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금이 간 영혼을 사랑해
문학 소년이었다. 시집을 죽도록 읽었다. 읽다가 죽어도 좋을 만큼 시가 좋았다. 무슨 말인지 알 듯 말 듯한 그 글썽거림의 세계에 완전히 매혹되어 있었다. 세계의 글썽거림을 담고 있는 시들은 나의 감각을 뒤흔들었다. 죽을 때 관속에 품고 가고 싶은 시집들을 만났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통로였다. 장래 희망을 쓰는 칸에 시인, 문학평론가, 작가를 채워 넣었다. 빈칸에 시인, 이라고 쓰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고등학생 시절을 증거해줄 시집들이 숱하게 있지만 그중에서도 김정란 시인의 『다시 시작하는 나비』라는 시집은 닳고 닳도록 보았다. “나는 금이 간 영혼을 사랑해.” 같은 문장 앞에서 내 영혼이 어서 금이 가버리길 기도하던 밤들이 있었다.
열아홉 살이던 2001년. 창작과비평사 온라인 게시판에 박남철 시인의 소위 ‘욕시’가 올라왔다. 김정란 시인을 두고 “암똥개”, “열린 ××와 그 적들”, “벌린 ×” 등 온갖 욕설이 난무하는 시.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정말 영혼에 금이라도 간 것처럼 말 비린내가 진동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궁금했다. 무슨 엄청난 일이 있었던 걸까. 도대체 얼마나 괴물 같은 짓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모욕과 굴욕의 시를 쓰게 되었을까. 며칠간 온몸이 쿵쾅거리는 상태로 댓글과 답글을 모조리 읽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상황은 이러했다. 한 술자리에서 막 등단한 여성 시인이 박남철 시인으로부터 성희롱과 구타를 당한 것. 그 뒤로 박남철 시인에 대한 폭로가 계속되었다. 성폭행당할 뻔했다는 잡지사 편집자, 학생 등의 고백이 이어졌다.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박남철 대책위’가 구성되었고 그 안에 김정란 시인이 있었다. 아, 그래서. 아, 그런데 이렇게까지. 아, 이게 뭐지. 뭔가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그 뒤 펼쳐진 상황. 박남철 시인을 비판한 논객 진중권은 모욕죄로 200만 원 벌금을 선고받았고, 한 문예지는 문제의 그 ‘욕 시’를 버젓이 게재했다. 한 평론가는 박남철 시인을 한국 최고의 시인이라며 두둔했고, 대다수 문인과 문학 출판사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페니스 파시즘』이라는 책이 나왔다.
그 책은 말하고 있었다. 한국 문단에는 패거리 권력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대형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남성 문인들을 가리키고, 이는 남성우월주의 즉 페니스 파시즘을 작동하게 한다고. 비단 문단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페니스 파시즘이 작동하고 있다고.
도대체 문단이 어떤 곳이기에 이토록 괴물들이 득세한단 말인가. 비위가 상했다. 또한 당연하고 마땅하게 여겼던 이 세계의 추악함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여성이 남성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었다. 남성은 권력 집단이었다. 그렇기에 한 여성 시인을 두고 아무렇지 않게 폭언을 일삼아도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을 알고 난 뒤로 세계가 뒤틀렸다. 내가 여성을 보고 있는 관점과 시점, 내가 다니는 학교 내 여자·남자 선생님 사이 권력관계, 우리 집안 내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과 증조할머니부터 어머니를 포함한 여성의 권력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자라나며 가지게 된 여성을 바라보는 내 관점까지. 내가 지내고 있는 세계가 이토록 끔찍한 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징그러웠고 메스꺼웠다. 그즈음부터 시집을 손에 잘 들지 못했다. 열아홉 살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영 불편했다. 그게 영 이상했다. 내가 그 이상한 세계에서 너무도 편히 지냈다는 사실이. 여성들은 그 이상한 세계 속에서 계속 상해가고 있는데 남성인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김정란 시인이 사랑하는 “금이 간 영혼”은 그렇게 탄생하고 있었다. 나의 세계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남성으로 살아왔던 계절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예감했다. 금이 한번 가기 시작하자 멈출 수 없었다.
2.
나는 덜덜덜 흔들렸다
그 이후로 나는 대체로 불편해졌다. 축구경기가 시작되고 축구팀을 이끌던 한 작가가 능숙하게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경기에 처음 참가한 나를 두고 “빨리 안 뛰어? 뭐 하는 거야 새까!” 나는 대개 불편해졌다. 그런 수컷들의 살기 어린 승부욕이 불편해졌다.
나는 대체로 불쾌해졌다. 속옷이 비치는 블라우스를 입은 여성을 두고 하는 말이. “아예 벗고 다니지. 왜 저렇게 아슬아슬하게 입어. 저런 애들이 진짜 밝히는 애들이야.” 짧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성을 두고 하는 말이. “아예 나 먹어주세요, 광고를 하는구나.” 친구의 솟구친 말이 불쾌해졌다.
왜 집안일은 엄마가 다 하는 걸까. 부인들은 남편 아침밥은 꼭 챙겨야 한다는 세상의 말을 당연히 여기며 왜 아침부터 한 상 차려내야 하는 걸까. 시장에 가면 왜 온통 할머니와 아줌마뿐이고, 아기를 돌보는 것도 죄다 그들이고, 학교에서 반장과 회장은 늘 남자애들이 하고, 운동장도 남자애들이 다 점령하고, 여성 선생님들은 출산과 동시에 학교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고, 여성들을 귀갓길 택시 안에서도 왜 불안해야 하는 걸까.
불공평한 세상이 불편해졌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불쑥 바뀐 것처럼. 너무나 확실했던 남성의 세계는 점점 내게 불확실해졌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들의 언어에 자주 불끈거렸다. 불화를 겪은 적 없던 젠더-세계에서 나는 점점 불온해져갔다. 남성들의 세계를 잃을까 봐 불안하기도 했지만 페미니즘의 불씨는 그칠 줄 몰랐고, 그 불길을 붙잡아둘 방도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페미니즘에 입문하고나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성장통이라고 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