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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 시대의 맥주
발효와 문명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
― 존 치아디, 미국 시인1916~1986
선사 시대의 유산
약 5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나온 인간은 유목민 형태로 약 30명 정도의 작은 무리를 이루면서 이동했고, 동굴이나 헛간 또는 짐승 가죽으로 만든 천막 안에서 거주했다. 그들은 사냥을 하고 물고기나 조개류를 채집하고 먹을 수 있는 초목을 채취하면서 계절에 따라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한 야영지에서 다른 야영지로 이동했다. 그들이 사용했던 도구는 주로 활과 화살, 낚시 바늘 그리고 창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약 1만 2000년 전에 놀랄만한 변화가 발생했다. 근동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구석기 시대의 수렵·채집hunger-gatherer이라는 오래된 생활양식을 버리고, 대신 마을에 정착하면서 농경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을들은 점점 커져 후일 세계 최초의 고대 도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또한 도기, 바퀴가 달린 운반 수단, 문자 등 많은 새로운 기술도 창안했다.
약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해부학적으로 볼 때 현생”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ce sapience’가 출현한 이래 물은 인류에게 기본적인 음료가 되어 왔다. 물은 인간에게 있어 생명의 근간으로서 신체의 3분의 2를 구성하고 있으며, 물이 없다면 지구상에 어떠한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수렵·채집의 생활 방식에서 정착에 가까운 생활 방식으로 전환이 일어나면서 인류는 물을 대신할 새로운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 음료는 인류가 최초로 공들여 재배했던 보리, 밀, 곡물로 빚어낸 것이다. 이 음료는 사회적·종교적·경제적 삶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고, 또한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문명화를 상징하는 음료였다. 인류가 극대화를 향해 나아감에 있어 최초로 첫걸음을 내딛게 해준 이 음료는 바로 맥주였다.
최초의 맥주가 언제 양조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기원전 1만 년 전에 맥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지만, 기원전 4000년경에는 근동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의 이라크에 해당하는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의 그림문자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림에는 커다란 항아리에 갈대로 된 빨대를 꽂아 맥주를 마시는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고대 맥주는 표면에 곡물의 입자나 다른 찌꺼기들이 떠 있었기 때문에 부유물을 피해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는 빨대가 필요했다.)
현존하는 인류 최초의 기록물은 기원전 3400년경의 것인데 이들 문서에도 맥주의 기원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없다. 그러나 맥주의 등장은 농경의 도입과 맥주의 원료인 곡물의 재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인류의 생활 방식이 유목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전환되었고, 이어 최초의 도시들이 등장하고 사회의 복잡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던 인류 역사의 격변기에 맥주가 등장한 것이다. 맥주는 선사 시대의 유산이며 그 기원은 문명의 기원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맥주의 발견
맥주는 발명된 것이 아니라 발견된 것이다. 기원전 1만 년경에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로 알려진 지역에서 야생 곡물의 군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때 맥주가 발견된 것은 필연이었다. 비옥한 초승달이란 지금의 이집트에서 지중해 연안을 따라 올라가 터키의 남동 끝까지, 그리고 옆으로 이라크와 이란의 국경 지대로 이어지는 지역을 일컫는다. 그 형상이 초승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빙하기가 끝났을 때 그 지역의 고지대는 야생 양, 염소, 소, 돼지에게 이상적인 환경이 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야생 밀과 보리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것은 초승달 지역이 수렵·채집을 하며 이동했던 인류에게 이례적으로 풍부한 수확을 제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 지역에서 동물을 사냥하고 먹을 수 있는 초목을 채집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군생하고 있던 대량의 야생 곡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그러한 곡물들은 특별하지는 않았더라도 식재食材, foodstuffs로서는 신뢰할 만한 것이었다. 