 가까이 함께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면서 나는 저절로 알게 됐다.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나에게는 언제쯤 어떤 죽음이 닥칠 것인지 미리 설정되어 있다고. 그리고 오빠의 일은 나의 예측이 예측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선명히 알려주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내 죽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만큼 내 삶의 모습도 확실히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삶은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해 비친다. 그 거울에 반사된 모습이 아니라면 내가 보는 내 삶은 진짜가 아닌 것이다.
수많은 ‘버킷리스트’ 소재의 영화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진짜 자신이 살고 싶어 했던 삶을 그제야 직면하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은 모두 가짜를 내던지고 진짜를 향해 나아간다. 출발선으로부터의 긴 여정 동안 무시하고 외면했던 진짜가 왜 삶의 종착지 앞에 서야만 제대로 보이는 걸까. 출발선 쪽으로 몸을 돌려 마지막 스퍼트를 낸들 두 발은 종착지로 갈 뿐인데 말이다.
부모님과의 이별은 종착지가 어딘지 볼 수 있게 해주었지만 내 진정한 페이스메이커는 오빠였다. 열심히 달린다고 달렸지만 오빠 일이 터지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속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이번에는 제 속도를 잃지 않으면서 목적지까지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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