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박물관
크리스마스 날 아침, 그와 그의 아내는 아들과 딸을 차에 태우고 어느 도시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으로 떠났다. 박물관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에 있었다. 새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시내를 지나 터널 공사 중인 산을 넘어야 했다. 운전은 아내가 했다. 아내는 운전에 서툴렀고 겁에 질려 있었다. 자동차는 시속 60킬로미터를 줄곧 유지하고 있었다. 아내는 아, 속도가 너무 빨라, 하고 중얼거렸다. 옆 차선으로 차들이 휙휙 지나갔다. 어떤 차는 경적을 울리며 신경질적으로 추월하기도 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는 자주 비틀거렸다. 아들과 딸은 흔들리는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이라고 떠들어댔지만, 그는 불안하고 지루한 시간을 말없이 견디고 있었다.
작년 겨울, 그는 음주운전으로 면허를 취소당했고 많은 액수의 벌금을 내야 했다. 아내가 사준 중고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밤이었다. 번화가를 지나 2차선 도로로 꺾어지는 모퉁이에서 경찰이 그의 차를 잡았다. 경찰은 새로 생긴 카센터 건물 뒤에 숨어 있었다. 그는 만취 상태였다.
“쥐새끼 같은 놈들……”
그는 젊은 경찰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경찰 중 한 명이 그의 팔을 잡아 경찰차에 태웠다. 창밖으로 불빛이 어지럽게 지나갔다. 잠시 후, 크고 단단한 손이 그의 어깨를 눌러 경찰서 의자에 앉혔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경찰서라고 말하자 아내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횡설수설하며 만취 상태의 음주운전에 대해 설명했다. 몇 시간쯤 조사를 받아야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했다.
“걱정 마, 이건 아무 일도 아니야, 절대로 걱정하지 마.”
옆에 앉아 있던 경찰이 빨리 끊으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쥐새끼 같은 젊은 경찰은 아니었다. 젊은 경찰은 먹이를 물어와 둥지에 던지듯이 그를 경찰서에 집어넣고는 다시 밤거리로 사라졌다.
경찰이 소리를 지르자 그의 아내도, 누구야, 누가 당신한테 그러는 거야? 하며 함께 소리를 질렀다. 자신 때문에 흥분하고 있는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 그는 울컥, 감동적인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경찰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여기가 당신 집이야?”
“누구든 당신을 건드리기만 해봐.”
경찰과 아내의 목소리가 그의 귓속을 엇갈리며 지나다녔다. 가슴이 울렁거리며 현기증이 났다. 그는 경찰서에 앉아 있는 자신이 낯설고 불안한 존재로 느껴졌다. 빨리 아내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괜찮아, 괜찮아…… 어서 거기서 나와.”
아내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침착했다. 순간, 아내가 대학 시절, 그리고 연애 시절의 그녀처럼 느껴졌다.
새벽 무렵에 그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내는 불을 환하게 켜둔 채 거실에 앉아 졸고 있었다. 그는 경찰서에서 들었던 감동적인 말을 떠올리며 아내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그대로 잠들면 지난밤의 긴장과 피로가 조용히 물러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내는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흔들어 그를 밀어냈다. 머리가 바닥에 쿵, 떨어졌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녀는 더 이상 다정한 애인이 아니었다. 그와 그녀의 따뜻한 우정과 사랑은 사라졌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잃어버린 운전면허에 대한 대책과 벌금뿐이었다.
아내는 운전학원에 속성코스로 등록했다. 그녀는 문제집이 더러워질 때까지 주의를 기울여 공부했다. 시험 전날 밤에는 그에게 문제를 내보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그가 말했지만, 반복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을 거라며 고집을 부렸다.
아내는 필기시험에서 100점으로 합격했다. 점수를 부를 때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고 말했다. 그녀는 코스에서 턱걸이로 합격했고 도로주행시험에서 두 번 떨어진 후 세번째 주행에서 마침내 면허증을 받았다.
“인생이 바뀔 것 같아.”
처음으로 아내가 운전석에 앉고 그가 조수석에 앉아 도로로 나간 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그녀가 견뎌내는 속도는 고작 시속 40킬로미터였다. 차들이 달려드는 도로에서 40킬로미터로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야.”
그녀는 진심으로 낙담하고 슬퍼했다.
그가 운전면허를 잃고 그녀가 속도를 내지 못하자 그들이 함께했던 일상은 대부분 정지되었다. 주말에 쇼핑센터를 돌며 시식코너를 기웃거리거나 중고 서점에서 필요 없는 책을 팔고 싼 값에 책을 사며 즐거워하던 일,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는 것 같은 사소한 일도 꿈꿀 수 없었다. 아침마다 각자 버스를 타고 출근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30분은 일찍 일어나야 했다. 속도를 잃자 그들은 무기력해졌다. 그는 그녀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 못마땅했고, 그녀는 그가 운전면허를 잃은 것이 짜증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차를 사용해야 하는 날에는 면허가 없는 그가 운전을 했고 아내가 조수석에 앉아 동행했다. 아내는 그의 비공식적인 면허증과도 같았고 그는 그들의 속도였다. 만일 사고가 나거나 검문이 있다면 곧바로 자리를 바꿔 앉아야 한다고 그가 말했다. 그 상황을 대비해 신속하게 자리를 바꾸는 연습을 해보자고 말한 것은 그녀였다.
이 사실이 누군가에게 알려진다면 망신을 당하거나 곤란한 처지에 놓이겠지만, 모두 지난 일이었다. 검문도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날 아침, 늘 조수석에 앉던 아내는 운전석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그녀는 의자를 당기고 안전벨트를 맸다. 이제 그녀 스스로 운전해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박물관에 다녀온 후, 그는 한동안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이었다. 차도 운전도 아내의 몫이 되었다.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