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미래는
과연 오는가
미래는 오는 것일까요, 오지 않는 것일까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결국은 오고야 마는 것일까요, 아니면 온다는 말은 많지만 결코 온 적이 없는 것일까요. 미래라는 한자어가 ‘아닐 미’未와 ‘올 래’來의 결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미래는 앞으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이와 같은 미래의 모호함에 대한 책입니다. 우리는 미래가 과연 오는 것인지, 만약 온다면 지금 생각하는 그런 모습과 방식으로 오는 것인지 묻고자 합니다.
2018년 10월 미국의 기술 전문 잡지 『와이어드Wired』가 창간 25주년을 맞아 게재한 글에서 조지워싱턴 대학 교수 데이비드 카프David Karpf는 “왜 미래는 절대 도착하지 않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25년 동안 매월 발간된 잡지의 모든 호를 다 꺼내 읽으면서 『와이어드』가 그동안 제시했던 미래 전망들을 분석했습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강력한 힘이 정부, 언론, 교육 등 기존의 세계를 지탱해온 제도들을 무너뜨리고 전혀 다른 세계를 창조하리라는 『와이어드』의 낙관론은 상당 부분 섣부른 기대였습니다. 테크놀로지는 모두에게 번영과 행복을 가져다주지도 않았고, 자유롭고 합리적인 소통에 기반한 정치를 만들어내지도 않았고, 지구 전체에 닥친 생존의 위기를 해결해주지도 못했습니다. 언제나 오고 있다던 테크놀로지의 미래, 혹은 미래의 테크놀로지는 우리가 기다리던 모습 그대로 오지 않았습니다. 분명 테크놀로지도 바뀌고 세상도 바뀌었지만 미래는 예언대로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미래는 계속해서 유예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자신 있게 제시되었던 미래는 약속된 시점이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뒤로 후퇴합니다. 2019년 7월 17일 자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온라인판 기사에 따르면 그동안 인간의 개입 없는 완전 자율주행을 하는 자동차가 수년 내에 거리를 돌아다니게 될 것이라고 공언해온 자동차 업계가 최근 들어 그 시점을 훨씬 뒤로 잡고 있다고 합니다. 『뉴욕 타임스』 기사는 “우리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도래를 과대평가했다”는 자동차 회사 포드의 경영자 짐 해킷Jim Hackett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연구소나 시험장이 아닌 실제 세계에서 완전 자율주행이 실현될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만이 당장 내년에라도 자율주행 차를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완전 자율주행을 실현하는 데 가장 큰 난관은 인간 행동에 대한 예측이라고 합니다. 운전자나 보행자가 다음 순간에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는 것이 자율주행 차에게는 너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운전을 오래한 사람이라면 혹은 길거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체감하고 있을 이 사실을 자율주행 차 업계에서는 비교적 천천히 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로를 공유하게 될 다른 존재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율주행 차의 안전은 담보할 수 없습니다. 결국 기수의 앞날에 대한 예측은 실험실 밖 인간과 세상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는 항상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것이 됩니다. 연구소 안에서, 업계 안에서 볼 때는 금방 손에 잡힐 것 같던 미래는 밖으로 조금만 나가보면 그 형태를 흐리며 뒤로 물러납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미래 예측이 틀리는 일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측했던 미래가 제때 오지 않는다는 불평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이 책은 우리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미래’라는 단어를 한자 뜻대로 풀어 쓴 “미래는 오지 않는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요즘 미래 담론에서 흔히 보이는 확신, 즉 미래를 곧 일어나고야 말 객관적 사건으로 보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우리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주관성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이 책은 미래를 하나의 담론, 즉 해석과 비판과 논쟁이 필요한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미래에 대한 예측들은 데이터만이 아니라 세계관과 이념을 담고 있으며, 서로 주도권을 놓고 경합합니다. 그러므로 각종 미래상에 대한 꼼꼼한 독해가 필요합니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우선 우리의 미래 담론이 과학기술 중심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오늘날의 미래 담론은 과학기술이 거의 독점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앞날에 대한 예측이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예측과 동일시됩니다. 물론 미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현황과 그 발전 전망을 따져보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우리의 삶은 과학기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때 우리가 찾는 것이 항상 ‘첨단’ 과학기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학기술이라는 사실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30년 후, 50년 후 세상을 상상하면서 하늘을 나는 자동차, 혈관 속을 돌아다니는 로봇, 화성에 건설한 식민지 같은 것을 떠올릴까요? 반면 왜 우리는 깨끗하고 효율적으로 관리되는 상하수도, 화재나 지진에 조금 더 안전한 건물, 전 인류에게 싸고 안전하게 공급되는 백신 같은 것으로 가득 찬 미래를 상상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정부, 산업계, 학계, 언론에서 내놓는 공식 미래 전망에 포함되는 과학기술과 그렇지 못하는 과학기술이 어떤 것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또한 우리가 과학기술의 성공과 실패를 예측하는 데 그다지 유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우리의 미래 예측이 과학기술의 성패에 대한 예측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는 곧 우리가 미래에 대해 말할 때 훨씬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과학기술은 그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경로와 방식으로 성공하거나,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이유 때문에 실패합니다. 놀랄 만큼 짧은 시간 동안 성공했다가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놀랄 만큼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사회 속에 머무르기도 합니다. 원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변형되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은, 그리고 미래는,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특정 기술의 성공과 그에 따른 사회의 변화를 예언하는 대신 과학기술과 사회 모두의 우연성과 역동성을 고려하면서 변화에 대응하려는 태도입니다.
