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이방인, 자이니치 디아스포라 문학
흩어진 씨앗,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diaspora, διασπορά라는 용어는 “씨 뿌리다Σπορά”라는 그리스어 ‘dia speriena scattering of seeds’에서 유래되었다. 그리스인들에게 본래 긍정적인 의미였던 이 단어가 언제부터 유대인들에게 고통의 표현으로 되었는지는 확실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유대인이 앗시리아에 포로가 되던 기원전 722년과 바벨로니아에 포로가 되던 기원전 586년, 두 가지 주요 사건으로 이 용어는 포로와 고통의 상징어가 되어 버렸다. 성경에서 이 용어는 절대자의 말을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주는 저주스런 경고다.
25: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thou shalt be a dispersion in all kingdoms of the earth
26: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줄 자가 없을 것이며(…중략…)
64: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scatter 네가 그곳에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
65: 그 여러 민족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이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거기에서 네 마음을 떨게 하고 눈을 쇠하게 하고 정신을 산란하게 하시리니.
― 신명기 28장 25~65절(강조는 인용자)
“야웨께서 너희들을 흩으실 것이다Yahweh will scatter you among all the peoples”라는 말 그대로 AD 70년경 예루살렘이 두 번째로 붕괴되자 유대인들은 뿔뿔히 흩어졌고, 이 단어는 팔레스틴을 떠나 알렉산드리아 등지에 살게 된 유대인 공동체, 곧 조국에서 살지 못하고 ‘타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이란 뜻이 되었다. 끔찍한 포로기 때부터 쓰이기 시작한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는 고통의 상징어로 쓰여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들은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라는 구절처럼 ‘벌거벗은 생명 호모 사케르Homo Sacer’가 되는 홀로코스트를 겪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공동체 생활, 회당 건립, 언어와 혈통, 현지 지도자 양성, 고국과의 밀접한 관계 유지를 통해 디아스포라 상황을 극복하려 했다.
포로, 고통, 언어, 극복 등으로 표상되는 이 용어는, 1990년대에 들어 이주노동자, 무국적자, 다문화가족, 언어의 혼종성 등 초국가적transnational인 문제들이 일반화되면서, 다른 민족의 국제이주, 망명, 난민, 이주노동자, 민족공동체, 문화적 차이, 정체성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민족분산民族分散 또는 민족이산民族離散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이 말을 넓게 ‘이산離散, diaspora, dispersed’으로도 번역한다.
디아스포라 문제를 학술화시킨 학자는 윌리암 사프란William Safran이다. 사프란은 디아스포라를 “국외로 추방된 소수 집단 공동체that segment of people living outside the homeland”라고 정의하면서, 그 특성을 여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①이산離散의 역사: 디아스포라는 특정한 기원지로부터 외국의 주변적인 장소로 이동한다. A history of dispersal: Diasporas are dispersed from an original center to at least two “peripheral” places
②모국에 대한 신화와 기억: 디아스포라는 모국에 대한 “기억, 비전 혹은 신화” 같은 집합적 기억을 보존한다. Myths and memories about the homeland: Diasporas keep a “memory, vision, or myth” about their original home
③거주국에서의 소외: 디아스포라는 거주하는 나라가 자신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믿는다. Alienation in the host countries: Diasporas “believe they are not fully accepted” by their host country
④결국 귀국하겠다는 바람: 디아스포라는 때가 되면 “돌아갈 곳”으로 조상의 모국을 그린다. A desire for eventual return: Diasporas see their ancestral home as “a place of return” when the time is right
⑤모국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디아스포라는 모국을 위해 정치적, 경제적으로 헌신한다. Ongoing support for the homeland: Diasporas are committed to “maintenance or restoration” of their original homeland
⑥모국에 의해 만들어진 집단적 정체성: 디아스포라 의식은 모국과의 관계에 의해 “중요하게 규정된다.” A collective identity shaped by the homeland: Diaspora consciousnesses are “importantly defined” by the relationship with the original homeland
사실 사프란의 디아스포라 개념은 모든 나라의 다양한 디아스포라적 상황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성공한 유대인 중에 ④처럼 모국인 이스라엘로 귀환하려는 유대인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의 경우,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나 일제 식민시기 때 재일한인의 도일渡日은 디아스포라라고 볼 수 있으나 1970년대 이후 신분상승을 위하여 미국으로 이민 간 재미한인은 디아스포라의 조건에 모두 맞지는 않는다. 사프란 자신이 디아스포라의 이념형이라 했던 유대인조차 여섯 가지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지는 못하고 있으며, 우리의 경우도 여섯 가지 조건에 모두 맞지는 않는다.
