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에서 생긴 일
안침진 뒤울안
은방울꽃대가 낭창낭창 휘어진다
오종종 매달린 꽃망울이 무거워 휘는 줄 알았다
온몸 둥글게 굽혀 말았다가
발볌발볌 내딛는 연둣빛 걸음마다
우듬지
휘어지고 또 휘어졌다
땅바닥까지 가닿는 휘어짐에 애벌레 튕겨지듯 근두박질치는
순간 은방울꽃대
피잉, 튀어 오르며 꽃망울을 툭 터뜨린다
은방울 바르르 떨며 곧추서는 반동의 꽃봉오리 향기가
화안하니 앞마당 복판까지 번져 간다
저녁 목소리
고매古梅향 걸터앉은 툇마루
호듯호듯 끓는 볕살이 좋다 치자
빗밑이 무거운 연둣빛 파초 잎
빗방울 긋는 소리도 좋고,
누렇게 욱은 솔이파리 가만 뒤흔드는 오랍들의
바람 소리도 좋다 치자
한껏 달빛 내비치는 대밭
나직이 서걱대는 이파리 소리도 좋고
갓밝이 무렵이나
어슬막 고샅 탱자울에서 재갈재갈거리는 오목눈이
참새 소리도 좋다 치자
제아무리 좋다 쳐도
풀어놓은 닭들을 구구구 불러 모아 먹이를 주는,
주린 집개가 허천뱅이별을 바라보며
눈동자 빛내는
그맘때를 훌쩍 뛰어넘어 실컷 놀던 나한테 하얗게
새하얗게 밥 짓는 연기 나지막이 퍼져 오듯
밥 먹으라, 데리러 오는 저녁 목소리가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곁
폐가에서 주워 온 아랫목구들장을 빈 마당 디딤돌로 갖다 놓았더니,
곁이 생겼다
바람에 실려 온 앉은뱅이민들레나 땅꼬마채송화가 꽃댈 올리고 만판 피기도 할라치면
돌 옆에, 라고
자늑자늑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불기운 까맣게 식은 옆구리에 곁이 생겨 사방팔방 다 환한 걸 보면
문득 사는 게 별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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