“미래는 오지 않는다”라는 선언을 통해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미래에 대해 말할 때 사실 우리는 현재를 놓고 다투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래 예측은 하나의 담론입니다. 이는 미래 예측이 비과학적인 활동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는 단지 미래만이 아니라 현재를 대상으로 하는 학술적, 상업적, 정치적 행위라는 뜻입니다. 지배적인 미래 담론을 내놓는 집단은 그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현재의 의사결정과 자원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미래 담론에 대한 해석과 비판이 필요한 것은 미래 예측의 적중률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미래 예측이 현재에 대한 통제권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미래 담론에서 어떤 미래가 힘을 얻고 있고 어떤 미래가 배제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는 정치의 대상이자 결과입니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앞날에 대한 예측이 중립적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예측도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사람과 집단은 모두 특정한 종류의 과학기술과 특정한 형태의 사회를 옹호하고 그러한 방향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모두가 미래 예측 활동에 뛰어들 수는 없지만, 널리 생산되고 유통되는 미래상이 어떤 세계를 지향하고 어떤 가치를 설파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복잡다단한 오늘날의 현실과 유리되지 않은 미래상, 더 인간적인 얼굴을 가진 미래상을 내놓도록 요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미래를 일부 전문가가 주도하는 예측의 영역에서 폭넓은 사회적 논쟁의 영역으로 옮겨 올 수 있습니다. 미래는 우리가 예측한 대로 오지 않겠지만, 미래에 대한 더 나은 논쟁은 현재를 더 낫게 바꾸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중략)
1강
미래 예측의 허와 실
과거의 미래 예측은 옳았는가
현재, 과거, 미래를 한 문장에 담은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다Today is Yesterday’s Tomorrow”라는 표현이 있죠. 항상 내일이 궁금한데, 오늘이 바로 어제의 내일이라는 것입니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다”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거에 생각한 미래가 어땠는지 반추해보면 지금의 현재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가 진짜 미래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예상할 수도 있습니다.
『어제의 내일』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에 사람들이 생각한 미래상이 잔뜩 그려져 있습니다. 20세기 말이나 21세기 초의 자동차, 비행기, 도시 등이요. 20세기 중엽에 사람들이 생각했던 미래 중 하나는 바다에 식민지를 건설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인구가 폭발하고 먹을 게 부족하니까 바다의 무궁무진한 자원을 개발하려 한 것입니다. 바다에 도시를 건설한다는 얘기는 지금도 미래사회 전망에서 종종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예측한 미래는 지금의 현재와 얼마나 다른가요?
자동차에 대한 생각 역시 달랐습니다. 그때는 미래의 자동차가 소형 원자로에 의해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아이언맨Iron Man」을 보면 작은 원자로에서 동력을 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작은 형태의 원자력이 가능한다면 자동차, 비행기는 물론 가정집의 난방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차들은 태양력과 원자력을 동력 삼아 시속 200킬로미터로 거리를 질주할 테고요. 그렇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 속도는 여전히 60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이 예측은 많이 빗나갔다고 하겠습니다.
1925년 시점에서 상상한 미래 뉴욕 시의 모습을 보시죠. 빽빽한 고층건물 위로 비행기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지요. 사람들이 미래 도시의 모습으로 많이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거대한 복합단지를 이루고, 학교와 집은 물론 쇼핑과 운동, 여가 등 모든 것을 그 안에서 해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그림을 보면서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 미래가 얼마나 실현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독자들은 이런 미래 도시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거대 도시들과 딴판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 정도는 지금의 뉴욕이나 상하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 정도의 미래는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실현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1950년대에 상상한 미래의 교육은 어땠을까요? 그때 사람들은 미래 교육의 모습으로 푸시 버튼push button을 누르면 교육 내용이 학생에게 전달되는 일종의 원격교육을 상상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이런 교육이 실현됐다고 볼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현재 21세기 초엽의 시점에서 이런 교육은 지금의 학교 시스템과 매우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아직도 많은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칠판이나 화이트보드에 글을 써가면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한편, 원격교육이나 학원 강의도 다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인터넷으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지금의 교육이 이런 과거의 상상과 비슷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죠. 이런 사람들은 과거 사람들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과거에 예측한 미래가 지금 실현됐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현됐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 멀었다, 이렇게 의견이 갈리는 것이지요.
1950년대에는 2000년이 되면 지구인이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리라고 상상했습니다. 이건 아직 먼 일 같습니다. 분명히 아직은 실현되지 않았지요. 그런데 지난 2016년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2030년까지 화성에 사람이 살 수 있게 하겠다고 선언했고, 그에 발맞추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우주선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 같은 부자 사업가는 이 일을 자기 회사에서 하겠다고 호언했고요. 만약 2030년에 화성에 식민지가 건설된다면, 1950년의 예측이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30년이라는 시간 정도는 오차 범위라고 할 수 있을까요? 2050년이라면요? 2100년이면?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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