곡물은 날것으로 먹기에는 적절하지 않았지만 잘게 부수거나 으깨어 물에 타면 가능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곡물과 물을 섞어 스프soup 형태로 먹었을 것으로 보인다. 반죽해서 만든 그릇이나 역청으로 칠한 그릇에 생선, 견과류, 산딸기 같은 것들을 물과 같이 넣고 섞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불로 가열된 돌들을 갈퀴 같은 막대기를 사용하여 그 안에 집어넣었을 것이다. 곡물에는 작은 전분 알갱이들이 함유되어 있는데, 뜨거워진 물속에서 알갱이들은 수분을 흡수한 후 파열된다. 이에 따라 전분이 흘러나오면서 스프는 상당할 정도로 걸쭉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곡물에는 이 외에도 독특한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다른 식재들과는 다르게 곡물은 건조한 상태로 안전하게 보관만 된다면 몇 달 또는 심지어 몇 년까지도 보존할 수 있었다. 스프를 만들기 위해 다른 식재를 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보관하고 있는 곡물만을 사용하여 걸쭉한 포리지porridge, 오트밀에 우유나 물을 부어 걸쭉하게 죽처럼 끓인 음식, 특히 아침식사로 먹음 – 역주나 맑은 죽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발견은 곡물을 채집하고, 가공하고, 저장하는 도구와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미래에 식량이 부족한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었다. 초승달 지역의 전역에서 추수를 위해 낫처럼 단단한 돌을 갈아 만든 석도石刀, flint-bladed sickles, 운반을 위한 바구니, 건조를 위한 돌 난로, 저장을 위해 땅속에 판 구덩이, 가공을 위한 맷돌 등 기원전 1만 년경의 고고학적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수렵·채집 시대에도 완전한 유목생활보다는 임시 또는 계절에 따라 여러 곳의 거주지 사이를 옮겨 다니는 반半 정주형定住型 방식으로 살았지만 곡물을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한 장소에 거주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1960년대에 행해진 실험이 그 이유를 잘 보여준다. 어느 고고학자가 석도를 사용하여 터키의 일부 지역에서 지금도 자라고 있는 야생 곡물을 채집하면서 선사 시대 수확의 효율성을 조사했다. 그는 한 시간 동안에 2파운드약 900그램 이상을 수확했고, 이는 한 가족이 하루에 8시간, 3주 동안 작업을 계속한다면 1인당 하루에 1파운드약 450그램씩 1년 동안 먹기에 충분한 식량을 수확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수확은 야생 곡물의 군생지 근처에 가족 전원이 머물면서 수확할 수 있는 최적기를 놓치지 않을 때만 가능했다. 그리고 상당한 양의 곡물을 수확한 뒤에는 그대로 방치하고 떠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결과 최초의 영구 거주지가 기원전 1만 년경에 지중해의 동부 해안 지역에 생겨났다. 거주지는 나무로 기둥을 만들어 지붕을 지탱했고 바닥은 1야드0.914 미터 정도 파낸, 단순하고 둥근 형태의 오두막집과 비슷했다. 보통 오두막집에는 화로가 있었고 바닥에는 돌을 깔았고 직경은 4~5야드약 3.6~4.6미터 크기였다. 마을은 일반적으로 50채 정도의 오두막집으로 이루어졌고, 200~300명 정도의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었다. 마을 사람들은 가젤, 사슴, 야생돼지 같은 야생 동물을 계속해서 사냥했지만, 당시 발굴된 뼈들을 보면 그들이 주로 도토리, 렌즈콩, 병아리콩, 곡물과 같은 식물 중심의 식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경작을 했다기보다는 야생 곡물을 채집했을 것이다.
곡물은 처음에는 그렇게 중요한 식재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2가지 놀라운 특성이 발견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하나는 곡물을 물에 담그면 발아가 시작되고 단맛을 낸다는 성질이다. 완벽하게 물을 차단하여 방수가 되는 저장 구덩이를 만드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에 인간이 곡물 저장을 처음으로 시작하자마자 이러한 특성을 바로 발견했을 것으로 보인다. 달콤한 맛이 생기는 원인은 지금은 분명하다. 습기에 찬 곡물은 디아스타제diastase라는 효소를 만들어내고, 그 효소가 전분을 맥아당麥芽糖, maltose sugar 또는 맥아麥芽, malt로 변환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어느 곡물에서도 발생하지만 특히 보리의 경우 훨씬 많은 디아스타제를 배출하고, 따라서 가장 많은 맥아당을 만들어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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