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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공간에 대한 상이한 감각 | 추지현
위기 대응의 ‘노멀’
2020년 1월에 코로나19의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 어느덧 4개월이 흘렀다. 나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독립된 근무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 약국 앞에 줄을 서지 않고도 마스크는 충분했다. 손톱 밑까지 30초 이상 씻으라는 화장실스티커 앞에서는 주변을 힐끔거리며 시늉을 했다. 행여 동선이 공개되면 어떤 비난이 이어질지 상상하고 수다를 떨며 친구들과 식당을 찾았다. 떨어진 휘발유 가격이 내심 반가웠고, 월급은 어김없이 입금되고 있다. 내가 경험한 일상의 변화란 온라인 강의와 회의를 준비하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하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는 ‘언택트’Untact에 국한된 셈이다.
그럭저럭 나의 일상이 지속되는 동안 한국에서만 수백 명이 죽었다. 감염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나와 달리, 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일터에 나가야만 하는 이들, 일자리를 뺏기고 생계조차 힘들어진 이들, 직장에서의 경력 구축을 포기한 채 휴직을 신청하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이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나 늘 일상을 감시하던 남편과 더 오랜 시간 집에 함께 있어야 하는 상황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었다. 늘어난 인터넷 주문과 배달, 상담 요청에 택배기사가 과로사하고, 콜센터에서는 대규모 감염이 일어났다. 강제 연차나 무급휴가, 임금 삭감 등을 강요받거나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었으며, 택시 및 대리운전, 일용직 노동, 육아 및 가사도우미 등 일감을 잃은 이들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요청으로 삶의 조건이 불안정해졌다. 애당초 고시원, 쪽방촌 등 재택이 방역을 담보하지 못하는 곳에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개발이 중단되어 살던 집을 당장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이들, 그 와중에도 지속된 강제집행에 시위조차 하지 못하게 된 이들이 한 세상에 공존한다.
이와 같이 코로나19의 다기한 영향, 몸들이 위치한 공간의 차이를 목도하고 있는 만큼 그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해온 ‘노멀’Normal이 무엇이었는지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그런데 세상이 코로나19 전과 후로 구획될 것이라는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일상과 감각의 변화가 꽤나 명확하다고 진단하는 듯하다. 한편에서는 코로나19의 경험을 통해 경쟁과 성장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착각 속에 살아온 지난날을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팬데믹의 경제 효과를 예측하며 ‘뉴노멀’New Normal로 미래 산업을 구상하기에 바쁘다. 또한 일국 수준을 넘어선 연대가 필요하니 국적, 인종, 민족 등을 이유로 한 차별과 혐오를 멈추라 말한다. 한국인의 위기 대응과 기술 개발의 역량을 자부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런 모순된 모습들은 코로나19의 대유행 상태가 사람들에게 도대체 어떠한 경험 ‘들’이었는지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매번의 인간적 위기를 경험할 때마다 이러한 질문은 제쳐두고 현실에 적응할 방안을 모색하며 ‘뉴노멀’을 이야기해온 것이야말로 가장 분명한 ‘노멀’인 것 같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 즉각적 대응은 중요해진다. 원인을 파악한다고 해법이 모두 마련되는 것도 아니니 인간 활동을 억제해 감염률을 낮추는 데 우선 집중했다. 정작 이 바이러스 유전체가 어떻게 등장 가능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위기 대응과 미래 혁신의 발목을 잡는 배부른 일로 여기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등장했다는 것은 알지만 왜 하필 그 지역이 문제가 될 수 있었는지는 묻지 않은 채 박쥐와 중국인을 탓하고 있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진득한 학자들이 사스, 메르스,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 등장의 원인을 분석하며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삶의 방식에 대해 경고해왔다. 신종 바이러스는 공업화된 방식의 식량 생산과 축산업, 개간을 통한 산림 파괴, 이 과정을 독점하는 다국적 기업의 수익 추구가 야생 동물의 서식지 변화, 야생 동물들과 가축과 사람 사이의 접촉 기회 증가, 가축들의 취약성 강화를 추동하면서 확산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을 숙주로 삼기 시작한 것은 생산성 증대를 위한 자본주의의 성장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다.