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란 무엇인가
가끔 제가 강의에서 만나는 많은 이는 수학의 모든 증명이나 기초, 근본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갈증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수학의 근본을 이해하고 싶다. 아주 좋은 포부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근본을 이해해야만 수학을 이해한다.’ 그것은 제 생각으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기초를 잘 모르더라도, 정리나 공식을 계속 사용하고 여러 상황에 어떻게 개입되는지 과정을 살펴보면서 점차 이해가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근본이라는 것이 아예 없을 수도 있거든요. - 「세미나를 시작하며」 중에서
이 수학 세미나를 시작하기 전에 참가자 여러분께 숙제를 하나 보내드렸습니다. 수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나름의 대답을 들려달라는 것이었죠. 그중 “수학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라는 좋은 답도 있었습니다. “우주는 수학의 언어로 쓰여졌다”고 한 갈릴레오의 명언이 바로 연상됩니다. 과학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잃어버렸던 수학에 대한 관심을 되찾기 시작했다니 아주 좋은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조금 더 파고들 관점 하나는 ‘수학은 언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문은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언어를 사용해서 다루는 대상은 서로 다를 것입니다. ‘수학이 언어’라고 했을 때 ‘언어일 뿐’이라는 뜻인지, 다른 의미가 있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군요.
“수학은 창의적 사고 활동이다”라는 답도 있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관점인 것 같은데 “창의적 사고 활동”이라는 표현은 수학 말고도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지 않나요?
보통 우리는 무언가를 주장할 때 체계적인 논리를 전개하기보다는 하나의 입장을 정해놓고 유리한 증거만 나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은 현상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나하나 탐구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창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학은 상당히 여러 가지 주제를 체계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방법론과 언어를 제시한다. 그런 말씀이시지요? 하지만 수학에서는 일종의 룰이 완전하게 정해져 있고 답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창의성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나요? 언젠가 들었던 과학과 공학의 차이에 대한 의견이 생각납니다. 공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학이 과학보다 더 창의적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과학은 근본적으로 주어진 세상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많은 반면, 공학은 새로운 것을 항상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럴싸하지 않나요? 사실 수학도 그런 의미에서 과학적인 면과 공학적인 면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학을 같이 공부하면서 이 두가지 측면이 엮여 있는 수학의 실체를 주의 깊게 관찰하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의 답변도 앞으로 전개할 이야기에서 여러 번 언급할 계기가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수학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관념이 각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계속 생각하면서 인사이트를 공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간단한 수학 활동으로 시작해봅시다
“수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그 전에 잠깐 ‘수학’ 자체를 해보겠습니다. 간단한 기하 정리 하나를 살펴봅시다. ‘지오지브라geogebra’라는 유용한 수학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그림을 그려보려고 합니다. 먼저 사각형 하나를 아무렇게나 그립니다.□ABCD 그리고 각 변의 중점을 표시해봅시다. 그 중점을 변 네 개로 이어볼 겁니다.□EFGH
사각형을 아무렇게나 그렸는데 중점을 이으니까 무슨 모양이 생기지요?
평행사변형처럼 보입니다.
그런 것 같지요? 그렇다면 처음 그린 바깥 사각형이 어떤 특별한 성질을 가졌을까요? 이 가능성을 타진해보기 위해서 사각형의 꼭짓점들을 옮겨보겠습니다.
아무렇게나 바꿔도 가운데 생기는 도형은 평행사변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바리뇽의 정리Varignon’s theorem’라고 합니다. 마치 태곳적부터 상식이었을 것 같지만,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바리뇽Pierre Varignon은 17세기 후반 사람으로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정리입니다. 잠깐 증명을 살펴볼까요? 여기서 ‘증명하자’는 말은 그저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알아보자는 뜻입니다.
물론 제가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여러분이 직접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학습법입니다. 지금은 이왕 모였으니까 함께 탐구하도록 하지요. 강력한 힌트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처음 사각형의 대각선을 잇는 변을 하나 더 그리는 것입니다. 무언가 명료한 패턴이 하나 나타나지 않나요?
닮은꼴 도형이 나타났습니다.
닮은꼴이 보이지요? 닮은꼴의 삼각형이 눈에 보일 겁니다. 어느 삼각형일까요? 예를 들면 삼각형 ABC와 EBF가 닮은꼴이 되겠지요. E, F 두 점이 중점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로 비율 BA:BE와 BC:BF가 2:1로 같고, 변들이 끼고 있는 점 B에서의 각도가 같으니까 닮은꼴입니다. 그래서 변 AC와 변 EF는 평행해야 합니다. 이해가 가는지요?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논법이 앞으로도 종종 나올 예정이니까 조금이라도 의아하면 꼭 질문을 해주십시오. 이제 삼각형 ADC와 HDG가 닮은꼴인 것도 똑같이 확인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AC와 HG도 평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보조변 AC와의 비교를 통해 EF와 HG가 평행하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착안은 기초 수학부터 첨단 연구까지 참 많이 등장합니다. 두 개체만으로는 직접 비교하기 어려울 때 이를 연결시켜주는 세 번째 개체를 고안하는 증명법입니다.
그런 증명이 항상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떠올려서 스스로 발견해야 하잖아요?
물론 이런 사고법은 제게도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알고 보면 간단한 길이 있는데도 찾기가 상당히 어려운 경우가 많죠. 길을 찾는 과정에서 일종의 창의성이 필요하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법의 좋은 면은 한번 방법론을 습득하면 이를 약간씩 변형·반복하여 다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두 변 HE와 GF가 평행하다는 건 어떻게 보이면 될까요? 변 BD를 하나 드리면 되겠지요. 여기서부터의 논리는 앞과 똑같으니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왜 항상 평행사변형이 생기는지 이해가 되는지요? 이는 증명이 간단하면서도 상당히 재미있는 정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증명한 정리가 무엇이지요?
아주 예리한 지적입니다. 제가 자꾸 ‘정리, 정리’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리를 이야기하는지 직관적으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겁니다.
사실 수학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항상 그렇습니다. 현상의 발견, 다양한 경우의 탐구, 직관적인 이해, 여러 종류의 증명, 명확한 서술을 계속 거듭하면서 이해를 증진시켜갑니다. 그런데 질문이 나왔으니 이제 정확한 명제를 써보지요.
정리(바리뇽): 사각형 네 변의 중점은 평행사변형의 네 꼭짓점을 이룬다.
이는 간단하면서도 수학적 사고의 많은 면을 내포하는 정리입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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