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일
후터분하다. 후터분하다. 그저께 즈음 제법 큰비가 내려 좀 선선하더니 오늘은 맑게 개어 습기를 머금은 더위를 참아내기 힘들다. 영남과 호남에는 가뭄이 심하여 논밭이 갈라 터지고 있다 한다.
아버지가 영호남에 기우제를 지내도록 하교下敎하고 기우제에 쓰일 향까지 내려보냈다. 이런 날씨에 뒤주에 갇혔으니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고 갑갑하기 그지없다. 땀에 섞여 피도 흐른다. 휘령전徽寧殿 마당에서 이마를 바닥에 짓찧으며 아버지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이제는 아버지 말씀을 잘 듣겠다고 애원하지 않았던가.
냄새도 고약하다. 뒤주 안을 얼른 닦아낸 것 같지만 묵은쌀 냄새, 가마니 짚 냄새, 진한 나무 냄새, 게다가 쥐똥 냄새까지 섞여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어딘가 틈새로 공기는 들어오는지 숨은 근근이 쉴 만하다. 나는 뒤주 벽면에 기대면서 다리를 뻗어보았으나 무릎이 꺾이고 만다. 누운 자세인지 앉은 자세인지 분간이 안 된다. 아버지는 뒤주에 웅크리고 있는 나의 자세와 옷차림까지도 지적할 만한 사람이다.
지난해 십이월 이십이일에 아들 이산의 혼례를 앞두고 며느리를 보러 아버지가 기거하는 경희궁으로 갔다. 아버지가 내 옷차림을 보더니 대뜸 망건줄을 끼우는 관자를 잘못 달고 왔다고 호통쳤다. 세자가 착용하는 무늬 없는 도리옥관자를 달지 않고 정삼품이 쓰는 무늬 있는 통정옥관자를 달고 왔다고.
사현합思賢閤에서 마주친 아버지가 망건 바로 밑 양쪽 귓바퀴 위에 달린 동그란 옥관자까지 여겨볼 줄은 미처 몰랐다. 하긴 통정옥관자가 조금 크긴 해서 아버지의 매서운 눈을 비켜 가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도리옥관자를 찾아 달려고 했으나 어지럽게 옷을 입는 나의 못된 버릇 때문에 방안이 너무 흩뜨러져 있어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망건도 여러 번 바꾸어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날 관자 하나 잘못 달았다고 셋 중 한 명을 뽑는 삼간택도 보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쫓겨 덕성합德成闇으로 먼저 내려와야만 했다. 물론 며느리로 누가 뽑힐지 미리 알고는 있었다. 판서 김시묵의 딸로 이미 내정되어 있었으니까.
상견례 자리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시아버지 될 사람이 쫓겨나다니. 그래도 내가 대리청정을 하는 소조小朝인데 대조大朝인 아버지가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그 순간에는 사실 아버지를 그냥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스멀거렸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뒤주 안에서도 빛의 후박厚薄을 감지할 수는 있다. 한동안 적막이 감돌던 바깥에서 귀에 익은 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아들이다. 삼 년 전에 여덟 살 나이로 이미 세손에 책봉된 이산이다.
“마마! 아비를 살려주소서!”
얼마나 크게 울부짖는지 뒤주 안에서도 또렷하게 들린다. 아버지가 휘령전 마당에서 나에게 칼을 내밀며 자결하라고 명할 때도 열한 살 이산이 편전 앞문인 합문으로 달려 들어와 관과 용포를 벗고 엎드려 저렇게 애걸하지 않았던가. 두 손을 모아 빌면서.
아버지는 이산을 보고는 급히 소리쳤다.
“세손을 빨리 모시고 나가라!”
내가 옆에 있는 주서 이광현의 손을 잡으며 이산을 좀더 가까이 데리고 오라고 부탁했다. 벌써 이산은 내 마음을 알았는지 엉금엉금 기어서 내쪽으로 다가왔다.
“어찌 세손을 모시고 나가지 않느냐?”
아버지가 호위하고 있는 건장한 별군직들을 노려보았다. 군사 한 명이 얼른 이산을 안고 나가려 하자 이산이 울음을 토하며 버둥거렸다.
“마마! 아비를 살려주소서!”
저 목소리는 지금 나는 것이 아니라 아까 이산이 외친 소리인지도 모른다. 하긴 별군직 군사 팔에 안겨 나갔던 이산이 이 밤중에 다시 와서 뒤주 옆에 꿇어 엎드릴 리가 없다. 어쩌면 어둠을 틈타 이산이 사람 눈을 피해 숨어들어 왔는지도 모른다. 나도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고 싶다.
‘아들아!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하지만 목구멍이 마르고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주먹으로 뒤주 벽을 두드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낼 뿐이다. 주먹도 너무 세게 두드려서는 안 된다. 아무쪼록 지금은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장은 아버지가 나를 죽이고 싶겠지만 아버지의 성격으로 보아 하루 이틀 지나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 정신 바짝 차리게 하려 고 극형에 가까운 뒤주형을 며칠이나마 겪어보도록 하는지도 모른다.
아들 이산이 누구에게 업혀가는지 버둥거리며 울음을 터뜨린다. 이 울음도 휘령전에서 들었던 그 울음인지 모른다. 첫아들 이정이 경춘전景春殿에서 태어난 지 이 년 만에 부스럼병을 앓다가 갑자기 통명전通明殿에서 숨을 거두었을 때 비통하기 그지없었다. 돌이 지나자마자 세손으로 책봉한 손자가 세상을 떠나니 아버지도 하늘을 원망할 만큼 절통해하며 애도사를 친히 지어주었다. 애도사는 그대로 애도시였다.
오직 너 세손아
내가 너를 안았을 때
하늘이 이 나라를 도운 것으로 생각했다
오래 침전 곁에 두고도 때로 자리가 비면 허전하였고
항상 밥상 곁에 앉히고 먹을 때마다 권하였는데
기왕에 태어나게 해놓고 왜 또 죽이는지 그 이치를 알 수 없고
비록 명은 하늘에 있다 하나 사람에게도 달려 있으니
이 슬픔 끝없구나
그 모습 생각하면 아련하게 맑은 눈망울 보이는데
빈실嬪室만이 고궁에 남았고
아버지는 나와 아내의 슬픔도 함께 애도시로 표한 셈이었다.
아련하게 맑은 눈망울 보이는데.
생긋생긋 웃는 얼굴에 맑기 그지없던 이정의 두 눈망울이 나에게는 ‘아련하게’가 아니라 늘 바로 눈앞에 여실히 떠 있다. 내가 뒤주에서 죽는다면 저세상에서 이정을 다시 안아볼 수 있을 것인가.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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