한편 포스트식민주의postcolonialism 학자들은 디아스포라 이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 표현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다. 원어 그대로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이라고 번역해 쓰는 이들은 포스트post를 ‘이후after’로 해석하여 식민주의 ‘이후’의 식민지 상태를 표현하고자 한다. 이 표현은 ‘포스트’라는 애매모호한 표현 탓에 정치적 의미를 가볍게 한다. 한편 포스트post를 ‘초극beyond’으로 해석하는 이는 ‘탈脫식민주의’라고 써서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의지, 곧 프란츠 파농, 사이드, 스피박 같은 의지를 강조하려 한다. 저자는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여 ‘포스트식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려 한다.
로버트 영Robert J. C. Young은 2차 대전 이후 아프리카·남미·아시아인은 전세계로 흩어지면서diaspora, 트리컨티넨탈리즘tricontinentalism이라고 하는 포스트식민주의적 상황을 그대로 온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스트식민주의의 핵심적인 문제에는 서구사회와 트리컨티넨탈 사회 양쪽 모두에 있는 식민적이고 제국적이고 반反식민적인 과거, 포스트식민적인 현재, (아동 노동에서 시작되는) 국제분업, 민중의 권리와 문화적 권리, 이산과 이민, 강제적인 이전, 정착과 디아스포라diaspora 등이 포함된다.
로버트 영은 디아스포라 문제를 식민지에 이은 포스트식민주의의 문제로 연결시키고 있다. 가령 식민지 시대 때 독립운동을 위한 지도자들은 디아스포라의 망명지에서 활동을 했고, 이후 포스트식민주의 시대에 세계 각지로 이산한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들은 아프리카인들의 정치 사회 상황에 시종일관 똑같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사프란의 이론과 포스트식민주의 이론, 그리고 이방인에 대한 여러 논의에 의해 디아스포라에 대한 논의는 보강되고, 토론되어 왔다. 사프란의 논의에서 지적했지만, 우리의 다양한 해외 동포 문학도 모두 같은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간단히 동일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일본에 사는 자이니치在日 디아스포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다른 지역의 한인들과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식민지라는 직접적 체험과 관계있고, 또한 ‘일본 내 북한’으로 북한과 관계 맺고 있는 조총련 소속 문학인이 존재하고 있는 재일본 동포 문학에 대해 논할 때, 많은 쟁점이 있어왔다. 여기서 저자는 자이니치 디아스포라에 대한 네 가지 쟁점을 논해보려 한다. 첫째는 자이니치 동포 문학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용어에 대한 문제다. 둘째는 문학사적 시기 구분의 문제다. 셋째는 조직―매체―언어 문제, 넷째는 이들이 작품에 담아온 문학적 주제의 문제에 대해 살펴 보려 한다.
용어·시기·조직·언어
왜 ‘자이니치’ 디아스포라 문학인가
흔히 해외 각국에 흩어진 코리언은 약 600만, 1만 명 이상 사는 나라가 15개국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15개국에 사는 코리언 디아스포라가 모두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의 경우는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일본에 거하는 코리언을 일컬어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 재일조선한국인, 재일코리언 등으로 불러 왔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가서 살고 있는 사람의 여권에는 조선이나 대한민국, 두 가지 중의 하나가 찍혀 있다. 재일학자인 강재언, 이진희 교수는 사실 조선인이란 국적은 무국적자이지만, 두 항목을 하나로 하여 ‘재일조선한국인’으로 표기하자고 제안했고, 그들의 공저 『日韓交流史』李進熙·姜在彦, 1995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재일조선한국인’이라는 용어를 썼다. 이 표현에는 ‘조선’을 ‘한국’의 앞에 두는 우열의 문제가 생긴다. 물론 어떠한 명칭을 부여하는가 하는 문제가 작품 분석을 위한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이러한 문제는 이들 작가가 택한 이념과 정체성과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세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대안으로 김환기 교수는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용어를 써서,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새미, 2006이란 편저를 내기도 했다. 저자는 지역적인 의미의 ‘재일’이란 특수성, 이국에서 흩어져 문학 활동을 해나간다는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용어가 결합된 ‘재일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용어는 타당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렇게 규정할 때, ‘재일’이라는 용어 자체에는 이미 한반도 중심으로 대상을 바라보겠다는 의식이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닐까.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들은 스스로 ‘자이니치在日’라고 칭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또는 조선인이지만 한국인도 아닌, 어머니의 뱃속에서 잉태되는 순간, 사회적 ‘차별 속으로’ 탄생한다. 이들에게 실제적인 정책적 배려 없이 ‘재일’조선한국인으로 지명하는 것은, 지정학 혹은 행정적 의미만 담고 있거나 대상을 한국인의 잣대로 정리하겠다는 행정적 용어가 아닐까 싶다. 차라리 그들 스스로를 지명하는 ‘자이니치’라는 용어가 차별과 소외를 표상하는 디아스포라의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용어가 아닐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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