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호텔, 항공사, 카페, 동물원 등이 문을 닫으면서 수천 리터의 우유가 버려지고 사육되던 동물들은 다른 동물의 먹이로 도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유람선이 멈춘 강에 사라졌던 백조가 나타나고, 이동금지령으로 인적이 드물어진 도심에 사슴과 얼룩말, 조랑말이 출몰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코로나19의 영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로만 읽히는 것 같다. 그간 인간이 대량 생산과 관람을 위해 동물을 사육하고 그들의 서식지를 점령하면서 살아왔다는 것, 이러한 상품화 과정이 또한 돈이 없어 우유를 사 먹지 못하고 동물원에 가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들어왔다는 것과 무관한 듯 말이다. 즉, 새로운 정치와 경제 질서의 재편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은 커진 듯 보이지만 거기에는 정작 수많은 생물종과 땅, 그리고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초국적 협력과 연대를 요청하되 누구와 어떤 연대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인도주의적’ 보건과 의료 협력, 감염률을 낮추는 것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뉴노멀’이 도대체 누구의 무엇을 위한 언어로 사용되고 있는지 묻게 되는 이유다.
이미 오랜, 돌봄이라는 ‘노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뉴노멀’의 중심에는 드라이브스루, 인터넷 쇼핑, 화상회의와 재택근무 등 ‘언택트’가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정확히는 몸의 물리적 접촉을 최소화하라는 요청과 함께 새로운 경험들이 시작됐다. 학생들의 재택 학습, 장애인 및 노약자 등을 위한 재택 봉사,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되 방역에 동참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재택 연주, 재택 파티, 재택 노래방 등 비대면의 실천은 곧 재택을 통한 개별화된 실천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살아오던 방식을 애써 변경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재택’을 수행할 수 있는 이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재택 상황에서 노래와 놀이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유튜브, 게임 상품과 기기, 넷플릭스 등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그럭저럭 적응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포르노 허브 사이트의 접속 트래픽도 급증했다.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위생 가운을 입은 상태에서 여성에 대한 섹스 역량을 보여주는 영상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카테고리로 자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택’은 쉽지 않은 과업이기도 했다. 만개한 꽃을 갈아엎고 공원 출입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산책과 상춘의 욕구는 컸다. 이렇게도 학교를 좋아했던가 싶게 아이들을 등교를 기다렸고 줄어든 활동량에 살이 찌거나 밥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대학의 온라인 수업이 그 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강의실에서 서로 나눈 말과 표정, 숨소리, 쉬는 시간의 푸념과 수다가 동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 이상의 것을 주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적 관계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이나 그 관계 안에 존재했던 ‘노멀’에 대한 재평가는 코로나 이후 재편될 새로운 경제 질서에서 생산 동력이 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듯 ‘뉴노멀’로 상정되지도 않는다. 왜 미래 정책을 구상하는 이들은 그간의 ‘노멀을’ 이해하고 성찰하기보다 ‘뉴노멀’을 새로이 발굴하고 그것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기에 급급한 것일까? 어떠한 가치들이 여전히 평가절하되고 ‘노멀’로 이야기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언택트’를 ‘뉴노멀’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방역이 강화된 상황에서 의료진, 병원의 청소 노동자, 환자의 이송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 요양 시설의 간병인, 어린이집 보육교사나 학교의 돌봄 전담사 등에게 비대면 노동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위기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방역을 위해 기꺼이 나선 이들을 ‘영웅’이라 칭하며 감동하지만 그 영웅에 자원봉사자와 의사, 간호사는 있을지언정 누군가의 똥오줌을 받아내는 간병인, 청소 노동자, 가사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이들은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의 돌봄노동을 미덕이라 칭송하되 보상을 주지는 않는다. 이는 코로나19가 초래한 상황이 돌봄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었을지언정 그 가치를 재평가하는 일로 나아가지는 못했음을 의미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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