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우리 도시에 기이한 새 질병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뉴욕타임스》를 읽고서였다. 1999년 가을이었는데, 내 맨해튼 사무실에서 이스트 강 바로 건너편에 사는 몇몇 노인들이 이름 모를 병에 걸려 퀸스에 있는 플러싱 병원 의료 센터에 입원했다는 기사였다. 그들은 잘 걷지 못했고, 정신이 혼미했으며,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도 있었다. 서너 명은 곧 숨을 거두었다.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환자들이 외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뇌에 염증이 생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병의 정체가 드러났다. 웨스트나일뇌염West Nile encephalitis. 원래 우간다에서 발생하던 병이 서구 세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곧 맨해튼에서 통근 열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내가 사는 뉴저지 북부 근처에서도 병에 걸린 사람이 나타났다. 몇 달 전만 해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치명적인 질병이 갑자기 집 근처에서 튀어나왔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혹시 1300년대에 유럽 인구의 3분의1을 쓸어버린 흑사병이나, 내 부모님이 살던 시대인 1918~19년에 적어도 2천만 명을 죽음으로 이끈 스페인 독감 같은 것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나는 수의사인 만큼 몇몇 치명적인 것들을 포함해서 질병들에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 지식을 갖추었다고 해도 바로 곁에서 튀어나온,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새로운 질병에는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나는 웨스트나일바이러스를 예외적인 사례로 치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내 평생에, 더 나아가 내 도시에 새로 나타난 첫 질병이 아니며, 더구나 마지막 질병도 아닐 것이라는 점이었다. 어떤 질병은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사건인 양 여겨지는 반면, 직접 겪으면서 매일매일 걱정해야 하는 질병도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라임병은 이제 내가 사는 모리스 카운티의 풍토병이 되어 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적어도 뉴욕 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치명적인 질병인 에이즈HIV/AIDS도 있다. 게다가 내가 과학 문헌에서나 보았던 광우병 같은 질병들도 이제 슈퍼마켓에서 함께 물건을 고르는 사람이나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서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더 최근인 2002년 11월에는 중국 광둥성에서 새로운 호흡기 질환이 나타나 몇백 명을 감염시켰다. 이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폐렴중증급성호흡기질환, 사스SARS라고 불리게 된다은 국제 항공 여행객들을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 한 달 만에 미국, 캐나다를 포함해 거의 20개국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있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장인 줄리 게버딩은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는 앞으로 훨씬 더 커질 수 있는 문제의 초기 단계를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홍콩과 CDC의 연구자들은 곧 이 병의 감염 매개체가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유전자 분석 결과를 토대로,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이 아닌 동물에서 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을 내렸다. 수의사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난 30년 동안 발견된 새로운 인간 질병들 중 거의 75퍼센트가 야생동물이나 가축에게서 전파되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므로, 나는 이 조사 결과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걱정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소에게서 천연두를 받고, 말에게서 감기를 받은 것을 비롯해 오래 전부터 다른 동물들에게 수많은 질병을 얻어왔다.
야생동물은 질병 유발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들을 대단히 많이 보관하고 있는 일종의 창고이며, 그 미생물들 중에는 어느 날 갑자기 인간사에 등장한 뒤에야 겨우 정체가 드러나는 것들도 많다. 게다가 어떤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도 있다면, 그것을 박멸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동물 창고들을 파악하고 우리 자신과 그 종 사이에 놓여 있는 자연적인 경계선들을 보존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뿐이다. 게다가 에볼라 출혈열 같은 대단히 이질적인 질병은 아직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 병은 지난 20년 동안 수단과 자이레의 사람들과 일부 야생동물들에게 주기적으로 발생해왔으며, 지금도 발생하면 피해가 막심하다. 에볼라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대개 몸속에서 대량 출혈이 일어난다. 웨스트나일바이러스가 뉴욕에 출현하기 10년쯤 전에, 에볼라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 몇 마리가 버지니아 주로 수입된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원숭이들을 재빨리 격리하고 바이러스도 찾아냄으로써, 사육사들이 감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때로는 치명적이기까지 한 수많은 새로운 전염병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마구 두드려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미 문을 통과한 것들도 있다.
하지만 1950년대 말에 미국 공중위생국장이 이미 선언하지 않았던가? 미국인들이 “전염병을 끝장낼”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말이다. 기적 같은 현대 의학이 전염병과의 전쟁을 거의 끝낸 것이 아니었던가?
사실 그로부터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전염병은 여전히 세계 인구 세 명당 한 명 이상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99년에 펴낸 보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정복한 듯이 보였던 질병들이 다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어떤 것들은 과거에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지역을 강타하고 있으며, 약물에 내성을 획득하는 바람에 사실상 퇴치가 불가능한 전염병들도 있다.” 심지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전염병의 부활에 우려를 표했다. 2000년 CIA는 전염병의 출현이 “국내외의 미국인들을 위협하고, 해외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주요 국가와 지역에서 사회적 정치적 불안을 가속화함으로써 다음 20년 동안 미국과 전 세계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예측은 2003년 4월 베이징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차구강 마을의 주민 만여 명이 폭동을 일으킴으로써 일부 실현되었다. 이 마을에 사스 환자 수용시설을 만든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민들이 임시 병실로 지정된 학교 건물을 습격한 것이다. 곧이어 중국 곳곳에서 사스 폭동이 잇따랐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전염병이 두 가지 일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과거에 통제했다고 믿은 옛 질병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으며, 일부는 새로운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된 질병인 말라리아는 최근 들어 동아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환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모기를 통해 전파되는 이 병은 매년 거의 2천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다. 희생자의 절반은 다섯 살 이하의 아이들이다. 이 병원체 중에는 주된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에 내성을 획득한 것들도 있다. 또 이 병은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지역들에서도 다시 나타나고 있다. 2002년 버지니아 주 라우던 카운티에서 열다섯 살 된 소년과 열아홉 살 된 여성이 집 근처에서 모기에 물려 말라리아에 걸렸다. 미국에서 사람과 모기에게서 말라리아가 검출된 것은 적어도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세계적으로 보면, 지구 온난화와 삼림 파괴로 모기가 산란할 장소가 더 늘어남으로써 말라리아 발병률이 더 증가한 지역들도 있다.
2002년 열대의 낙원인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뎅기열 환자가 발생했다. 모기에 물려 감염되는 이 바이러스는 갑작스런 고열과 심한 두통, 근육과 관절의 통증, 구토, 발진을 일으킨다. 목숨이 위험해지는 경우도 있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런 질병의 증가가 단지 검출 방법이 개선됨으로써 나타난 현상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저 연구자들이 이전의 엉성한 조사 방법으로는 미처 밝혀내지 못했던 질병들을 찾아낸 것이 아닐까? 불행히도 현실은 이런 낙관론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불길한 두 번째 경향은 새로운 질병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WHO는 1980년 이래 에이즈를 비롯한 새로운 질병들이 30종 이상 늘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1980년에서 1992년 사이에, 미국에서 에이즈는 치명적인 전염병 환자의 수를 60퍼센트나 증가시켰다. 30년 전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에이즈는 2003년까지 전 세계에서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안겨주었고 5천만 명을 감염시켰다. 이 병은 지금도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 오래된 질병인 결핵도 매년 2천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예전부터 이 병 치료에 널리 쓰여온 항생제들 중 적어도 두 가지에 내성을 지닌 새로운 결핵균들이 출현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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